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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연 Nov 28. 2022

옵션쇼크!키클롭스 꼬리를 밟은 사람들(7)-연재소설

1.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07

(개미지옥 3)     


 여기저기 국제뉴스와 시장지표를 검색해 보니, 오늘 새벽 다행히 큰 사건은 없었고 경제지표들도 안정적이다. 최근에는 남유럽 재정위기 영향으로 5월에 유럽에서 들어왔던 해외투자 자금이 약 3조 원가량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내림세를 보이는 점이 신경이 쓰인다. 다행히 하루 전날은 주가지수 파생상품의 기초지수인 코스피200 주가지수는 소폭 올랐고, 시장 상황 분석 리포트들에 따르면 오늘도 전일 종가 수준인 201pt 근방에서 소폭 움직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정보를 근거로 오늘 시장을 판단한 후, 그는 출근해서 파생상품 고객과 오늘 옵션만기일의 투자전략을 협의해야 한다.


 이영현과 그의 유일한 파생상품 고객이 활용하는 투자기법은 옵션 양 매도 전략이다. 양 매도 전략은 콜 옵션과 풋 옵션을 동시에 매도하는 옵션 투자전략이다. 옵션과 선물은 기초자산인 주식이나 주가지수를 바탕으로 일정 기간 후 기초자산 가격에 추가로 반영될 시간가치를 추정하여 가격이 결정된다. 현재 기초자산에서 미래 거래가격이 파생한다고 해서 파생상품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금융시장의 조건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반영하는 가격이 이론 가격이며 이를 기준으로 시장 참가자들은 독자적인 판단을 통해 시장가격을 결정하고 거래한다. 한편 선물과 옵션의 몽타주는 미래 예상 가격과 수익을 기준으로 2차원 평면에 표현할 수 있다. 이 몽타주는 구체적으로 2차원 평면에서 가로축을 기초자산의 미래 가격, 세로축을 각 가격에 대응하여 현재 보유한 옵션이나 선물 또는 포트폴리오에서 발생한 이익을 표시해서 서로 대응하는 함수적 라인으로 그려진다. 투자자는 컴퓨터 모니터에 그려진 이 몽타주와 그에 따른 최종 예상 수익을 확인하며 투자전략을 세우고 조정한다. 컴퓨터 연산으로 보이는 그림과 실시간 예상 수익은 현실을 게임으로 인식하게 하며 투자자에게 파생상품의 극단적인 변동성을 잊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한편 콜 옵션을 매도하면 기초자산의 가격이 - 행사가격보다 - 상승 시 그리고 풋 옵션을 매도하면 기초자산 가격 하락 시 옵션을 매도한 거래자에게 손실이 발생한다. 대신 이러한 위험을 부담하는 대가로 매도자에게는 프리미엄( = 옵션의 시장가격)을 매수자가 지급한다. 

결과적으로 콜과 풋 옵션을 동시에 매도하는 양 매도 투자전략의 그림은 매도한 옵션의 행사가격이 같으면 그 행사가격에서 매도자에게 이익이 발생하고 행사가격 위아래로 손실이 발생하므로 2차원 평면에 삼각형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다. 이것을 스트래들(straddle)이라고 하는데 양다리를 벌리는 모양이란 뜻이다. 콜 옵션과 풋 옵션의 행사가격 차이가 벌어지면 그 가격만큼 삼각형은 사다리꼴로 확장되는데 이러한 옵션 투자전략을 스트랭글(strangle)이라고 한다. 양 매도 전략은 본질에서 공격적인 투기 전략이다. 투자전략의 그림을 상상하면 알 수 있듯이 가격이 행사가격 근방의 안전 영역을 벗어나면 손실이 이론적으로는 무한대에 이른다. 그러므로 옵션을 매도하는 것은 가격의 변동 규모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분석력을 전제로 하고 가격변동에 따라 투자 포지션을 조정해야 하므로 대규모 자금력이 있어야 시행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양 매도 전략을 이용하는 이유는 프리미엄 수취로 처음부터 현금을 확보하고, 이를 이용해 옵션 투자를 늘리면 투자전략의 레버리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투기의 농도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영현은 오늘 하루는 코스피200 주가지수가 201pt 근방에서 큰 변동 없이 머무를 것으로 보았다. 201pt 근방에서 행사가격 폭을 좁힌 뾰족한 삼각형으로 양 매도 투자 포지션을 키워, 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러 가지 시장 상황에 대한 오늘 종합 판단을 끝냈다.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오전 6시다. 긴장감 속에 시장을 분석하며 순식간에 1시간이 지나갔다. 어느덧 새파란 새벽 햇빛으로 가득 차 희미했던 방안이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났다. 이제 그가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이다. 이영현은 고개를 좌우로 기울여 스트레칭을 하면서 창문을 열어 본다. 우이동의 깊은 북한산 자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영현의 거처는 쌍문동과 방학동 경계로 우이동이 바라보이는 9평 9홉짜리 다가구 주택의 전세다. 여의 증권 수유지점은 IMF 위기가 발발했던 97년 12월에 강북구청 사거리에 개점했다. 사무실까지는 그의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다 3년 전 유산으로 남긴 98년식 중형자동차를 타고 약 20분 정도 걸린다. 그는 오전 7시 전에는 사무실에 도착해서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7시 10분 무렵에는 아마 오늘 투자전략에 대해 밤새 고민한 이영현의 유일한 파생 투자 고객이 전화할 것이고, 그는 이영현에게 시장 전망 보고를 들은 후 투자전략을 협의하고 지시할 것이다. 이영현은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집 문을 나선다.




 (몽상가 3)     


 5월 25일 오후 6시. 와이트 자산운용 회장실에서 구변수가 머리를 푹 숙이고 두 손을 양옆에 붙인 채 차렷 자세로 서 있다.

“야. 구 차장! 그렇게 운용하면 뭐 하러 비싼 돈 주고 대학 나온 인력을 쓰냐? . 대학 근에도 못 가본 내가 해도 그거보다는 잘하겠다.”

 사장실 가운데 응접 소파 상석에 앉아 흥분해 얼굴이 벌건 이광석 회장이 서류 커버로 테이블을 두들기고 있다. 그의 양옆으로 늘어선 응접 소파 한쪽에 성지용 사장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구변수를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운용개시 1주일 만에 13%나 까먹었냐? 너 아주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너 펀드 매니저 맞기는 하냐? 어이! 운용본부장 들어와 보라고 해.”

회장실 밖에서 안절부절 대기하던 이무상 운용본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 들어온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어제까지는 벤치마크(bench mark; 투자 성과의 비교 대상) 지수인 코스피200 주가지수 대비 1.7%를 이기고 있었습니다. 다만 북한군 전시 동원령 때문에 오늘 시장이 급작스럽게 움직여서 구변수 차장도 손실이 불가피했습니다.”

이광석 회장이 한쪽 눈꼬리를 추어올리며 한 마디 쏘아붙인다.

“벤치마크 대비 1.7%를 이긴다고 해도 펀드의 절대 수익률이 마이너스이면 무슨 소용이냐고. 당신들은 회장이 직접 펀딩한 돈이 들어갔는데 자기 돈 아니라고 원금 손해가 나든 말든 벤치마크 대비만 이기면 된다는 거냐? 남의 돈 가져다 수익률 마이너스 내면 그건 사실상 횡령이지. 아니 시장이 이상하면 투자 포지션을 들어가지를 말아야지. 그건 논밭 가는 소들도 알겠다. 원숭이보다도 못한 게 펀드 매니저라는 논문이 있다더니 진짜 사실인 거지.”

돈에 관한 철학(일러스트-조수연)

 이 회장은 분이 안 풀렸는지 눈을 부릅뜨며 한 단어씩 또박또박 버튼 누르듯 말을 이어간다. 운용본부장과 구변수는 아직 앉지도 못하고, 고개를 가슴에 파묻은 채 서 있다   

“당신들 앉아서 편하게 남의 돈 가져다 투자하니까 그냥 숫자에 불과하지? 136억 펀드가 규모는 적어도 펀딩해준 사람들에게 얼마나 귀한 돈인지 생각해 봤나? 그 돈이 그들 삶의 결과라는 거 생각해봤냐고? 누구에게는 뼈 빠지게 일 한 한 달 치 급여이거나, 평생 키워준 부모님 병원비이거나, 평생을 함께할 연인을 위해 반지를 살 돈이거나 돈이라는 것이 인구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인생 스토리가 돈으로 변환된 것이라는 생각은 해봤나? 나는 무식하지만 한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그런 시(詩)가 있더라. 돈도 마찬가지야. 저 펀드 안에 많은 사람이 인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 목숨 다루는 의사처럼 신중해야 해. 투자할 때 고민하고 또 생각하고 영혼을 담아야 해. 게다가 네가 오늘 까먹은 그 펀드, 우리 계원들에게 연 15% 이상 수익 안 나면 내가 개인적으로 물어 주기로 약속하고 받아 온 거야. 그 사람들 지금도 연 20%는 벌고 있는 것을 나를 믿고 빼줬다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5년은 그 정도 준다고 하니까 내 펀드에 채워 준거지. 그런데 처음부터 내 돈을 날릴 걱정하게 엉망진창을 만들어 놔! 답답하네.”

 이무상 운용본부장은 이 회장의 얘기를 들으며 계속 수긍하다가 마지막 얘기에 다소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연다.

“회장님. 원금과 수익보장을 하면 법 규정 위반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 납니다.”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성지용 사장이 이무성의 걱정에 회장 대신해 답변한다.

“이 본부장. 회장님은 지금 공식적으로 임직원이 아니고 사적인 친구들끼리 신의에 의한 구두 약속을 한 것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걸세. 회장님 말씀은 전주(錢主)분들하고 형식적 계약은 없지만, 의리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는 것이지. 그분들 세계에서 입으로 뱉은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 은퇴할 각오를 해야 해. 자네들이 오늘 목숨보다 귀한 회장님의 자존심을 밟은 거야. 구 차장도 알았어?”

구변수 차장은 이 회장의 영혼 투자 철학을 처음 들었다. 나름으로 그를 감동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와이트 자산운용에는 다른 회사와는 달리 이익 극대화에 대해 함께 회장의 투자 철학과 자존심이라는 기업의 목표가 하나 더 있는 것에 그를 심하게 짜증스럽게 했다. 구변수는 외삼촌인 이광석의 불같은 성격을 어머니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그의 어머니도 외삼촌에게 밑에서 일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대뜸 버티기 쉽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던 이 회장이 마무리하려는 듯 얘기를 이어간다. 

“안 되겠다. 구변수는 좀 더 배워야 할 거 같다. 성 사장! 당분간 구변수에게 운용지시는 내가 직접 하겠네. 그리 알고 계시게. 구변수! 내가 지시하기 전에는 단돈 10원도 움직이면 안 된다. 알았지?”

 구변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구변수가 설마설마했었으나 이제야 이광석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이광석이 아직 운용 경력이 미흡한 자기를 갑자기 불러 펀드 운용을 맡길 때 보였던 미소는 조카의 능력을 믿고 펀드 운용을 맡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능력 없는 조카를 허수아비 펀드 매니저로 두고 자기가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만족감의 표시였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 예기치 못한 북한 리스크로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해서 크게 손실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이광석은 꼬투리로 삼을 이런 기회를 기다렸을 줄 모른다. 구변수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 회장의 의도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다. 이때 운용본부장이 다시 이 회장에게 걱정스러운 말을 한다.

“ 펀드 매니저 자격이 없는 회장님이 펀드 운용에 개입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무상 본부장의 연이은 지적에 이번에는 이 회장이 직접 나선다. 

“그걸 내가 모르고 얘기하는 건 아니야. 그래서 만일을 대비해 내 사무실은 와이트 자산운용과 층을 달리해서 따로 마련했고, 앞으로 구변수와의 연락은 회사 연락망이 아닌 별도 3자 명의 휴대전화를 개설해서 이용할 거네. 전표도 없고 장부 기록도 없으니 외견은 완벽히 구변수 펀드 매니저가 운용하는 거지. 회사 내에서도 기밀을 유지하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감독원에 신고하지 않는 한 아무도 모를 거야. 설사 누가 고발해서 적발된다고 해도 내가 동원한 자금의 사모펀드니까 투자자 보호 문제도 있을 수 없고. 아주 심각할 경우 나는 대주주 지분 처분하고 나가면 그만이겠지. 그럴 때는 혹시 이무상 본부장 이하 상당 직원들은 실업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걱정되면 이무상 본부장이 자네 자리를 걸고 연 15% 수익 나도록 운용 한번 해보겠나? 그럼 나는 오히려 편하겠는데. 어떤가. 도전해 볼 의향 있나?”

 이 회장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이무상 본부장은 입술을 꽉 다물 뿐 한동안 답변을 못 한다. 당연히 그도 밥그릇을 걸고 대주주와 자본시장 정의를 논할 만큼 통 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파생 투자 전용 사모펀드를 운용하기에는 파생 운용 경험과 노하우가 없고, 게다가 대주주의 이해가 깊숙이 관여된 이 펀드는 사방에 부비트랩이 깔린 정글에서 멧돼지 사냥하는 거나 다름없다. 여기서 이 회장의 제안에 동의하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그리고 대주주가 자기가 퍼질러 놓은 일을 자기가 책임지겠다는데 그가 끼어 들일도 없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회장님과 구변수 차장만 아는 것으로 하고 공식적으로 사장님과 저는 모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운용지시는 말씀하신 대로 아무도 모르는 휴대전화를 사서 기록이 남지 않도록 하시지요.”

이 본부장은 구변수에게도 당부한다.

 “구변수도 다른 직원은 물론 외부에서 절대로 모르도록 해야 할 거다.”

 이무상이 회장에게 백기를 들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구변수도 알았다는 표시로 큰 소리로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모든 운용은 지시를 받고 하겠습니다.”

그러자 성진용 사장이 두 사람을 달래려는 듯 얘기를 한다.

“그래 구변수 차장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그야말로 생생한 실전 투자의 세계를 배울 기회를 얻은 거야. 회장님은 미군 PX 담배 장사를 시작해서 단돈 100만 원으로 400억을 만드신 분이야. 주식이라는 단어가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지만, 주식은 물론 선물, 옵션까지 다양한 투자전략을 책도 없이 현장에서 다 통달하신 분이다. 이러한 고수들의 실전 투자전략은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지. 월 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 관리자 제럴드 로브(Gerald Loeb)가 1935년에 ‘목숨을 걸고 투자하라’라는 책을 썼어. 그 책 제목처럼 구변수도 정말 목숨 걸고 제대로 한번 배워 봐라. 지난번 출정식에서 회장님이 말씀하셨지. 우리 와이트 자산운용은 함께 살고 같이 죽는다고.”

 구변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생생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들의 치밀한 생존 논리에 그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살아온 투기꾼 인생을 이렇게 이념화하고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어쩌면 돈을 좀 만지고 아는 것과 그들이 휘두를 것이 많아지니 자연히 자아실현의 욕구로 명예를 얻고 싶은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봤자 그가 생각하기에 오늘 훈시의 요점은 투기꾼들 세계에서 자기를 쪽 팔리게 하지 말고, 월급 주는 만큼 꼭두각시 노릇 잘하라는 것이었다. 또 구변수같이 나름 좋은 대학을 나와 정규 매니저 경력을 쌓아가는 인력을 데려다 가르치고 부림으로써 이들은 맨바닥에서 시작해 성공한 우월감과 정복의 쾌감을 증폭할 수도 있을 거라고 그는 추측했다. 그만 빨리 얘기를 끝내라고 구변수는 알았다는 신호로 다시 한번 크게 복창한다.

“알겠습니다. 정말 좋은 기회로 알고 목숨을 거는 자세로 배우겠습니다!”

이무상 본부장이 힐끔 그를 쳐다보는 시선이 감지된다.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구변수는 결심을 굳혔다. 

‘두고 봐라. 너희 다 죽고 나만 살 것이다.’

그는 속으로 각오를 새겨본다. 일장 훈시가 한참 이어지는 동안 18층의 와이트 자산운용 사장실의 창문 밖에는 비가 뿌린다. 오랜만의 봄 가뭄 후에 이어진 단비다. 구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을 나가면서 창문 밖 테헤란로를 내려다보니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 너머로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하얀 날개 무리로 비치며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은 온갖 욕망이 날아오르는 이카로스의 도시다.



(개미지옥 4)     


‘제기랄!’

벌써 30분째 같은 소리를 듣게 되자, 평소에 참을성 많던 조통두 지점장도 오늘 아침 유난히 짜증이 난다. 오늘 5월 25일이니까 2010년도 2분기도 다음 달이면 마감인데, 그는 이번 분기 목표를 반도 못 채웠다. 분기 마감이 다가오자 본부장이 벌써 닦달에 나섰다. 본부장은 백제 증권에서 은퇴하고 1년 쉬었으나 여의 증권으로 새로 부임한 현재 사장이 백제 증권에서 근무할 때 맺은 인연으로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58세의 신임 본부장은 직원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인지 정말 목숨을 걸고 일하는 분위기를 일부러 연출한다. 2010년 상반기는 주식시장의 불안으로 일일 거래 금액이 줄자, 여의 증권의 회사 수수료 실적도 전년도의 같은 기간에 비해 30%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일 년씩 임기를 연장해가는 경영진이 자기 성과를 보이기 위하여 본부장을 박살 나게 깨니, 그 아래로 내려갈수록 분노는 작은 강물이 폭포로 변하는 낙차(落差) 효과가 발생한다. 좋은 것은 군대 고깃국처럼 항상 위에서 다 빼먹어서 국물만 남고, 힘들고 아픈 것은 모두 아래로 흘려보내는 것이 동서고금 변치 않는 세상사일 것이다. 


조통두 지점장은 1990년에 지금은 없어진 코리아 투자신탁으로 입사해서 21년 이상을 증권 산업 영업 현장에서 온갖 풍상을 겪어왔다. 그가 젊은 청춘을 다 바쳐 보낸 세월 중 가장 아쉽다고 생각한 것은 2000년 정부가 투자신탁회사를 증권회사와 자산운용회사로 분리하면서, 대한민국 금융 산업에서 펀드를 이용한 자산관리업이 증권 위탁매매를 앞세운 이익경영으로 사양길을 걷게 된 것이다. 투자신탁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조 지점장은 정말 자부심을 품고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과거 투자신탁회사는 펀드 산업의 법적, 제도적 공공성이 인정되면서 공적 지배구조를 가졌었다. 욕심 없는 지배구조 아래서 모든 직원이 공익에 이바지한다는 목표로 펀드를 만들고, 팔며 고객관리에 전력투구했다. 회사의 수익원은 고객 자산에 비례한 보수 수익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고객의 자산이 커지는 기쁨을 고객과 회사가 함께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진정한 자산관리를 할 수 있었다. 직원들은 고객을 키우는 데 고민하고 전념하여 영업 현장에서 고객들과 항상 기쁨, 슬픔을 나누는 재산 지킴이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70년대 초 시작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한국형 펀드 산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산관리 시장을 선진화하고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슬로건 아래 시행한 금융정책에 한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비극은 사실은 금융 산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은행, 증권회사들이 투자신탁회사의 고객 원장에서 안정 성장하던 고객 기반을 탐하면서 시작된 끝없는 로비의 결과였다. 

뿌리 뽑기(일러스트 조수연)

 또한 1989년 12월 12일 증권시장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한국은행으로부터 무제한 자금 지원을 해주며 정부는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투자신탁회사에 무제한 주식 매입을 지시했는데, 이후 투자신탁회사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이 정책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정부와 정치권에서 증권 산업 조정의 명분이 필요했다. 그들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투자신탁회사를 증권과 자산운용사가 분리하고 해외 매각 준비를 서둘렀다. 한편 투자신탁의 증권회사와 운용회사 분리에 펀드의 제조와 판매를 분리해 상호 견제하는 구조가 투자자 보호에 유리하다는 논리가 적용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판이었다. 

 문제는 지배구조의 건전성이었다. 한편 세계적인 금융 규제 철폐 추세 속에서 증권회사와 운용회사가 증가하고 은행에도 펀드 판매가 허용되면서 치열한 경쟁 상태에서 경영수지를 맞추기 위한 경영대리인들의 눈앞에 펀드 산업은 초원을 뛰노는 무방비 상태의 가젤에 불과했다. 투자신탁의 판매와 운용 분리는 투자자를 보호할 것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판매회사와 자산운용회사 각각의 이해는 펀드 고객과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펀드의 보수 수입은 자산운용사의 차지가 되고 증권회사는 판매 수수료를 취득하는 구조에서 고객을 관리하는 증권회사의 이해는 고객 자산이 성장하는 것과는 단절되었다. 운용회사를 견제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먹이사슬에서 증권회사의 하부에 있는 운용회사를 마음에 맞는 곳을 고르고 이용할 동기가 발생했다. 한편 자산운용사도 고객보다는 판매회사인 증권회사들의 미인 콘테스트에서 선정되어야 하므로 단기 실적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30년간 공공성을 바탕으로 성장한 펀드 산업은 운용-판매 분리 후 이익경영의 굶주린 이빨 앞에 찢기고 뜯기며, 국민 재산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자산관리라는 개념은 고대 성곽에 새겨진 고문(古文)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수익 구조의 변화는 증권 산업과 기존의 펀드형 자산관리 고객들에게 커다란 환경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증권회사 처지에서는 주식 위탁수수료를 받는 것이 펀드 매매 수수료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론적으로 1% 내외의 판매 수수료를 주는 펀드 고객을 주식을 거래하게 하면 최소한 10배에서 100배의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다. 증권회사는 펀드 고객을 유치해 주식 위탁 거래로 바꿀 동기가 작용한다. 자산운용회사도 고객의 이해와는 분리되었다. 특히 투자신탁회사에서 증권회사로 전환된 후 민간 금융회사에 매각된 증권회사 들은 펀드형 고객들을 주식거래 고객으로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들은 영업직원들에게 다양한 성과보수를 제공하면서 펀드 고객의 주식 고객화를 진행했다. 증권회사와 고객의 이해는 심각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21세기가 시작한 후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증권 산업은 오로지 고객들을 희생양으로 버티어가는 구조로 더욱 발전했다. 브로커들은 항상 고객에게 수수료 사냥을 하도록 내몰렸다. 브로커들의 끊임없는 유혹에 펀드에서 주식으로 옮긴 후 여러 가지 기막힌 일들을 당한 고객들은 증권회사 직원들을 믿지 않고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도둑놈들’하고 속으로 생각하는 세상이 되어갔다. 피해를 본 고객들이 늘면서 펀드를 자산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줄고 줄어 펀드 시장은 모두가 외면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경영진은 더욱 날뛰고 가혹해진다. 자기들이 말려버린 시장에서 직원들이 목숨 걸고 잘하면 고래도 참치도 잡을 거라고 경영학 보따리상들의 온갖 미사여구를 들이대면서 세뇌하고, 다른 한편으론 직원들의 목을 날려 본때를 보이면서 공포 경영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직원들과 고객들은 바보가 아니다. 연어가 돌아올 강물은 이미 말랐다는 것을 안다. 


 조통두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모든 것을 참아야 하는 무능력과 모욕감에 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떤다. 새벽 6시 반부터 시작된 회의는 본부장의 통렬한 실적 비판순서를 지나 7시 10분에 이르러서 지점별 자아비판 시간으로 넘어갔다. 
 “수유지점 조 지점장! 요즘 정신이 다른 데 있나 봐. 그렇지 않고서 실적이 이럴 수가 없어. 목표 대비 실적이 47%가 뭐야. 장난하는 건가? 이러고도 월급 받기 부끄럽지 않나?”

본부장은 부임한 축하 첫 회식에서 술 한잔을 지점장들에게 돌리고는 그때부터 반말이고 하대하기 시작했다. 유리를 긁는 듯한 소리가 감정까지 얹혀 그의 귀에 꽂히자 조통두는 회의 탁자 아래로 내려둔 깍지 낀 두 손을 꼭 쥐었다.
 “조 지점장은 이대로 계속 가면 곧 개인사업자 곧 되겠어. 회사 생활 지겨운가?”

 개인사업자가 된다는 것은 정규직에서 잘린다는 협박이다. 그러나 이럴 때는 무대응이 현명하다. 고개를 회의 탁자 위에 계속 처박고 있어야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고, 꼴 보기 싫은 얼굴도 보지 않는다. 만약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본부장과 눈을 마주치면 입으로 무슨 소리가 튀어나올지 모르고,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조 지점장!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지? 어디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건가? 자네 지점은 어디 보자. 음……. 지점 실적 현황을 보니 그렇게 희망이 있어 보이는 것이 없는데? 아 그렇군. 수유지점은 왜 이렇게 펀드 고객이 많아? 그런데 위탁계좌가 너무 적네? 왜 그렇지? 이래서야 지점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없을 텐데. 목표 달성도 어렵고 손익분기점에도 미달이고. 조 지점장 어쩌려고 그러지?”

조통두는 회의 테이블 위의 작은 스크래치에 눈을 그대로 두고 본부장 걱정에 대답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본부장이 대답을 듣고는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는 그의 고된 인생 흔적을 눌러 펴려는 듯 깊은 눈꺼풀 주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을 잇는다.

“조 지점장. 열심히 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거요. 프로다운 자세가 아니지. 프로는 문제를 알고 해답을 찾아서 해결하는 사람들이지. 당신처럼 멍하니 단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지점장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 실적도 그 모양이고 지점이 적자를 내는 거요. 난 무임승차를 정말 경멸해. 특히 지점이 적자를 내서 회사 이익을 깎아 먹으면 이건 죄인이지. 다른 직원들의 피땀 흘려 만든 회사 재산을 축내는 죄인!” 

죄인이라는 소리에 놀라 조통두가 순간 움찔 고개를 들자 그와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종로지점장과 눈이 마주쳤다. 둘리 눈이 마주치자 종로지점장이 흠칫 놀란다. 그리고는 이내 참으라는 눈짓을 조통두에게 보낸다. 조통두는 눈을 질끈 감고 주문을 읊듯 얘기한다.

대못질(일러스트 조수연)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남은 기간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통두가 얘기하는 중에 본부장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뒤로 젖힌 체 그를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정말 답답한 분이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척하는 건가? 아무튼 조 지점장처럼 투자신탁 출신들은 영업할 줄을 몰라. 그저 순해 빠져서. 당신들이 약해 빠져서 결국은 예전 당신 회사를 말아먹은 것 아니요? 한번 망가뜨렸으면 됐지. 회사를 또 망가뜨릴 거요?”

 이번에는 옆자리 신촌 지점장이 조통두의 손을 얼른 잡는다. 그가 욱하며 감정 폭발을 할 것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참느라고 그가 속에 깊은 상처를 받을까 봐 위로하는 것이다. 조통두가 투자신탁 회사에 입사하던 시절 신촌 지점장은 2년 선배 사원이었다. 그는 조통두의 사수로 둘은 약 1년간 기획부에 같이 근무했다. 회사가 매각된 이후, 특히 증권회사 CEO가 부임하고 주식 위탁 거래로 회사 비즈니스의 비중이 옮겨진 후 외부에서 수많은 직원이 긴급 수혈되었다. CEO는 신속한 효과를 위해 교육보다는 구조조정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이전 투자신탁 출신 직원들은 조직적 홀대 속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다 보니 20년 가까이, 한솥밥 먹으며 간신히 붙어있는 후배 조통두를 걱정하는 것이다. 조통두가 대답 없이 가만히 회의 자료만 들여다보고 있자 본부장이 말을 이어간다. 

“조 지점장. 더 얘기는 각설하고 상반기 목표를 못 채우면 이번 연말 인사에 각오해야 할 거요. 다른 지점장들도 마찬가지니 잘 들으시오. 회사 수지가 어려운 만큼 올해는 분발들 해야 할 거요. 6월 말 상반기 실적으로 1차 관리 대상 명단에 오르면 인생 많이 피곤할 거란 말이요. 그리고 11월 말까지 올해 연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지점장은 인사발령 조치 될 거 각오하소. 이것은 사장님이 직접 지시하는 말이오. 특히 지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지점은 우선 정리 대상이 될 거니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거요. 아셨소? 후. 오늘은 내가 지치네. 그만들 돌아가서 일들 해요!”

본부장이 경고하고는 골치가 아픈 듯, 한 손을 이마에 대며, 지점장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뒤돌아서 나간다. 화가 났으니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네. 본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지점장들 대부분 앉아 있는데 한 명이 재빨리 본부장을 따라 나가면서 배웅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을 보더니, 머리 허연 지점장들 몇몇이 우르르 더 따라 나간다. 하나 같이 목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자라처럼 목을 드레스 셔츠에 묻고, 본부장과 혹시나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서로 어깨 쌈을 한다. 과거 이들은 회사가 매각되기 전에는 후배들 앞에서 한없이 무게 잡던 선배들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신촌 지점장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아주 난리구먼. 얼마나 오래 다니려고 그러는지. 그 나이에 후배들 앞에서 이제는 대놓고 아부하네”

 한마디 던진 후 그는 조통두에게 고개를 돌린다. 

“오늘 잘 참았어. 우리 같은 증권회사 지점장 하는 일 중 절반 이상은 참는 거 아니겠어. 요즘 지점 실적이 많이 안 좋은가 봐. 전에는 수유지점 늘 좋은 편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 파생 거래 크게 하시는 분 있잖아. 요즈음 잘 안 돌아가나?”

수유지점에서 이영현 과장이 담당하고 있는 옵션거래 고객은 수익 발생 측면에서 다른 지점장의 부러움을 사는 고객이다. 그만큼 레버리지가 큰 옵션 상품은 수수료가 크다. 

“네 시장도 좀 불안하고. 3월에 시장이 흔들렸을 때 손실이 크게 발생해서 계좌 잔액이 거의 반 토막이 났으니 수수료도 반으로 줄었지”

신촌 지점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올해 상반기는 뭐 수유지점만이 아니고 다들 죽을 맛이지. 증권시장이 오락가락하니까 대부분 손님도 손실이 나서 물려 있으니 거래를 하지 못하고 있고, 본부장이 죄다 선취 수수료 펀드로 팔라고 해서 펀드 고객 잔액이 잔뜩 있어 봐야 지점 수익에 도움이 안 되고. 참 진퇴양난이네.”

 신촌 지점장이 얘기하는 것은 펀드 산업의 큰 변화와 관련이 있다. 


 판매회사가 펀드를 판매하면서 취득하는 수익원(고객으로서는 비용)으로 선취(先取)와 후취(後取)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판매 당시 판매금액의 일정 비율을 받는 선취 수수료 방식과 판매 후 가입자가 다시 펀드를 판매회사에 환매(還賣; 되판다는 뜻으로 일종의 해약) 할 때까지 기간별로 일정률을 계산하여 수취하는 판매보수 방식이다. 과거 판매와 운용 분리 전에는 보수에 기반을 둔 펀드 판매가 주류였으나, 판매와 운용 분리 후 판매회사의 경영수지 확보 차원에서 수수료 선취형 펀드가 적극적으로 판매되었다. 선취형으로 판매 후에는 판매사가 펀드에서 더는 받을 수익이 없으므로 단물 빠진 사탕수수 취급을 하는 것이다. 선취형 펀드는 판매 당시의 수익으로 실현되어 판매자, 경영진에게 즉시 인센티브, 실적 평가에 득이 되지만, 판매 후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무수익 자산이다. 선취형 펀드에 가입하라고 브로커가 요구해도 투자자는 펀드 만기까지 대접받으려면 신중하게 판단하고 될 수 있으면 그들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신촌 지점장이 얘기를 이어간다.

 “지금은 선취형 펀드를 팔은 직원은 펀드 환매수수료 징구 기간(단기 환매를 제한하기 위해 환매 시 수수료를 부과하는 기간)이 넘어가면, 선취 펀드 고객을 새로 나온 펀드가 더 시장 상황에 유리하다고 꼬드겨서, 기존 펀드를 해약하고 새로운 펀드로 갈아타게 해서 새로운 수수료 수익을 내고 있어. 펀드 판매에 따른 성과보수에 목마른 직원들이 궁리 끝에 아마 보험 영업인들에게 배운 것 같아. 지점장으로서 지속 가능성이나 고객을 위한다면 이런 짓은 말려야 하는데, 본사에서는 내용 불문 단기 실적이 좋은 직원들 우수직원이라고 포상과 인센티브를 주니 말릴 명분이 없어. 못 하게 말리면 당장 본사에 찍힐 것이 뻔하니 난감하지. 고객은 완전히 뒷전이고, 제 살 깎아 먹기가 직원이나 회사의 생존 전략이 된 마당이라니 참 큰일이야.”

 조통두는 신촌 지점장이 얘기에 깜짝 놀랐다. 오죽 답답하면 그렇겠나 싶지만, 조통두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기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그가 대답한다.

“인제 보니 제가 본부장에게 찍힐 만하군요. 저는 그런 생각까지는 못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치열하게들 사네요. 그래도 저도 직원들에게 이런 방법이 있다고 말은 해야 할 것 같네요.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배님”

신촌 지점장은 회의 자료를 주섬주섬 가방에 넣으면서 조통두의 얘기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간다.

“내가 보기에도 펀드 갈아타기로 고객을 희생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그래서 조 지점장에게 권장하는 것은 아니야. 그런 상황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요.”

서류 가방을 챙기고 일어설 듯하던 그는 좀 더 심각한 것이 있는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간다.

“더 심각한 것은 펀드 고객을 주식 직접 투자 고객으로 전환하는 영업 전략에 목매는 것일 거야”


 과거 그가 몸담았던 투자신탁회사는 해체되어 여의 증권과 여의 자산운용으로 분리한 후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매각을 추진했다. 1989년 12월 12일 증시안정 대책으로 무제한 시장매입을 지시한 후 정부는 회사에 투입한 정부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국내외 매수자를 물색하고 결국 민간은행에 매각했다. 조통두는 매각 당시 기획부에서 회사 재무관리를 담당하며 회사 매각작업에 깊이 관여했다.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매수자의 관심사는 30조 원에 달하는 회사의 펀드 고객 원장이었다. 이들을 활용해서 어떻게 하든 수익을 창출해야 했다. 처음에는 은행 마케팅 전문가들이 달려들어 은행업과 연계 성장을 추진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후 증권회사 경영과 구조조정에 능한 CEO를 영입했고 이후 회사 경영전략은 펀드 고객을 주식위탁 거래고객으로 전환하는 것에 사활을 걸게 되었다. 회사는 펀드 영업직원보다는 주식위탁 영업직원을 우대하고, 펀드에서 주식거래로 전환하는 고객 수와 자산 실적을 지점, 본부의 중요 성과지표로 신설했다. 그들은 이 목표 달성을 채찍과 당근을 병행하며 독려한다. 


조통두가 무슨 얘기인지 관심을 보이자 신촌 지점장이 가방을 회의 탁자에 내려놓고 얘기를 이어간다.

 “영업 정책 영향이겠지만 직원들도 펀드 고객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달갑지 않아 해. 같은 고객관리 시간이면 주식위탁 업무는 수수료가 사고팔고 1회전으로 거래 금액의 1%이고, 펀드는 입이 마르도록 설명해봐야 1년에 1%니까. 시간 부가가치가 10배에서 많게는 100배인 셈이지. 주식위탁 1천만 원 고객보다 펀드 고객은 자산이 10억 원은 되어야 고객 1인당 수익이 비슷할 거요. 또 1천만 원 주식고객은 평범한 직장인 경우가 많아 상대하기 편한데, 10억 원대 펀드 고객은 특급 VIP 대접을 받으려는 사람들이라서 거들먹거리는 거 받아 주려면 피곤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판촉물을 챙겨주랴 밥을 대접하랴 마케팅 비용도 만만치 않지.”

단순하게 산술적으로는 신촌 지점장 얘기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주식 영업과 펀드 영업은 영업 수익의 차이만큼 부수되는 위험과 변동성도 주식이 압도적으로 크다. 펀드 영업만 하던 직원은 주식 영업의 세계에 발 들이기 쉽지 않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 공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과 비슷하다. 속으로 이런 고민을 하는 조통두를 보며 신촌 지점장이 말을 이어간다.

“그렇다고 펀드 고객을 주식고객으로 전환해서 성공할 확률도 높지 않은 게 사실이야. 펀드를 주로 거래하는 고객은 위험과 손실을 참아내는 수준이 주식거래 고객보다 아주 낮잖아? 대부분 펀드 고객은 투자신탁회사가 본질에서 은행이고, 다만 만기 수익률이 조금 변동할 수 있지만, 투자신탁회사와 직원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 변동성을 덮어두는 것이 아주 오랫동안 형성된 펀드 산업 문화였으니까. 기억나지 않나? 펀드 고객은 옛날부터 투자신탁회사를 투자신탁 은행이라고 불렀어. 그만큼 우리를 믿는다는 뜻이었지. 원래부터 펀드 고객은 약간의 위험이 발생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조 지점장도 알겠지만, 주식을 잘하는 사람들도 투자 성공확률은 10% 될까? 지금 펀드 고객을 주식거래로 바꾸려는 경영진은 펀드 고객이 주식거래를 처음 한 후 한 번 실패하게 되면, 다시 펀드 거래로 돌아올 수 있겠지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러면 십중팔구 펀드 고객은 심한 신뢰감 훼손과 함께 회사에서 도망갈 거야. 특히 기대 수익과 브로커의 능력을 과장해서 펀드 고객이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으니 더 그렇지. 알다시피 회사에 민원, 소송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어. 아마 희생당한 펀드 고객들에게 우리는 뱀파이어 같을 거야. 난 요즘 이런 생각 하면 회사 다니는 게 끔찍해. 정말 끔찍해. 회사가 직원들은 뱀파이어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도 후배들이 그렇게 하도록 방조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해. 직원들이 고객에게서 구해 회사에 바친 피를 조금 얻어먹겠다고 묵인하는 거지. 먹고 살겠다는 핑계로.” 

벰파이어(일러스트 조수연)

신촌 지점장의 얘기를 듣는 내내 조통두는 그를 말 없이 응시하다가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도 공감하는 얘기였으나 언어를 통해서 듣기는 처음이라 착잡했다.

“솔직히 저도 착잡하고 정말 가끔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투자신탁회사에 입사할 때는 가족들에게나 친구들에게 정말 축하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어디 가서 증권회사 지점장이라고 얘기 안 합니다. 회사원이라고 하지요. 정말 한심합니다. 회사는 직원들 생계를 볼모로 협박이나 해서 어떻게 하면 고객재산을 합법적으로 회사 몫으로 갉아 낼까 강요하는 듯하고, 나는 그것을 현장에서 지휘해야 하니 어떨 때는 정말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

신촌 지점장이 동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이 짓을 언제까지 더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은 같은데 내가 어찌할 방법은 없으니 답답하고. 절이 싫은 중이 떠나야 하나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휴. 그만하고 돌아가지. 답 없는 얘기 자꾸 해야 스트레스만 쌓이니. 저 본부장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 사실 그 사람도 사는 것에 엄청나게 겁먹어서 그런 거야. 경영진으로부터 지시를 받으면 소화할 자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우리에게 전이(轉移)하는 것뿐이야.”

 신촌 지점장이 걱정 담은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간다.

“엊그제도 모 증권회사 본부장이 출근한다고 집에서 나갔는데, 차 안에서 번개탄 피워 놓은 채 천당 문 노크했다니까. 많은 사람이 목숨을 버리고 있어. 뉴스에서는 고객에게 너무 큰 손실을 끼치거나 고객 몰래 돈을 횡령해서 투자하다가 실패해서 그리됐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라. 그들도 우리처럼 건전한 상식과 꿈을 가지고 증권회사에 들어왔었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으나 결국은 뱀파이어가 된 자신을 용납하지 못했을 거야.”

 흡혈귀 얘기가 나오자 조통두는 자기 목을 손으로 만져본다. 그의 전임 수유지점장도 횡령으로 형사재판 중이지만, 결국 개인적으로 득을 본 것은 없었다. 회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실적을 내야 한다고 계속 다그쳤고, 영업 정책의 최면에 걸린 그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보지 못하고 넘은 것이다. 신촌 지점장이 작심한 듯이 말을 이어간다.

“나도 참기 힘들 때가 오면 그만둘 거야. 죽을 정도로 망가지기 전에 결정해야지. 뭐 회사가 늘 하는 얘기대로 우리 같은 무지렁이를 대체할 부속품들은 얼마든지 있다고 하니 회사에 미안할 필요는 없겠고. 오히려 젊음을 바쳐 평생 일한 직원일수록 식충(食蟲)으로 취급하는 분위기이니, 더는 상처 입기 전에 다른 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인데. 이젠 지쳤어. 아마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 회사의 인사 전략일 수도 있지. 생각이 많고 고객이 안타까운 늙다리 직원보다는 경험 없어서 뭔지 모르고 시키는 대로 하는 젊은이를 늘려서 인건비를 줄이는 전략 말이지. 그만두는 것은 아쉽지 않은데 그 젊은이들을 지켜줄 선배들이 없어서 걱정이야. 하긴 저 젊은이들도 우리가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회사가 세뇌하는 덕에 선배들은 다 숙청 대상으로 알고 있으니…….”(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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