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 책을 읽다 생각해보니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기 시작했다. 아직 몇 장 읽지 못해서 책에 대해서 뭐라 할 말은 없는데, 메트를 언젠가 꼭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기는 하다. 뉴욕에 가보기는 했지만 짧은 여행이라 박물관이랑 미술관은 안갔네...
시카고에는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이 있다. 메트 만큼은 아니지만 시카고인들이 자랑하고 사랑하는 미술관이다.
정기회원권을 가진 나는 매년 비싼 멤버십을 갱신하지만 번번히 일년에 서너번 가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1번 입장에 35불씩 하기에 결국은 돈을 번 셈이라고 내심 뿌듯해 한다.
멤버십이 있으면 대기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미술관의 가장 앞에 있는 갤러리에 인상파 작품 화가들이 있는 탓에 내내 몇년을 인상파 화가들 작품만 보다 우연히 발견한 뒷골목같은 통로를 통해 들어간 또다른 회랑에서
발견한 반 고흐의 자화상 앞에서 몇 시간을 넋놓고 있었던 기억도 있다. (첫째는 몇년을 오면서 반 고흐 자화상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나의 무지함에 기가 막혀서,그리고 그 와중에 그의 아름답고도 강렬한 색채에 반해서) 몇번을 자화상만 보러 매 주 미술관을 방문했다. (멤버십을 산 게 그토록 자랑스럽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내 열쇠고리는 미술관에서 파는 반 고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토록 우울증을 깊게 앓았던 이의 그림이 이토록 삶의 강렬한 색채를 보인다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마도 삶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우울했을지도.
미술관은 자주 특별전을 여는데, 아쉽게도 생각보다 유명한 작품들이 오지는 않는다. 유명한 화가들의 초기작품이나 덜 알려진 작품들이 자주 오는 듯하다. (그러나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비싼 작품들을 대여하는데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겠지) 나는 작품 옆에 쓰여진 깨알같은 설명들을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작품이나, 화풍, 작가, 시대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작품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매개로 한 역사와 남의 삶의 이야기를 엿들으러 미술관에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착각이라기보다는 사실인데 그렇게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조금 상한다)
나는 그림을 통해 그 작가를 만나는 것인데, 깨알같은 설명글이 밤 길의 등불이 되어주는 셈이다.
매번 인상파 화가들과 반 고흐의 자화상만 뚫어져라 보다 시카고를 방문한 예술가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현대미술관을 구경했다.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들. 전시관 한 켠에 사탕무더기가 쌓여있는데 알고봤더니 예술작품이었다. 처음에는 훨씬 더 큰 무더기였는데 관람객들이 한 개씩 가져가서 내가 갔을 때는 이미 무더기가 많이 작아진 후였다. 그 작품들은 관람객들이 사탕을 가져가기를 요청했고, ‘사탕 가져가기’의 행위가 작품의 일부인 것이었다.
과거의 한 순간을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탕이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작가와 관객이 조우한다. 행위 속에 작품이 존재한다. 재미있는 현재의 행위.
미술관 앞에는 석고계단이 멋지게 늘어서있다. 그 앞에는 1년 내내 페인트 통을 드럼 삼아 타악 연주를 하는 청년이 있다. 가끔은 여러명이 잼을 하기도 하는데 생각해보니 이제 그들의 타악 연주가 없는 미술관은 상상이 잘 되지조차 않는다. 그대들의 연주에 가호가 있기를.
미술관은 미로처럼 복잡하지만, 길을 아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중정으로 가는 작은 문을 살포시 열어준다. 미술관 가운데에는 작은 중정이 있는데 대리석 분수에는 석조동상이 세워져있고, 물 위에는 연못이 피어있다. 물론 여름을 기준으로 이야기다. 겨울의 중정은 아예 문을 열 생각을 안할지도 모르겠다.
시카고의 겨울은 매우 춥고 매섭다.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그곳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찾는 길이 쉽지 않은 탓에 중정에는 여태 단 한번 밖에 닿지 못했다. 마치 선택된 사람들만 갈 수 있는 비밀의 화원처럼 대체 가는 길이 생각나지를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