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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존재

by 솦 솦

결혼식이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늑장을 부리며 차일피일 준비를 미루던 나와 결혼할 이는 이제서야 부리나케 급하게 결혼준비를 한다.

젊은 이들에게는 한번 해볼만한 꿈같은 나날이라 하지만, 마흔여섯의 신부에게 결혼준비는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어 주판알 사이에 작게 남은 여백 틈에 다른 주판알을 밀어넣듯이 우겨넣어 해야 하는 덧붙이 일들로 여겨진다. 천정부지같이 솟아오른 물가를 보란듯이 반영하고, 그렇지 않아도 높은 시카고의 물가를 또 한번 반영하고, 말도 안되는 바가지 같은 결혼시장의 물가를 다시 한번 반영해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매순간은 얼토당도않은 돈을 쓰는 기간이 되어버린다. 통장의 잔고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는데, 지금의 내게 잔고는 의미없이 그저 하나의 이미지로 환산되어버렸다. 평소라면 절대로 쓰지 않았을 금액을 평소라면 절대로 구입하지 않았을 터무니없는 이유를 위해 아주 쉽게 쓰게 된다. 결혼은 이런 것이구나, 씁쓸해하면서도, 어느새 나와 결혼할 이는 또 몰아치며 체크리스트의 할 일들을 강박적으로 해치운다. 강박적으로 돈을 쓴 달까.


스몰웨딩을 택했다. 가족과 친한 이들 육십명과 함께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나와 결혼할 이는 비교적 큰 가족을 가졌다. 그리고 비교적 애틋하고 친밀하다. 뉴욕에서, 보스턴에서, 클리블랜드에서, 미국 중부와 동부의 크고 작은 지역에서 모두 날아 시카고에서 우리를 위해 모인다.


나와 결혼할 이의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셨으나, 각자의 가정을 이룬 형재자매들이 그들의 아이와, 아이와 아이들을 끌고 온다. 각자에게 정답다. 끊임없이 함께 웃고 담소하고 기억하고 꿈을 꾼다. 함께 자라고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형제자매들은 서로에게 태산같은 기둥이 되어준다.


나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그리고 친척들은 모두 한국에 있다. 고모와 삼촌들은 모두 팔십대, 친자식이 아닌 조카의 결혼식에 열네시간을 날아 해외로 오시라고 꿈에서라도 말할 수는 없다. 혹여 오신다고 하는 몇분은 내가 손사레를 치며 말렸다. 14시간의 비행기 여행부터가 고역인 것을, 그 고생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혼식날을 상상해본다.

결혼식장에 부모가 없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육십명의 이들 중 가족은 여동생 하나만인 것은 어떤 느낌일까.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은 시뮬레이션에서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 날이 되어봐야, 나는 아마도 실제로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은, 정말로 여러 함의를 가진다.

부재하나, 동시에 존재할 나의 부모님은, 결국 육체적 존재의 부재 속에서도 내 안에 존재함으로 인해, 그 날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몇 차례 가족이 없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태산같은 기둥이 없는 나와 내 동생을, 오랜만에 다시 한번 느낀다.


외롭지 않기를.

이겨내기를.

부재하나, 존재함을.

인간의 할 바는 결국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임을. 사람답게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할 바를 정성스럽게 수행하는 것에 있음을. 매사 정성스럽게 사는 것이 우리의 그저 할 바임을. 그것으로 결혼식 하루도 채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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