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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주로가 있는 밤 Nov 15. 2022

취준생을 버티게 하는 힘

공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모양새와 비슷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우선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구하고 그 뒤에 결혼을 해서 토끼 같은 자식-1명-과 함께 우리 가족 행복하게 사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니, 저도 막연히 그럴 거라고 의심치 않았네요. 그게 뭐 당연한 순서 같으니까. 그렇게 틀에서 어긋나는 엉뚱한 생각을, 그러니깐 순서가 마구 섞이는 일이 벌어지는걸 거의 생각 못했습니다.


하지만 먼저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 가방끈을 길게 하려고 했던 대학원에서 겨우겨우 졸업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정말 취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이 되더라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걸 보니 인생은 생각하는 대로 풀리지 않나 봅니다.


이 사람을 놓치지 않고 싶더라고요.

그런 연휴로 취업준비를 빨리 끝내야 하는 조급함이 컸습니다. 이 사람을 놓치지 않고 싶더라고요. 시  지금 마누라에 푹 빠져 있던 터라 빨리 취업만 하면 결혼해주겠지 라는 아주 태평한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모아둔 돈은 물론 없어서 닥치는 대로 취업서류를 찔러 넣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청년들이 취업하기가 좋은 때는 아니었습니다. 필기시험 경쟁률이 100대 1이 넘어가고, 1차 직무면접과 영어면접을 걸쳐서, 최종면접에서도 3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은 정말로 취직하고 싶은 사람들만 취업이 되었습니다. 저처럼 어쩌다 보면 되겠지라는 작은 생각으로는 도무지 안 되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어찌어찌 올라간 면접에서 또 떨어지고 밤에는 나가서 놀이터에 앉았습니다. 재미없고 우울한 이야기뿐이어도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는 흔쾌히 들어준 것 같네요. 어디 기업, 어느 기업, 무슨 무슨 일 따위를 한참 나열했었는데, 와 정말 재미없었겠네요. 뭐 그래도 딱히 재미없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합격


이번에는 제발 합격.이라는 마음의 빚이 상당히 커져가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께도 마음의 빚이 있고, 친구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합격해서 나름대로 밥을 사주며 다 이자를 붙여서 갚았던 것 같네요. 뜬 눈으로 준비하면서 틀림없이 잘 준비해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속상함때문에 베개 꼭 끌어안고 빌면서 잤습니다.


취준생의 힘듬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히 힘겨운 생활이었네요. 물론, 그 정도야 나는 더더 힘든 일을 겪어보았다는 분들도 있겠고, 그것도 맞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제가 안 힘든 건 아니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금 보면 아직 술 마시고 그다음 날 멀쩡히 생활할 만큼 젊었습니다. 공부하기 싫은 날은 온종일 산책하거나 잘 수 있었고, 지금처럼 만원 지하철에서 피곤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었네요. 마음에 안 드는 일에 머리 숙일 필요가 있는 회의도 안 했겠네요. 어머니랑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도 그때였습니다. 그래도, 빨리 취업을 해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행복해야겠다. 그러니깐 취업을 준비하는 것 외 다른 생각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지금 돌이켜보면, 취업을 하고 어떻게 결혼할까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나 싶기도 합니다. 아참, 이 사람을 놓치지 않고 싶을 때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죠. 결혼은 신중하게 하셔야 합니다. 물론 저는 다시 태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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