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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집에 갔더니 함께 먹자며 양념치킨을 시켜놨다. 초등, 중등 조카들은 아주 신났지만 나는 먹을 수 없었다.
"언니 , 난 고기 안 먹어."
"뭐? 왜?"
"..."
음식 앞에서 왜냐고 물으면 입이 잘 안 열린다.
잔인한 공장식 축산에 대한 반대와, 그런 산업에 투자하고 싶지 않다는 말 말이다.
"왜냐니까?"
"이모, 왜 안 먹어요? 진짜 궁금하다."
언니와 조카들은 닭을 부위별로 뜯으며 계속 물었다.
"환경 문제 때문..." "야, 그냥 먹어. 너 하나 안 먹는다고 변하냐!"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해. 변화 때문이라기보다는 내 신념이야."
"이모, 그냥 먹어요. 우리나라 시민의식이 그렇게 높지 않아요." 조카는 들고 있는 고기를 요리조리 돌려 먹을 부위를 탐색하고 있다.
"상현아, 고기 먹는 사람이 시민의식 낮은 건 아니야."
"아, 그건 그렇죠."
"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으면 나처럼 안 먹는 사람도 있어. 그게 환경문제든, 건강문제든, 다이어트든."
"네."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맛있게 고기 먹고 있는 사람 앞에서-게다가 손님으로 와서는 집주인 불편하게 찐 고구마만 먹으며 나의 얘길 하는 건 쉽지 않다. 혼자만 고고한 듯 먹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는 까탈스러운 채식주의자처럼 비칠 것이다.
환경문제가 얼마나 심한 줄 알아요?
전 샴푸 안 써요. 미세 플라스틱이 많이 나온대요. 사람들 물에 들어갈 때 선크림 좀 안 발랐으면 좋겠어요. 산호초가 죽어가잖아요.
분리배출 시 라벨 떼고 세척하지 않으면 일반 쓰레기로 분류돼요.
전 로션을 안 써요. 용기 재활용도 안 되잖아요.피부가 인위적인 보습에 익숙해져서 스스로 유분 컨트롤도 못 해요.
부산이 10년 뒤에 잠기기 시작하여 수상도시를 계획중이라는군요.
알고 있어요?
나는 되도록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나의 관심사가 모두의 관심사가 될 수 없는데 내 생각에 동참해 주십사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어기제로 온갖 비건 혐오자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나 역시도 30여 년 동안 축산 행태를 알면서도 죄책감 없이 고기를 사 먹다가 오랜 시간 계기를 쌓아가며 바뀐 것이니, 말만으로 사람이 바뀌길 바라는 건 기대하기 어렵겠다.
그나마 해줄 수 있는 말은, 실천이라는 것을 무겁게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실천하는 것보다 문제를 인식하고 변하고 싶다는 의지가 중요하고 그것이 시작이며 고무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 하나 변한다고 세상 안 변한다는 패배주의적 생각이야말로 이 환란의 시대에 불을 지필뿐이다.
...엥? 날짜보니 내 생일이었네? 시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