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루 Apr 08. 2023

#40. 무덤

막 15:42-45 | 눅 23:50-54 | 요 19:38-42

[막 15:43]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눅 23: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요 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요셉은 예수의 제자였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습니다. 자신을 존경 하는 사회의 시선에 자신의 자존감, 정체성을 두었습니다. 요셉은 사람들의 시선, 사회의 평가에 속박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지위와 명성을 가졌지만, 그는 포로 된 자였습니다. 그에게 자유가 없었습니다.


[막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요 19:38]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요셉을 변화시켰습니다. 휘장을 찢으시고 바위를 터트리시고 무덤들을 여시면서 요셉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드러내시면서 낭독하신 말씀처럼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셨습니다(눅 4:18).

 요셉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요셉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하찮고 치욕스럽게 죽임 당한 청년에게서 구원을 보았습니다. 어떤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어떤 시선을 마주했습니다. 자신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저 청년이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그 나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유일한 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 19: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그러나 그 구원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어버렸습니다. 그 시체는 경직되었고 차갑게 식었습니다. 요셉에게 이것이 어떤 의미였을까요, 요셉은 어떤 심정으로 예수의 시체를 장사했을까요?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마 27:60). 요셉은 자기의 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두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요, 만일 그랬다면, 요셉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던 요셉이 죽었습니다. 사람의 시선에 갇혀 있던 요셉은 거기서 죽었습니다. 사회의 평가에 갇혀서 그토록 소망하던 천국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던 요셉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당돌히 예수의 시체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이 자신을 뭐라 평가하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시선과 평가에 사로잡혀 있던 자는 더 이상 여기 없습니다. 예수의 시체를 장사하는 요셉은 ‘이 일 후에’ 새로 태어난 자이며,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이 일 전에’ 있던 요셉을 장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난 주간, 예수님, 당신이 제 앞에 계십니다. 제 눈을 들어 십자가 위에서 죽임 당한 당신을 보게 하십니다. 그 순간 제 옛사람은 또 죽었습니다. 당신의 육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나는 이전의 나를 장사합니다. 당신의 육체 안에 예전의 나를 묻습니다.

 참으로.. 많은 고난과 물음표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로 얼버무리기엔 충분하지 못하다 여기며 애써 외면했던 답답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제 마음에 비추셨”을 때 그 모든 것이 해소되었습니다.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예수, 당신은 참으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십니다. 끝났습니다, 이전 것은 다 끝났습니다, 지나갔습니다.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 유대인들의 저주를 받은 자를 상관한 요셉의 토요일은 어땠을까요? 요셉의 인생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은 그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엎었을 것입니다. 요셉을 위선자, 배반자라고 정죄하고 모욕했을지도 모릅니다. 큰 안식일이었을 이 토요일에, 요셉을 향한 비난과 저주와 배신감으로 들끓는 분노가 안식일이 끝나면 요셉을 삼키려고 날을 세우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요셉의 마음이 지금 제가 느끼는 이 충만함과 같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이 토요일에 느꼈던 자유와 해방이 진실되고 선한 것이었음을, 하나님의 것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무덤은 비었습니다. 예수께서 요셉의 무덤을 비워버리셨습니다. 요셉은 더 이상 죽음에 누워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예수의 몸에 자신을 장사했던 요셉은, 부활하신 예수의 몸에서 살아났습니다. 끝났습니다. 이전 것은 다 끝났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9.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