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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Aug 17. 2023

영화_오펜하이머Oppenheimer

# 강력한 무기

핵폭탄을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오펜하이머(이하 오피)는 자신이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핵폭탄을 만들 것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선두가 독일 나치라는 것을 알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가, 인류 역사상 가장 악한 자의 손에 들리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래서 서둘렀다, 전력을 쏟았다. 오피는 성공을 확신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오피는 핵폭탄의 위력을 경험한다면 감히 그에 대항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강력한 무기는 모든 전의를 앗아가며, 이로써 ‘모든 전쟁’이 그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강력한 무기는 전의를 상실케 한 것이 아니라 그 무기를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을 부추길 뿐이었다.


# 연쇄 반응

중성자의 충돌로 원자가 핵분열을 하고, 그러면서 발생하는 중성자는 또 다른 핵분열을 일으킨다. 오피가 일으킨 중성자 충돌은 걷잡을 수 없는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악은 나치였다. 나치가 무너지자 그 뒤에 일본이 서 있었다. 일본도 무너지자 그 뒤에 소련이 서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무너지기도 전에 또 다른 악이 오피를 위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지키려 했던 미국이었다. 오피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치우치지 않는 길을 걷고자 했다. 그것을 선이라고 여겼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선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지키려 했던 그것이 오피를 파괴하려 한다. 무엇이 악인가? 누가 적인가?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정하는가?

연설단으로 걸어 나가는 오피를 둘러싼 건 잔뜩 고조된 사람들의 발 구르는 소리였다. 연설단 앞에 선 오피의 눈에 보이는 것은 상기된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마치 광기에 사로 잡힌 듯한 그 미국인들에게서 나치가 보였다. 그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하는 오피는 그 순간 핵폭탄, 그 자체가 됐다. 그가 뱉은 폭력적인 말들은 섬광으로, 방사능으로 사람들을 삼켰다. 더욱 거세게 발을 구르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발밑에 폭발에 휩싸여 재가 되어 버린 시체와 부둥켜안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있었다.


장면이 바뀌고 오피를 향해 윽박지르며 압박하는 미국인들 역시 커다란 섬광으로 오피를 덮쳤다. 오피를 환대하며 치켜세워주던 스트로스는 오피를 궤멸시키려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오피의 전생애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렇게까지 한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처럼 악의 씨앗은 알량하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중성자 한 알이 일으키는 파급효과처럼 인류에 커다란 재앙들을 몰고 왔다.


# 성화

악의 연쇄 반응은 끊이질 않는다. 더 큰 악, 더 큰 파괴를 향해 맹렬히 질주한다. 영화 초반, 오피는 셀 수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과 뒤엉키는 물의 파장들을 응시한다. 이윽고 그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핵분열이 된다. 그 한가운데서 오피는 묵묵히 버텨낸다. 맞서 싸우라는 아내의 한탄에도 그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견뎠다. 그 모습은 마치 그를 메시아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이며, 선지자이긴 했으나 구원자는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을 굳게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오피는 스스로 성화되고자 발버둥 친 것이었다. 자기 손에 묻은 수십만 명의 피를 씻으려고 살갗이 찢어져라 닦아대는 꼴이었다. 괴로운 만큼 씻길 것이라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연쇄 반응을 막을 힘이 그에겐 없었다. 그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쪼개지고 분열하는 원자핵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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