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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May 11. 2022

아카시아

그때 우린 손을 잡고 걸었어

날이 너무 좋아서, 난 좀 걷고 싶었고, 너는 기꺼이 따라나섰지

손가락 사이사이로 너의 악력이 느껴졌어

그 감각이 그날따라 유난히 선명했던 것 같아


파스텔톤으로 물드는 하늘이 참 예뻤지

나는 하늘을 보느라 고개를 치켜들고 걸었고,

너는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내 걸음이 방해받지 않게 살며시 인도해주었어. 너의 시선, 내 손을 이리저리 끌어주던 부드러운 힘을 느낄 수 있었어.


너는 엄지로 내 엄지를 문질렀어. 기분 좋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 같아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갑자기 너는 멈춰 섰지.

이미 하늘은 어두웠고 가로등 불빛과도 먼 길의 어느 어두운 구석에서.

나는 조금 놀라며 너를 바라봤고 너는 눈을 감고 있었지.


[ 왜? ]

[ 꽃향기가 났어, 맡았어? 너무 좋네. ]


너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어. 나도 크게 숨을 들이쉬었지.


[ 정말이네! 무슨 꽃이지? 아카시아인가? ]

[ 아카시아 같다! 무슨 꽃인가 했는데~ ]

[ 아카시아구나. ]

[ 응, 아카시아야 ]

[ 너무 좋다. ]

[ 응 좋아. ]


그렇게 각자 킁킁 대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얼마나 웃겼던지 

네 앞에서는 얼마든지 우스워질 수 있다는 게 참 편하고 행복했어


다시 걷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너는 또 내 엄지를 문질렀지 이번에는 나도 참을 수 없었어. 깍지 낀 채로 손을 올려 네 엄지를 꽉 깨물었지.

그런데 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걷기만 했어. 마치 그러면 내가 심통이 난다는 걸 아는 것처럼 말이야. 너는 자주 그렇게 짓궂게 굴잖아.


[ 안 아파? ]

[ 아파~ ]

[ 뭐야~ 그러면서 왜 안 아픈 척해? ]


너는 짙은 갈색의 눈동자로 나를 지그시 바라봤어.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볼 때마다 나는 조금 심장이 뛰어 조심스러운 설렘, 두려운 듯한 기대를 느끼곤 해.


[ 뭐야.. 너 뭐야, 진짜.. ]


두근대는 마음을 숨기려다가 그만 나도 모르는 말이 튀어나왔고, 너는

[ 나, 당신이랑 깍지 끼고 이 밤을 함께 걷고 꽃향기도 함께 맡는 사람이지. ]라고 대답해 주었어. 

나는 계속 너의 눈동자만, 더 짙어지는 너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었어.

그리고 너는 이어서 말했지.


[ 깨무는 건 아파. 하지만 손가락으로 당신의 치열이 느껴지는 게 좋아. 그래서 내가 아픈 티를 내면 당신이 깨무는 걸 멈추는 게 싫은 것 같아. 또 당신의 숨이 느껴지는 것도 좋아. 특히 추운 날에는 더 선명하게 느껴져. 이따금씩 당신이 나를 깨무는 건 당신이 행복을 나에게 전해주는 걸로 느껴져. 그 행동에 분명한 고통을 느끼긴 하지만, 오히려 그 고통 때문에 당신의 행복이 더 생생하게 감각되어지는 것 같아. ]


너의 입에서 나의 귀로 전해지는 문장들 사이로 불어온 꽃 향기에 우리는 큰 숨을 들이쉬었다.


[ 십자가 같네. 고통이 행복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는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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