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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집 Dec 17. 2021

고모

무대 위에서

내 기억 속 고모는 지금의 나보다 어리다. 서른다섯 까지가 고모에게 주어진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고모의 이른 죽음과 살아온 삶이 주는 영감이 강렬해서 고모는 항상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다. 고모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오빠들만 셋을 둔 막냇딸이였다. 유일하게 서울에 올라와 이름 있는 대학을 다닌 사람이기도 했다. 고모는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81년 대학에 입학했다. 고모가 대학생이 되었던 해 아직 쌀쌀한 봄, 나라에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식을 했다. 군부대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었다고 했다. 스무 살의 고모는 곧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물살에 몸을 던졌다. 세상에 눈을 뜨면 뜰수록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안 하는 일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고모는 변했다. 적어도 가족들의 눈에는 그랬다. 대학에서 무얼 보고 느꼈는지 눈동자가 깊어졌고 그 안에 차마 읽기 두려운 이야기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오빠들은 그 이야기를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 더럭 화를 내고 말았다. 


"시골에 계시는 늙은 부모님들 생각을 해야지.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가서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냐!"


어린 나의 눈에도 고모는 비슷비슷한 가족 어른들 중에서 당연 튀는 사람이었다. 명절이나 생일잔치 같이 가족, 친지들이 다 모이는 날에도 항상 너무 늦게 나타나는 사람. 커트 머리, 화장기 없는 맨 얼굴, 큰 안경과 낡은 운동화.... '언제까지 데모질이나 하고 다닐 거니?'라는 말도 이제는 지겨워 어른들은 짧은 한숨만 내쉬었다. 그 속에서도 고모는 꿋꿋하게 남은 밥을 싹싹 비우곤 했다. 나는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그런 고모 특유의 '눈치 없음'이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쁘게 오가며 웃고 떠드는 어른들 속에서 기름처럼 겉돌던 유일한 이 어른은 자주 세 자매들의 방으로 피신을 와 있곤 했다. 고모는 다른 어른들처럼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거는 법이 별로 없었다. 보통은 눈을 감고 앉은 채 졸다가 어느새 우리를 바라보거나 하는 얘기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식구들이 모두 마당에 나와 달빛을 보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나도 신이 나서 동생들과 친척 동생들 앞에서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어쨌든 대통령은 김영삼이 되어야 해!" 왜 그런 말이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익숙하게 들어왔던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나도 모르게 주워 담은 말이었다. 실은 동생들 앞에서 '나도 안다'는 어른 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우리들 노는 모습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고모가 갑자기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당황했다.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게 중요하지 누군가 나에게 이유를 물어올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에게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남의 생각을 내 생각인 척 연기했다는 걸 들킨 것이 수치스러워 얼굴이 뜨거워졌다. 돌이켜보면 나의 사회적 자아가 처음으로 눈 뜨게 된 사건이었다. "김대중 씨... 좋은 분이시거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셨고... 나중에 네가 직접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거야" 훗날 이 숙제를 하게 되기 전까지 나에게 김대중은 '수치심'을 떠올리게 하는 단축키가 되고 말았다.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은 낙선했고, 그것은 '고모가 틀렸다'는 증거처럼 한동안 내 안에 남게 되었다. 좋은 사람이 질리 없으니까.... 


몇 년 후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성당 주말학교 여름캠프에서 고모와 다시 만났다. 고모는 당시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2박 3일짜리 캠프에 타의적으로 끌려와 있었다. 어른들은 어른들만의 숙소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숙소에서 각자의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니 안 봐도 고모의 난처한 상황이 눈에 훤했다. 캠프의 마지막 날 밤 아이들은 조별로 연극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각본도 역할도 무대도 모두 다 우리끼리 꾸미는 무대였다. 나는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올릴 이야기를 내 손으로 만들었다. 뭔가를 이토록 주도적으로 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얼떨결에 주인공까지 맡게 되고 이미 아드레날린 수치는 열여섯 인생 최고치를 찍고 있었다. 공연장으로 향하면서 입으로 대사를 외우는데 자꾸 '고모'가 떠올랐다. 내가 만든 이야기 속 주인공을 맡았다고 고모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앞에 고모가 나타났다. 이동하는 건물의 어두컴컴한 계단에서 불쑥 고모가 내 팔을 붙잡았던 것이다. "고모, 나 한 시간 뒤에 연극할 거야. 내가 쓴 얘기고 주인공도 나야" 플레이 버튼이 눌린 것처럼 가슴속 말이 스르르 흘러나왔다.

무대에 올라 처음으로 '연기'라는 걸 하는데 너무 심장이 나대서 기절할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기억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무대 위로 쏟아지는 조명 때문에 반대로 관객석이 깜깜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깜깜한 관객들 중 맨 뒷자리에 고모가 있었다. 다들 관객석에 앉아 자기 조의 발표를 준비하고 기다리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한 사람만이 이 무대를 집중해서 보고 있다는 것이 살갗으로 전해져 왔다. 차차 심박수가 안정되었고 나는 역할에 몰입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가 만든 나'를 고모에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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