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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닉스 불나방 Aug 30. 2016

DIAMONDBACKS

10회말 연장전 3대3 ... 역시 반전의 즐거움, 그 이름 야구!

지금으로부터 16년전, 2000년 쯤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나는 동생과 함께 Phoenix 홈팀인 다이아몬드백스팀의 경기를 관람하려고 디백스 홈구장을 찾았다.  그 때는 김병현 선수와 박찬호 선수 등이 한국의 명성을 드높이며 메이저리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었고, 나 또한 마무리 투수로 김병현 선수가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동생과 함께 처음으로 미국의 야구 경기장을 찾았다.

<아리조나 디백스팀 전성기 시절 김병현 선수>

그때의 기억으로는 넓디 넓은 야구장의 크기에 우선 압도되어 양놈들은 커도 너무 크다가 첫 인상이었고, 동대문 구장과 잠실 경기장만 봐왔던 내게 에어콘이 내내 가동되는 지붕달린 돔구장은 미쿡 선수들은 야구도 편하게 하네 하는 반쯤은 삐딱한 시선과 함께 속으로는 너무도 시원하게 야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는 인프라에 무척이나 놀랐으며, 이렇게 대단해 보이는 야구장에서 한국 선수가 그것도 너무 잘 뛰고 있다는 자부심에 어깨가 으쓱했던 것 같다.

<디백스 경기장 외부 입구, Chase Field in Phoenix>
<경기장 내부 입구>


<코튼캔디 판매녀, 이런 식으로 슬러쉬, 츄러스 등등 각 아이템을 매달고 다닌다>

어느 덧 16년의 시간이 지나, 야구광팬이던 Missy 직장인 30대의 나는 40대 중반,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 양손에 아들의 손을 붙잡고 디백스팀의 경기를 보러 같은 경기장에 왔다.  예전에 한번 와봤던 기억을 더듬어아들들과 경기장 이곳 저곳을 둘러본 후 자리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려니 아직 나이가 어린 아들 덕분(?)에 경기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다.  2아웃 만루 상황에 공 하나면 끝나겠는데 하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불쑥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하질 않나,  2스트라이크 3볼에서 투수가 와인드업하고 있어 완전 집중모드로 쳐다보고 있는데, 큰아이가 "엄마, 저기 전광판에 있는 숫자가 뭘 말하는거예요?"라고 물어오질 않나, 지나가는 코튼캔디 맨을 보고는 둘 다 사달라고 조르지를 않나...... 도무지 경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두 아이들에게 야구의 룰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수없는 질문이 쏟아지지만, 그래도 베이스를 모두 밟고 홈으로 들어오면 1점, 공이 땅에 닫기 전에 잡으면 아웃이라는 것, 우리같은 사람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면 홈런, 스트라이크는 3개 볼은 4개까지라는 것만 초간단 모드로 설명해주고 나니 그런대로 알아듣는 듯 야구경기를 보며 응원도 해준다.    

   

  사실상 아이들의 핑계를 대기는 하였지만, 경기의 몰입도는 예전과 같을 수가 없는 것이 팀 선수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Phoenix에서 생활하기 시작한지 겨우 1년된 나에게 지역에 대한 연대감이 높을리 만무하며, 그 옛날 김병현 선수처럼 애국심을 자극해줄 한국 선수가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외국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인지라 좀더 많은 경험을 아이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늘 머릿 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고, 그것의 일환으로 오늘의 야구장도 오게 된 것이므로, 사실상 경기에 대한 몰입을 기대하기에는 나의 소싯적 야구 광팬이었던 기질을 슬슬 끌어올리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인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야구 경기 이외에 야구장 풍경, 이 곳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 등에 눈길이 가지며 하나하나 비교하게 된다.   내가 예전에 즐기던 잠실 경기장의 모습과 디백스 경기장의 모습을 비교하게 된다.  16년전 이미 경기장 크기와 시설 등 하드웨어에 감동하였으므로 그 부분은 다시 놀랄 것이 없었고, 경기장 안의 모습으로 내 눈길들이 머물기 시작했다.   

  제일 큰 차이...... 치어리더!  이 곳 야구장에는 치어리더가 없다.   이닝이 바뀔 때마다 재미난 이벤트들을 해주고 응원이 필요한 시점에 모두가 함께 함성을 지를 수 있도록 전광판을 통해서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전광판에 'Make some noise'라고 하면 알아서 모두 함성을 질러주고, 파도를 타 달라고 하면 파도타기를 한다.

적당히 응원하며 적당히 즐겨줄 수 있다.  전광판 만으로!  치어리더의 짧은 치마가 거슬리지도 않았고, 너무 큰 음악소리에 눈쌀을 지푸리지 않아도 되었고, 치어리더를 보겠다고 이리 저리 기웃거리던 뭇 남성들의 거슬리는 행태를 보지 않아서 좋았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야구장에 치어리더가 생기고 나서 야구 중계에서 꼭 빠지지않는 것이 치어리더이며, 그 치어리더 중 혹자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치어리더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응원과 집중의 효과가 더 있는 것은 물론 동의하지만,  나는 그것이 왜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하는 입장인지라(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치어리더가 없는 야구장이 훨씬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Legend 급 선수들의 달리기 시합, 이닝이 바뀔 때 하는 이벤트 중 하나>

그리고, 이닝이 바뀔 때마다 치어리더를 쳐다보고 있지 않아도 눈길을 줄 수 있는 이벤트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가족 모두가 함께 쳐다보고 웃을 수 있는 소소한 이벤트들이 짧은 시간 안에도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 나는 오히려 더 좋아보였다.  물론 우리 경기장에서도 있는 것들이지만, 매 이닝마다 치어리더의 격한 댄스와 음악을 강제적으로 들을 수 밖에 없는 것보다는 관심있으면 쳐다보며 같이 온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소한 이벤트가 야구를 관람하러 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공감의 폭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 맞는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아이들에게 전광판을 가리키며 이야기 나눌 거리가 있었으므로...


<10회말 3대3 동점 상황>

경기를 보다보니 재미있어졌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아이들도 엄마를 덜 괴롭혀주는 탓에 적당히 집중할 수 있었다.  점수는 10회말 연장상황에서 3대3 동점이었는데, 결국 디백스팀이 점수를 내지 못하고 11회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 나는 아이들과 일어났다.  시간이 너무 늦어진 탓에 경기의 끝을 보지 못하고 나오게 되어 아쉬웠지만, 오늘도 야구를 보면서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상념에 사로잡힌다.


9회초 2대1로 디백스가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레즈의 공격을 잘 막았다면 힘들이지 않고 9회초로 경기는 끝났을 텐데 1점을 내주고는 9회말에 2대2가 되었고, 10회초엔 레즈가 1점을, 10회말엔 디백스가 다시 따라 붙어 3대3 동점이 되어 11회로 넘어갔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이 절로 실감나는 오늘의 경기다.

  나는 야구를 볼 때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인생살이를 떠올리고는 한다.  특히 오늘같은 경기를 만날 때는 더욱 그렇다.   아무 일 없이 잘만 막아내주면 무탈하게 이겨낼 것 같은 상황에서 상대방의 점수가 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이렇게 잘 지나가면 되겠지 하는 순간에 어려움이 오기도 하고, 조금 어려운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한방 홈런처럼 역전이 되기도 하고...  인생사가 야구와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래서 야구가 좋지만 말이다.

야구의 반전이 짜릿하고 재미있고 그로 인해 기대감이 충만해지는 것처럼 인생사는 것도 역시나 기대하지 못했던 혹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듯한 무엇인가의 반전의 재미가 있나 싶을 때 좀더 신나게 살아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야구는 내게 진리다!


차 안에서 잠들어 있는 두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 아이들의 인생에 어떤 반전이, 어떤 기대가 숨겨져 있을지... 다시 한번 맘속으로 두 아들의 화이팅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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