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비드메르시 Aug 24. 2016

#1, 안녕 유럽. 나 이방인이야.

두근두근, 여행의 설렘이 시작되다.

2015. 10.30.

새벽 3:30 침대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D-DAY.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늘 놀러 가는 전 날은 이랬지. 특히나 나는 아주아주 먼 길을 떠나야 해서 더 긴장되는 밤이었다. 새벽 5:15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시작부터 쉽지 않은 여정.

혹시라도 늦잠을 자서 KTX를 놓쳐버리면 어떡하나, 내 여행이 시작부터 꼬여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쉽사리 잠들 수 없었던 두근거리던 밤이었다.



장시간 비행을 위해 렌즈 대신 뺑글이 안경을 푹 쓰고 집을 나섰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이른 새벽.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아저씨께 부산역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아가씨, 어디 멀리 가나 봐요?"

누가 봐도 눈에 확 들어오는 튀는 색의 커다란 캐리어를 낑낑거리며 들고 택시를 올라타자 기사님이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나에게 물어보셨다.

"네~! 아저씨 저 한 달 동안 혼자서 유럽여행 가요!!!"

안 물어봤으면 어쩔뻔했나 싶을 정도로 나는 크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와~ 아가씨 대단하네!!" 이렇게 아저씨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기사님은 젊었던 시절 배를 타는 항해사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시절 이탈리아에 오랫동안 있을 수 있던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봤던 로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가씨 정말 잘 선택한 거라고, 자신이 보고 느꼈던 것을 아가씨도 꼭 느끼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멋진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시작부터 나의 여행을 응원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을 만났다.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을 했다.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여행을 할 때 필요한 모든 바우처들을 인쇄하고 비행기 수속을 마치고 짐을 부쳤다. 노랗다 못해 샛노란색의 나의 캐리어. 여행 내내 짐을 잃어버릴 일은 없겠다는 생각.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서도 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던 나의 노랑이 캐리어.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새벽부터 계속 비어 있던 속을 달래기 위한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


드디어 나를 유럽으로 데려다 줄 비행기



정신없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아무리 자도자도 해는 지지 않았다.  



독일 뮌헨을 경유해서 최종 목적지 파리까지 가는 여정. 뮌헨까지 총 두 번의 기내식을 먹고 두 편의 영화를 봤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 번의 일본 여행, 홍콩, 마카오 여행 경험밖에 없었기에 이런 장시간의 비행은 처음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입맛에 꼭 맞았던 루프트한자 기내식


뮌헨 도착. 내가 타야 할 비행기를 찾기 위해 전광판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혹시나 잘못 찾아갈까 봐 또또 확인하고.




장시간 비행을 하고 독일 뮌헨에 도착을 했다. 프랑스 파리로 가기 위해 나는 경유를 해야 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그렇게 많았던 한국인이 비행기 트랜스퍼하니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동양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말 내가 이방인이 되었구나'




가까워지는 파리의 야경






드디어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을 했다. 공항은 정말 컸다.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첫날, 첫 숙소만 잘 찾아가면 반은 성공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때 나의 동물적인 감각이 발휘되었다.

어찌어찌해서 여기저기 물어봐서 공항에서 나의 숙소가 있는 universite 역까지는 무사히 도착을 했다.  

   

그러나 도착한 순간부터 동물적 감각? 내 촉? 다 사라짐.    

역에서 나오자마자 구글맵을 켜고 반대로 미친 듯이 걸어갔다. 바보같이 구글맵 어플을 휴대폰에 다운은 받아왔는데 구글맵을 보는 법은 하나도 연습을 안 해온 것이다. 문과 출신이지만 유독 지리에는 약한 방향감각 제로의 나. 1시간은 헤맨 거 같다. 구글 맵이 빙글빙글 돌고 나의 야맹증은 더 말썽이었다.




늦은 가을, 깊은 밤. 쌀쌀한 날씨.

분명히 추운데 등에서는 자꾸 땀이 났다.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숙소를 찾고 있는데 캐리어가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오 마이 갓.

벌써 고장인 건가.




지나가던 파리지앵들이 나를 보며 심하게 웃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날 보며 웃는 것이다. 한번 째려봐주고 캐리어를 살피니, 나와 캐리어 사이에 파리의 거리에서 나뒹굴던 낙엽들이 캐리어 높이만큼 밀려서 쌓여있다. 너무 정신없이 걷다가 온 동네 낙엽을 내가 캐리어로 다 청소한 것이다. 그래서 캐리어가 앞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지나가다가 웃을만했다.


쏘리. 청년 파리지앵 두 명.  

결국은 숙소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고 숙소 이모님이 나를 마중 나오셨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을 했고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다. 대충 씻고 나는 2층 침대에 몸을 뉘었다.




시차 적응?

이렇게 여행하면 시차 적응 따윈 없다.

바로 나는 꿀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숙소 앞 거리 모습

다음날 아침, 숙소의 문을 열고 나오니 펼쳐진 모습.

너무나도 낭만적인 파리의 거리.

어젯밤에 내가 저 낙엽들을 캐리어로 다 쓸고 다녔던 것이다.

( 심지어 내 얼굴만 한 낙엽들을 )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 청춘의 어느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