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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한 주노씨 May 08. 2021

아프니까 오십이다

발모제의 역설

50이 넘으니 몸이 슬슬 망가져 간다. 콕 집어 어디가 아픈건 아닌데 눈은 침침하고 목과 어깨는 결리고, 혈압과 당수치는 매년 조금씩 높아진다. 소변을 참는게 슬슬 괴롭고 괄약근도 느슨해져 가끔 대화중에 나도 모르게 ‘단발마’를 토해내며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당연히 관심이 건강에 쏠린다. 거북목으로 어깨가 아파오면서 도수치료란 걸 받으며 그동안 타먹지 않은 실손보험을 몇번 사용했다. 보험금을 거의 탄적이 없음에도 보험료 인상률이 엄청나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각종 영양제는 기본이고 ‘집에서 누워서 매일’하는 이정재가 광고했던 척추온열치료기, ‘디리릭’ 소리가 나는 거북목 방지기구, 습관되면 평생 바른자세 만든다는 휜 의자에 목걸이처럼 걸고다니는 넥마사지기까지 아픈 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것 같은 건강용품을 집안 이곳저곳에 들였다. 드디어 얼마전 헬멧처럼 쓰고 있으면 머리카락이 굵어진다는 레이저 의료기구로 의료 과소비의 정점을 찍었다.


한의원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집에서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요가원갔다 청소하고 씻고, 디닥넥 거북목 방지기를 착용한 상태로 커블체어에 앉아 각종 서류업무, 운전중 넥마사지기 착용, 틈틈이 홍삼과 8종 영양제 시간대별로 나눠 먹기, 밤에 세라젬으로 척추관리 후 자기직전 18분간 탈모예방 레이저치료 헬멧 착용!

다른 건 즉각적인 시원함이 느껴지는데 레이저헬멧은 사용 한달째인 아직까진 모르겠다. 진짜 풍성해질까?


머리 얘기가 나와서인데 주변의 많은 남자 지인들이 발모제를 복용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머리가 빠지지도 않는 30대 친구들까지 프로페시아나 그보다 저렴한 복제약을 처방받아 관리하고 있다. 장기간 복용하면 확실히 효과가 있다며 친한 선배가 강추하길래 요즘 머리결이 얇아지고 이마에 M자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거 같아 고민끝에 동네 의원을 찾았다.


우리동네 구좌의원은 모든 과목을 다 본다. 잘 모르는 증상은 환자 앞에서 바로 각종 전문서적을 펼쳐가며 진단을 한 후 처방을 내린다. 오늘은 피부과 의사로 변신하셨다.

의사: 탈모처방은 보험적용이 안됩니다

나:  네 알고 있어요 근데 부작용이 뭔가요?

의사: 드물게 성욕이 감퇴되는 부작용이 있긴 합니다만 걱정하실 필요 없고... 요즘 (비아그라같은) 좋은 약도 많으니...

나: (담배피워 나빠진 건강 인삼으로 챙겨라, 이거 원 담배인삼공사와 진배 없단 황당한 표정을 짓다 짐짓 미소지으며) 탈모말고도 요즘 소변을 참기가 살짝 어려워진 거 같은데 이거 전립선 비대증인건가요?

의사: 아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와 탈모방지제가 같은 약이예요. 두테스테리드라고... 전립선 처방은 보험수가가 적용되니 소변 받아오세요. 그걸로 처방해 드릴게요.

나: 진짜요? 일타쌍피 개이득이네요. 이래서 피부과와 비뇨기과가 붙어 있나봐요.(이건 무슨 논리지?)

결국 난 저렴한 비용으로 처방전을 받아 그 후 약 한달 간 조석으로 정성껏 약을 복용했다. 결과는? 전립선은 약간 좋아진거 같은데 모발은 딱히...

      

스포츠카의 딜레마란 게 있다. 소위 ‘간지나는’ 드라이브가 가능한 젊은 시절엔 돈이 없어 못사고, 정작 구매능력이 있을 때엔 머리가 벗겨지던지 배가 나와 영 운전하는 폼이 안난다. 발모제의 역설도 가능하단 걸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열심히 발모제 먹고 젊고 멋지게 보일 정도로 머리가 풍성해져 원하던 여성이 떡 나타나면 정작 그녀를 소 닭보듯 한단 거... 기껏할 수 있는 허세멘트라곤 ‘굵고 단단해진... 내 머리 어때? 발모제의 부작용으로 짐승만도 못한 놈이 될까 두렵다.


늙어서 아프다고 걱정하며 치료에 열심인 것도 어찌보면 스트레스다. 50년이 넘게 사용한 몸인데 아플 때도 됐다. 노화를 이겨내려 용쓰지 말자. 그 아픈 녀석조차 평생 달고 갈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덧 아픈 줄도 모르고 평안하게 살아가지지 않을까?


거북이가 된 목에 이어 내년엔 어떤 다크호스가 등장할지 자뭇 기대된다.

아프니까 오십이다! 어서50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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