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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Jul 02. 2023

[기러기의 일기 16]

잡고 있던 밧줄 놓기

내가 있는 중국 중소도시에 사는 한인들을 위한 한인회 단톡방이 있는데, 그곳에 어떤 고마운 분이 좋은 글귀를 공유해 주신다. 그분이 가장 최근 공유해 주신 글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려와 가보니 절벽에 밧줄을 힘껏 부여잡고 사력을 다해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장님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이 매달린 곳과 지면이 너무나도 가까웠고, 밧줄을 놓으면 바로 지면에 발이 닿을 정도였다.


'밧줄을 놓으시오.'


장님이 소리쳤다.


'구해주지는 않고 그게 무슨 소리요! 밧줄을 놓으면 나는 죽는단 말이오!'


그 순간 밧줄이 '툭' 하고 끊어졌고, 장님은 안전하게 지면에 착지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잡고 있는 밧줄을 놓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힘겹게 잡고 버티는 사람. 그게 나였다. 밧줄을 놓기만 하면 사뿐히 착지해서 내 두 발로 유유히 길을 걸어 나갈 수 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죽자 살자 매달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나.


윤하 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 가사가 떠오른다.


안전한 유리병을 핑계로 바람을 가둬둔 것 같지만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쉽지 않다. 이유는 한 걸음을 떼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걸음만 떼면 생각보다 쉽다. 밧줄을 잡고 있는 삶의 익숙함에 내 진심을 속인 채 평생을 밧줄에 의지해 살지 말자. 밧줄을 놓고 지면에 발을 대고 한 걸음만 떼 보자. 언젠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참 멀리도 왔구나.' 하며 밧줄을 놓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대견해할 날이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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