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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Jul 22. 2023

[기러기의 일기 17]

일주일 후 이사를 합니다.

정확히 일주일이 남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곧 이사를 한다. 중국에 있는 내가 이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있는 처가가 이사를 하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 5년 만에 '우리 집'을 갖게 되는 거라 신기하고 들뜬 기분이다. 은행 빚을 다 갚기 전까지는 은행 소유의 집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당첨된 청약이다. 이성과 정확한 계산보다는 감정에 이끌려 결정을 하곤 하는 난 우리가 당첨된 이곳에 청약을 넣을 때도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음에도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에 선뜻 청약을 결정했다. 그리고 당첨자 발표날 기쁨과 실망이 동시에 느껴졌던 것도 기억한다. 1~4층까지 저층으로 분류되기에 분양가가 조금은 저렴한 편인데, 우리는 5층이라 고층과 같은 분양가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다소 억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첨됐음에, 우리 집이 생겼음에 감사했다.


한국에 아내를 보러 갈 때마다 같이 손을 잡고 건설현장을 둘러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걱정이 많았다. 단지 끄트머리에 있었던 우리 동이 길 건너 주상복합상가와 너무 가까워 보여서 가뜩이나 층이 낮은데 집이 훤히 다 들여다보일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입주 전 방문 때 그 걱정도 말끔히 사라졌다. 밖에서 보던 때와는 달리 집 안에서 보니 적당히 떨어져 있었고, 뷰도 나쁘지 않았다. 또 감사했다.


우리 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장인어른, 장모님, 처제가 모두 같이 살아야 하는 집이기에 단지 내에서 가장 작은 평수인 이 집이 과연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다. 이왕 무리하는 거 조금 더 무리해서 84형에 청약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부가 넓게 잘 나와서 4 가족이 사는 데에, 그리고 내가 한국에 들어갔을 때 5 가족이 사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또 감사했다.


생업이 바쁘신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역시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는 처제보다 그래도 시간에 여유가 많은 아내가 입주와 관련된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다. 아내와 이런저런 의논을 할 때면 '와 이사라는 것이, 입주라는 것이 너무나도 쉽지 않은 일이구나. 챙겨야 할 것, 돈 들어갈 곳이 어마어마하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꿋꿋하게 하나씩 하나씩 비교 검토하고 깔끔하게 처리해 나갔다. 우리 집 CFO라는 별명을 내가 붙여주었는데, 이 정도면 CFO가 아니라 CEO 감이다. (난 그냥 영업사원..) 정말 여자를 잘 만나면 남자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던 옛말이 틀린 것 하나 없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말. 아내의 노고에 정말 감사하다.


신혼을 중국에서 시작한 우리는 집도, 혼수도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기에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새 집에 입주할 때 뭘 해야 하는지, 혼수는 뭘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몰랐다.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아내와 같이 혼수 박람회나 가전, 가구를 보러 다니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마흔에 들어서야 혼수를 장만하고 있는 우리 부부도 쉽지 않은데, 더 어려서 집과 혼수를 장만해야 하는 젊은 친구들은 얼마나 힘들까. 물론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는 분들은 예외지만.


이제 정말 입주가 코앞이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처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라고 한다. 대출도 실행해야 하고, 가전과 가구도 들여놔야 하고, 입주 청소도 해야 하고, 커튼이며 잡다한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 클리이 막스 '이사'. 나 없이 고생해 준, 그리고 더 고생해야 하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여보.

한없이 부족한 나와 결혼해 줘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

고금리 시대에 어렵게 집을 마련하고 있지만, 열심히 살아보자.

그리고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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