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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Aug 12. 2023

[기러기 남편의 난임일기 7]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지지난 목요일 그간의 기록들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의 많은 개수와 좋은 등급의 난자가 채취되었을 때도 기분이 좋으면서 걱정이 되었다. 시험관 수정을 한 배아 상태가 동결을 할 수 없는 상태면 신선 이식을 해야 하는데, 난포를 키우는 과정에서 생리를 한 아내이기에 신선 이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꼭 동결 가능한, 신선 이식에 필요한 배아의 상태보다 더 높은 등급의 배아가 필요했고, 그래서 아내도 나도 초조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병원 진료 날이 밝았다. 이곳 시간 6시 반, 한국 시간 7시 반에 대문을 나서자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조작하면서 난 '진료 예약 시간이 7시 반이었으니 병원에 잘 도착했다는 문자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의 문자는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연신 '오빠'를 외치더니 달려와 안기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얼른 자기를 안으란다. 뭐지? 하는 순간 핸드폰 문자를 복사해서 보내왔다. 'ooo님 냉동배아 6개. 정확한 개수와 상태는 내원 시 다시 확인부탁드립니다.'. 으잉? 냉동 가능한 상급 배아가 6개나? 심장이 요동쳤다. 믿기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난임 클리닉에서는 진료 10분 전쯤 이렇게 결과를 문자로 알려준다. 이번만큼은 나도 아내도 아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진료를 대기할 수 있었다.



아내의 이름이 간호사에 의해 불리고, 이내 아내는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들어간다. 흥분을 애써 억누르며 들어갔을 아내. 하지만 아내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울어버렸다고 한다. '이번에 정말 잘 나왔어요.'라는 한마디였다. 그리고 이어진 선생님의 말. '6개 나왔고, 모두 최상급입니다.' 아내는 그 순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간 몸고생, 마음고생한 장면들이 휘리릭 지나간 탓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울었다는 아내 말에 괜스레 나까지 가슴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아내. 그 힘듦을 매번 털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그 과정도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감내하고 인내하면서 노력해 준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 아직 엄마는 아니지만, 이 세상 모든 아내는 엄마가 되기 전부터 위대하다. 세상의 진리다.



아내는 조금 욕심을 부렸다. 최상급 배아라서 두 개만 이식해도 되겠다는 선생님 말씀에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그래도 세 개를 이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 생각이 귀여워 입가에 피식 웃음이 났다가 얼마나 간절할까 하는 생각에 금방 사라진 미소. 그렇다. 아내도 나도 간절하다. 난 다른 건 모르겠고 아내가 더 이상 힘들어하는 모습,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또 주변에 이쁜 아이들을 보며 이뻐하다가도 마냥 이뻐할 수만은 없는 아내의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아내의 간절함은 이런 나의 간절함의 몇 배 이상 될 것이다. 그동안 몇 배이상 아팠을 것이니까.



이번 난자 채취와 동결 배아 결과로 우리 부부는 모든 걱정을 잠시 미뤘다. 아직 더 많은 단계들이 남았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이 결과들이 아내에게 준, 우리에게 준 행복감을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느끼고 싶다. 그리고 난 이론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전혀 맞지 않는 말임을 알지만, 아내가 시술을 해오면서 아내의 몸 상태가 점점 엄마가 될 수 있는 상태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느낀다. 꼬미(임신 9주 차에 유산했던 첫 아가)가 왔다 간지도 벌써 반년이 훌쩍 넘은 시점. 마음과 몸을 회복한 아내와 최상급 동결 배아가 있다. 오늘도 우린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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