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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l 13. 2024

그저 힘들다는 말 대신


7. 일곱 번째 손톱



대인기피증을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다. 병원에서 "당신은 대인기피증이라 불리는 사회공포증을 앓고 있습니다."라고 진단받은 것은 아니지만, 사회공포증의 증상을 속속히 느꼈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심지어 같이 밥을 먹으며 웃고 있는 친구마저도 내색하지 않을 뿐 속으로는 나를 싫어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자연스레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할 일도, 수다를 떨 일도 사라졌다. 사람들 앞에서 시선을 끄는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는 게 불편해졌다. 사인을 해달라는 독자가 생겨도 전처럼 기쁘지 않았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생각했고, 그러자 인파 많은 공공장소를 가는 게 두려워졌다. 대외 활동을 동시에 세 개는 거뜬히 하면서 복수 전공까지 해내던 과거의 모습은 전혀 나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 시기에 친구들 몇 명을 잃었다. 이제 와서 얘기하면 친구는 아니었지만, 친구로 생각하던 지인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치료에 집중했다.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고 사람들이 나를 적어도 싫어는 하지 않는다는 확언을 꾸준히 읊었다. 친구를 만나는 일이 무서워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라며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냈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상대의 답변을 듣고 안심하는 일이 늘어났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항상 나 때문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 날이 점차 줄어들었다. 모두가 내 외면과 내면을 평가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사라지는 게 낫다고 얘기할 거라는 망상을 줄여나갔다. 집 밖을 전혀 나가지 않아 모든 컨디션이 무너졌지만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아한다고 얘기할 만큼 나아지자 다시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요즘에는 전과 같은 망상이 나를 괴롭힌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고, 동료들이 살이 찐 내 외모를 보고 피할 것 같고, 글을 잘 올리지 않는 작가로서의 내 모습에 독자들이 실망할 것 같고, 책을 많이 읽지 않아 문장력이 거기서 거기로 머무르는 내게서 멀리 떠나갈 것 같다. 애인 '건'에게 이런 사실을 밝혔다.


"대인기피증이 생길 것 같아."


건이 물었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전에 대인기피증을 앓았다고 했잖아. 다시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어. 이전으로 돌아가면 어쩌지? 그러면 회사도 그만둬야 할지 몰라."


건은 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이런 얘기를 했다.


"방금 '대인기피증이 생길 것 같아'라고 말했잖아. 대인기피증이 생겨나면 사람을 피하게 되는 것처럼 말했는데, 사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그게 대인 기피증이 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앞뒤가 바뀐 것 아닐까?"


사람을 요즘 멀리하고 싶다는 표현을 병에게 주도권을 주며 '병 때문에 사람이 싫어지고 있어'라고 얘기하는 게 묘하다는 말이었다. 건은 설명을 더했다. "감기 증상이 있어서 감기에 걸렸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감기 증상이 없는데 감기에 걸릴 거라고 예지를 하는 게 이상해." 물론 사회공포증은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주요한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지금 내 상태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미 줄어든 세로토닌과 도파민을 채울 약을 챙겨 먹고 있었고, 회사에 가기 번거롭고 일하기 귀찮다는 표현을, 낯선 이들에게서 잘 보이기 위해 차려입고 미팅을 하는 게 힘이 든다는 얘기를 "대인 기피증이 생길 것 같아"로 설명하고 있었다.


건의 말이 구구절절 맞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대인 기피증의 증상을 보이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어서였다. 인파가 많은 도서전에서 땀을 흘리는 게 힘겨웠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모두 나를 지켜보는 중이고 곧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겁게 독자님을 마주하고 신간을 홍보했다. 낯선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말을 붙이는 일을 스트레스로 전혀 느끼지 않았다.


이전 직장과 지금 직장을 비교하면, 지금은 회사 생활이 그리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즐겁게 일을 하는 편에 가깝다. 동료들과 사담을 나누는 것도 불필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지하철에 몸을 싣는 게 싫다는 말을 대인기피증으로 표현했다. 요즘 몸이 아픈 건 대인기피증 때문이라고, 지하철을 타는 게 힘들어진 건 대인기피증 때문이라고, 회사에서 일이 많은데 처리를 잘 못하겠다는 문제도 곧 대인기피증이 생길 테니 직장을 그만두면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모두 스스로를 속이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정말로 사회공포증을 앓아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사과를 표해야 할 행동이었다. 양극성장애를 앓는 나도 "요즘 기분이 오락가락해. 조울증인줄."이라는 가벼워 보이는 농담을 들으면 상처를 받는데, 그런 사람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나는 대인기피증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고 가볍게 얘기하고 있었다. 표현의 밀도를 더 높여야 했다. 감정을 더욱 적확하게 정의해야 했다. 싫다는 말을, 짜증 난다는 말을, 힘들다는 말을 쉬운 말을 줄이자는 마음을 먹고 나니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후일담

《생각의 배신》이라는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할수록 더욱 나은 정답이 나올 거라고 믿지만, 불필요한 정보도 결정을 할 때 논의되기 때문에 꼭 생각을 많이 한다고 더 좋은 결론으로 가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생각을 멈춰야 할 때는 생각을 잇고, 괴롭거나 힘들다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밀 때는 별생각 없이 하지 않는 요즘의 내가 떠올랐다. 요즘 글을 쓰거나 읽지 않으니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일이 줄었다. 그런 면에서 직접 서점에 들러 마음가짐이나 뇌과학에 관한 여러 책을 샀다. 이제 남은 건 읽기만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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