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업무를 보는데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급기야 시야가 흐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앉아 있는 일조차 버거워 결국 팀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응급실에 다녀와서 남은 일을 처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지만 대형 병원의 응급실은 거의 만석이었다. 파업으로 더는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근처의 작은 종합 병원에 가서 한 시간을 기다린 뒤 신경과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여기와 저기를 보라고,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걸어보라는 몇몇 지시를 내렸다. 나는 의사의 말을 순순히 따랐고 곧 진단이 내려졌다. MRI나 CT까지 찍을 필요는 없고, 비특이성 어지럼증인 것 같다는 얘기였다. 심리적 압박이나 몸이 안 좋을 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 정신과를 방문하고 긴 휴식을 취하라는 당부의 말이 전해졌다.
그 밖에도 몸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듯한 증상이 속속들이 생겨난다. 밥을 먹으면 금방이라도 곯아떨어질 만큼 졸리다.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말을 어눌하게 한다. 땀을 흘리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걷는 건 당연하고, 서 있는 것조차 어렵다. 결국 도수 치료를 받기 한 시간 전에 급하게 예약을 취소하고 두 시간을 누워 있었다. 다음 주에는 일이 더 많을 텐데, 회사에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냐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신경과에도 문제가 없다고 하고, 정신과에도 문제가 없다고 하는 일이 반복되니 남은 건 수면이비인후과의 진단이었다.
얼마 전, 친척 언니가 집에 놀러 와 하룻밤을 잤는데 한창 새벽일 때에 나를 흔들어 깨워서는 이런 호들갑을 보였다.
"너, 숨이 넘어 가."
그래서 깨웠다는 말이었다. 코를 하도 골아 시끄러운 건 둘째 치고, 숨이 꺽꺽거리며 뒤로 넘어가길래 무슨 큰일이라도 생길까 봐 깨웠다는 이야기가 뒤따라왔다. 그날로 수면다원검사 날짜를 잡았다. 의사는 코에 여러 장비를 가져다 대고 코가 조금 휘었다는 말을 했다. 그 밖의 것들에는 문제가 없다고, 우선 검사를 받자고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여러 센서를 달고 병원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열흘을 기다려 받은 결과는 참혹했다. 산소 포화도가 90% 정도까지 머무르는 일반인에 비해 나는 85%의 중증을 지나 한참 아래인 77%였다.
뇌파까지 검사해 봤는데 뇌가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계속 각성 상태를 유지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자도 잔 게 아니었다. 밤에 잠을 못 잤으니 낮에 활동할 때 기운이 없는 건 당연했다. 꾸벅꾸벅 졸음에 빠져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하는 것도 수면무호흡증의 증상이었다. 숨을 쉬지 않는 횟수가 너무 많다고 했다. 양압기를 쓰고 잠을 자는 치료를 해야겠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다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는 우선 내게 맞는 압력을 측정하는 양압기 수면검사를 새로 예약했다.
수면무호흡증의 주원인은 여럿이 있지만, 커다란 원인으로 손꼽히는 건 비만이었다. 실제로 나는 이 년 전부터 살이 급격하게 쪘고, 몸 이곳저곳에 염증이 났다. 언젠가는 어깨에 염증이 생겨 키보드에 손을 올리지 못해 이대로 영영 글을 쓰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까지 했다. 잠을 잘 때 숨을 쉬지 않는 수면무호흡증의 원인이 비만인 건 맞지만, 다른 이들보다 한참 떨어진 산소포화도로 인해 살이 쉽게 찔 수 있다는 논문을 읽고서야 무릎을 쳤다.
수면무호흡증이 비만에게, 비만이 수면무호흡증에게 서서히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중증의 수면무호흡증이 되었고 식사 후에 혈당이 떨어지는 증상까지 생겼다. 몸이 망가진 것 같았다.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다. 애인 '건'에게 가지고 있는 온갖 걱정을 내보였다. 주로 이런 걱정이 컸다. 양압기를 썼는데 불편해서 더 잠에 들지 못하면 어쩌지? 양압기를 썼는데 치료가 되지 못해서 회사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수습 기간을 마치고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면 어쩌지? 건은 내가 읊는 모든 걱정에 고개를 일일이 저었다.
"원인을 찾았잖아.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면 산소 포화도가 올라갈 테고,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면 당뇨로 보이는 증상도 서서히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천천히 치료하면 돼."
내가 말했다.
"나는 정상인이 되고 싶어."
건이 답했다.
"정상이라는 단어는 불분명해. 비정상은 뭐고, 정상은 뭐야. 병원에 가는 사람이 비정상이고 병원에 가지 않고 사는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건 오해야. 치료를 받는 사람이 오히려 건강한 거지. 그리고 정상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
정신과를 다니는 사람은 비정상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비정상인 게 틀림없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던 나였다. 언제는 회사를 다녀와서 "정상인처럼 사는 건 너무 힘들어."라고 건에게 툴툴댔던 적도 있었다. 단어로 둘을 나누지 말자고, 언어로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말자고 늘 다짐하면서 정작 내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몸이 망가졌으니 나는 망했다고, 내일 출근해서 또 구급차에 실리는 소란을 피우면 어쩌냐고, 그렇게 돈도 못 벌고 친구들도 다 사라진 나는 서서히 세상에서 잊힐 거라고 단언했다. 계속 그 걱정을 꼬리로 물고 있으니 이번에도 역시나 손톱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너무도 익숙하고 편안해서 꾸준히 그 부정적인 마음 안에서 머무르는 나를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건의 말에 천천히 손톱을 느꼈다.
아직 양압기 치료를 받기까지는 일주일이 남았다. 어제도 집에서 점심밥을 먹고 실신하듯 쓰러져서 글을 쓸 마음과 몸의 여유가 없었다. 연재는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하는 마음까지 올라왔다. 평일에 출근해 회사일을 하기도 바쁜데 가만히 앉아 내면과 과거를 살피며 글을 쓸 여유가 어디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유는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거니까,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손톱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오늘도 썼다.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설사 벌어지거든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된다는 걸 기억하기로 한다.
후일담
졸려서 집중을 하지 못하겠다는 친척 언니에게 기면증 검사를 권했다. 실제로 언니는 기면증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증상을 앓고 있었다. 내가 언니의 말을 듣고 수면다원검사를 받은 것처럼, 언니도 내 말을 듣고 수면다원검사를 예약했다. 누군가 잠을 잘 자는 게 너무나 기본적인 생활의 시작이라고 하던데, 그 말에 의하면 나는 지금까지 기본조차 잘 지키지 못했던 것 같다. 밤을 새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새우잠을 자거나 이동 시간에 졸면서 잠을 채우는 일을 반복했으니까. 오늘 밤도 편안하게 주무세요, 라는 말이 새롭게 느껴진다. 잘 자고 잘 일어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깨닫고 있다. 이웃님들도 만일 수면의 질이 낮거나 주간 졸림증이 심하다면 수면검사를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