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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Oct 11. 2024

요즘 괜찮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래요


시월의 첫날, 외할머니 생신 축하를 위해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올해 국군의 날을 임시 공휴일로 정해놓은 덕분이었다. 스무 명가량의 식구들이 같이 고기를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돌아오는 트렁크에는 늘 그렇듯 담긴 사랑. 나무 몇 그루를 털었을지 모를 밤송이를 그득 안고 집으로 향했다. 가득 실고 돌아왔지만 이전과는 다른 마음 상태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음날 일이 취소된 남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밤을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물로 다 씻어내고, 방바닥에 앉아 벌레 먹은 밤을 골라냈다. 신문지 대 여섯 장을 깔아 두고 사십 분 정도 골라내었을까. 우리 집 말고도 이 많은 밤이 열 집 이상 갔을 텐데 이걸 줍고, 깔 그 시간들이 아찔했다.



꼬박 한 달이 되어서야 글을 쓴다


펜을 잡은 지 꼬박 한 달이 넘었다. 그리움이 흘러넘쳐 슬픔에 절여진 내가 참 한심했다. 모든 글에서 슬픔만 보일 것 같아, 글 쓰기가 너무 힘들었다. 눈부시게 밝은 날과 뭉게구름이ㅂ 야속할 정도로 먹구름 가득한 마음의 지난 9월.



오랜 기간 편찮으시던 외할머니가 생을 달리 하셨다. 4년 동안 침대에 누워계시던 우리 할머니. 대상포진을 앓으시고, 그때부터 기력이 노쇠해지셨다. 첫 해에는 분명 괜찮아지실 거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할머니의 잔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늘 같은 말을 반복재생하듯 할머니의 같은 레퍼토리가 있었다.


"밤늦게 껌껌할 때 다니지 말고, 빨리 다녀라."

"위험하지 않게 찻 길 조심하고."

"엄마 걱정시키지 말고."


할머니 집 앞 논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할머니의 모든 말의 끝은 본인 딸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었다. 엄마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할머니한테 용돈을 드리면서 '할무니, 나중에 더 많이 드릴게.'라는 말을 할 때마다 할머니는 똑같은 반응이었다. '할머니 말고, 엄마한테 더 잘해. 할머니는 괜찮아.' 조금 더 괜찮아지면 할머니에게 잘해드려야지 생각했지만, 지나고면 모든 시간들이 후회 투성이다.


할머니의 영근 열매들


단어에도 감정이 있다. 유독 단어가 마음에 깊숙이 스며든다는 탓이었을까. 묵혀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라 허우적 대던 어느 날. 사촌 언니도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 저 많은 밤 보면서 삼촌이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하루종일 줍고 또 주운게 아닐까?


시월의 첫날에 받아온 밤은 삼촌의 그리움이었다. 밤을 그득 담아 그리운 마음을 전달한 삼촌처럼, 엄마도 그랬다. 습관처럼 한숨을 내쉬는 엄마에게 왜 그러냐 물을 순 없었다.


- 가슴에 큰 호숫물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아.


물길을 내어주고 싶어서 웃겨도 보고 울려도 보았지만 엄마의 호수는 아직까지 미동이 없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의 그리움을 떠올리다 밤을 보고 눈물이 왈칵 터져버렸다.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그렇게 자식들을 향한 마음을 담아두셨겠지. 먼 여행을 떠난 할머니를 다시 보면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늘 우리를 기다리느라 고생하셨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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