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때도 버릴 때도 참 쉽다
사람이 든 자리보다 난 자리는 더 쉽게 알아차린다고. 한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게 되면 공간이 참 추워진다. 그래서 올해 유난히 더 추웠다. 갑작스럽게 손님은 줄었고, 나와 남편 둘이서 넓은 가게를 지키게 되었다. 묵묵히 지켰지만 무릎이 너무 시려웠다.
무릎이 깨질 것만 같아 차례로 들인 것이 직장인들이 많이 쓴다는 무릎용 온풍기와 전기 담요를 들였다. 그럼에도 벽에서 오는 한기는 막을 수가 없었다. 몸이 추워지면서 마음도 점점 온기를 잃어갔다. 공간에 들어갔던 수 많은 열기가 식어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매일 목이 빠지게 손님을 기다렸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아주 가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면 우리 가게로 오는 손님인가 빼꼼 머리를 내밀고 들여다 보기도 했다. 더러 손님이 오면 반갑기보다는 놀라웠다. "오, 손님이다."
이런 시간들이 3개월, 4개월 반복되면서 참 많이 지쳐갔다. 가장 중요한 건 공간을 지키고 있지만 아무런 수익이 나오지 않는 상황. 그리고 사람들의 따스한 눈빛을 느낄 수 없는 시간들. 공간을 지킨 단 하나의 이유는 따뜻한 눈빛과 그 안에서 오는 에너지 때문이었다.
가만히 앉아 창 밖을 바라보던 우리 둘은 결국 결심했다.
"카페 공간으로는 이제 그만하자."
"그래."
그리고 나자 차츰 둘의 관계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온기만으로는 따스해지지 않던 그 넓디 넓은 공간을 벗어나 좁은 우리의 울타리로 돌아오자 다시금 두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던 걸까. 차분히 한 발자국 떨어져 공간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혼자 가만히 앉아 가게를 보았을 그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더 많은 손님을 받아보겠다며 호기롭게 베이킹을 배웠다. 그 때는 분명 잘 될거라는 자신감 같은게 있었다. 5개월은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한 쪽 벽 서랍장을 꽉 채울 정도의 베이킹 재료가 있더라니. 마지막 쯔음에는 마음은 떠나갔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심보였을까.
매일 아침마다 땀방울을 매달고 빵을 발효시켰다. 한 쪽으로는 땀을 닦고 다른 손으로는 반죽을 하면서 외쳤던 말. 맛있어져라.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재미가 없어졌다. 맛있어져라는 주문이 없어지면서 빵이 점점 퍽퍽해지고 맛도 달아났던 것 같다.
그 많았던 재료들이 3개월이 지나자 유통기한이 다 지나버렸다. 사실 살 때도 쉬웠는데 버릴 때도 쉬웠다. 유통기한이 지나서 어쩔수 없이 버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늘 엄만 내게 말했다.
-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사. 진짜 할지 말지 말이야.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고! 하면 달려나가는 나에게 ‘한번 더 생각’하는 태도에 대해 엄만 늘 설명해주었다.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을 상상해보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