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했다. 웃으며 지나치던 일에 돌연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즐겁다고 생각했던 일이 부담스러워졌을 때, 나이 들었다는 걸 체감한다.
남들보다 빨리 결혼 했다. 스물아홉 언저리에 결혼을 해 벌써 결혼 6년 차. 이제 조카들이 하나둘 생겼다. 나보다 늦게 결혼한 사촌 오빠와 언니의 아가들은 벌써 돌이 지나 걷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내년에는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는 거지?'라는 인사말을 듣고 있다. 나의 다음 퀘스트는 출산인 걸까.
한 해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들의 말이 불편했다. 나에 대한 배려가 없는 듯 싶었다. 내 맘을 알고 우리 부모님과 시댁 식구 그 누구도 아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예전과는 다르게 내 마음이 왜 조급해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엄마와 둘이 밥을 먹고 커피 마시며 수다를 떨던 어느 날. 우리 조카들 이야기를 하다 문득 엄마의 의견이 궁금했다. 엄마도 조카들을 누구보다 예뻐했다. 조카들이 걸음마를 하거나, 옹알이를 하면 활짝 웃으며 그들의 재롱을 보는 걸 멀찍이서 지켜보았던 터였다. 분명 엄마도 손자를 바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 반대의 대답이 나왔다.
- 엄마는 네가 힘든 게 싫어. 출산할 때 우리 딸이 아프잖아.
엄마의 눈에 맺혀있는 눈물을 보고 흠칫 놀랐다. 늘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은 나와 동생을 낳은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엄마의 딸자식이 아이를 낳는 건 걱정되는 일인 거다. 이어서 병준이와 둘이서만 잘 살아도 충분하다고 했다.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남편과 둘이 살아도 충분히 재미있다. 맛있는 걸 해 먹고, 둘이서 재미있게 놀고, 연애하는 기분. 오래오래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카가 생기고 상상력이 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닮은 아이가 함께 한다는 것. 그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일. 설렜다.
올해 남편의 입사와 퇴사를 최근까지 함께 경험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남편은 작아져 있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기에 무슨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본인을 끝까지 몰아세우는 사람이다. 그의 감정을 살피느라 내 감정에 대해서는 입 밖으로 꺼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한 번, 남편이 도화선을 건드렸다. 꾹꾹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냈다.
- 나도 인생 계획이라는 걸 세우고 있었어. 내후년 쯔음에는 아기를 낳고 싶었다고.
아이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던 내 입에서 나온 '임신'이라는 단어. 눈이 동그래진 남편은 더욱 생각이 많아진 듯 보였다. 펑펑 우는 나에게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며, 다 본인 잘못이라며 등을 두들겨주었다. 결국 그렇게 그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아기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사회가 그렇다. 맞벌이를 하는 내 친구 바로 옆 아파트는 엄마의 집이다.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픽업은 그녀의 엄마 몫이다. 우리 이모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친정엄마와 시어미니 군단이 형성되어 한 아이의 어린이집 픽업은 세 사람이 전담하게 되는 식이다.
우리는 과연 또 다른 선택지를 만들 수 있을까? 프리랜서로 일하며, 지금 내 삶에 대해서 책임지는 상황에 있다. 기존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쟁 시스템 안에 살고 있는 사실 때문일까. 늘 불안하다. 삶의 형태가 다변화하는 상황에서 가정을 지켜내야 하는 어려운 미션이 주어진다. 언젠가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기가 충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의 대답에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한다.
- 엄마 나는 또 다음 행복을 향해 나아가려고 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정말 두렵다. 매 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받는 건 가족들 덕분이다.
그 가족들과 또 다른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