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지 못하는 예스맨인 나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을 동반하는 단어다. 등교 전날이면 잠이 오지 않아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양을 세다가 꼭 지각했던 기억이 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날이 너무 컸던 걸까. 심장 뛰는 소리를 손가락으로도 느낄 수 있을 때 손으로 줄을 꼭 잡고 찬찬히 걸어 나가고 싶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출발선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나갔다. 낯가림 없이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하다 보면 어느새 교실 안에 중심은 내가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 전까지 분명 관종이었음에 틀림없다.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매일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착한 친구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모든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친구가 됐다. 처음에는 호의로 보였겠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의 친절은 당연해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미안한 마음을 담아 거절을 하면 도리어 화를 내는 상대방의 모습이 점점 지쳐갈 때쯤, 한 영화에서는 내게 돌직구를 날렸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잖아요."
어릴 때부터 물건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는 반면 성취욕은 큰 편이었다.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알고 이를 처리해 나가는 능력이 생기게 된 건 분명 엄마의 교육 방식 덕분이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면 '왜 가야 하는지' 육하원칙으로 내게 말하라고 했다. 논리적인 그녀의 말을 이길 자신이 없어 일치감치 포기했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아예 집에 있던 문제집을 내버려 두고 놀아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칭찬중독자인 난 문제집을 그냥 쌓아둘 수만은 없었다.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명목하에 스스로 계획표를 짜고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다섯 살 때부터였을까. 칭찬 중독자가 된 것이.
지금도 분명 그때 그 어릴 적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매달 풀어야 할 문제집, 매주 풀어야 할 문제의 양, 그리고 오늘 하루 목표로 잡아놓은 일들. 지금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때마다 적어두지 않으면 까먹는 탓에 매일같이 내 일정을 촘촘히 정리해 두고 하루 일을 다 마치지 못하면 찜찜하다.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날이면
하루를 망쳤다는 생각에 잠드는 것도 죄책감이 들었다.
대학을 다니며 한층 바빠졌다. 학교 생활 외에도 촘촘히 쌓아놓은 대외활동들을 하기에도 벅찼다. 통학을 하면서 2.5킬로의 노트북을 허벅지 위에 두고 기사를 썼던, 그 시간. 그게 습관이 된 건지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렇게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중요했다. 이십 대 초반에는 밤새우면 모두 다 할 수 있었다.
거절하지 않고도 모든 일과 관계를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고 착각했다.
거절할 수 없었던 탓에 소중하게 여겨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고 있었다. 늘 나를 기다려주었던 남자친구(현 남편)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식사하자던 부모님. 그들을 위한 시간은 늘 뒷전이었다.
타인이 내게 요구한 건 거절할 수 없으면서 제일 가까운 사람의 요청은 거절한 일. 아주 작은 게 모여서 큰일이 된다. 십여 년 쌓아둔 무거운 마음의 짐을 이제야 덜어내 본다.
첫째 딸이라는 게 싫었다. 나도 응당 어리광도 피우고 싶고 마냥 예쁘다고 듣고 싶었다. 이젠 충분하다. 어릴 땐 타인의 칭찬을 먹고살았지만 지금은 스스로에게 좀 더 떳떳하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스스로를 충분히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면서 인정받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인정해줄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결혼하고 나서 분가한 딸이 안쓰러운 엄마는 부쩍 나를 챙긴다. 예지는 늘 잘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어느 때는 어른 대하듯 또 다른 때에는 아이 대하듯 한다. 결혼한 가정에서 오는 부침을 엄마에게 말할 때면 엄마는 다른 사람이 된다.
“엄마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해.”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아니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넌 잘 될 거야. 늘 그렇듯 잘 해왔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잘 될 거라고 주문을 외워봐."
어릴 적 엄마에게 속상하다는 말을 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다른 친구들도 똑같이 힘들다는 말과 함께 조금만 더 해내라던 재촉 섞인 말들. 지나가듯 한 말이지만 기억이 날 때면 찌르르 아팠다. 이번에 엄마가 해준 말을 듣고 찌르르 대던 마음이 완벽하게 녹아내렸다.
늘 잘 해내야 한다는 욕심 같은 거. 그냥 진작에 버려버릴걸 그랬다. 더 잘하길 바라는 엄마의 재촉 같은 작은 마음이었지만 결국 엄마의 사랑이었을 텐데.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건 온전히 나였다. 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늘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