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치트키를 떠올리며
지난 가정의 달 5월. 엄마와 아빠에게 조금은 색다른 선물을 해 주고 싶어 서점으로 향했다. 지금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을 책에 담아 선물해주고 싶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책이 아닌 손바닥보다 조금 큰 노트였다. 이름도 거창한 <엄마/아빠 사용 설명서>
아기자기한 일러스트 안으로 여러 개의 질문들이 있었다. 몇 장 되지 않는 노트였기에 분명 금방 써 내려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건만, 질문의 난이도도 낮아보였건만, 한 권을 쓰는데에 한 시간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렇게 고민했는데도 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나보다 내 부모님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곱씹어보니 정말 난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딸이었다. 그들은 내 눈빛만 보고도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해 질문하는데, 정작 난 아무 것도 모르고 대답하는 게 틀림없다.
질문의 답으로 쓴 건 차돌박이 된장찌개. 생각 나는 요리가 그것 뿐이었다. 사실 최근에 엄마가 해 준 요리 중에 제일 맛있었다. 자주 끓여주기도 했고 진짜 맛있었는데... 엄마가 우리 옆에 앉아 읽을 때 옆에 있던 내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언니, 참~! 엄만 소고기 김밥이지!”
맞다, 엄마의 소고기 김밥은 말이지.
먼저 해를 이어 선생님이 좋아하던 김밥.
소풍 전날. 담임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렀다. 내 눈을 빤히 보며 그녀는 말했다.
"예지야. 너네 어머님이 싸주신 김밥. 작년에 선생님이 먹었던 김밥 중에 제일 맛있더라. 어머님이 너 꺼 싸주시면 겸사 겸사 내 것도 좀 부탁하자."
열 세살 밖에 안 된 난,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싶어 한 달음에 엄마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김밥도 싸야 한다고. 사실 엄마는 한 번도 선생님의 김밥을 싸 준적이 없다. 다른 엄마들은 싸는 김에 겸사겸사 싼다는데 엄마는 매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우리 먹을 꺼 밖에 없어. 뭘 선생님꺼까지 싸!"
그 날은 엄마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진짜 이번에는 선생님 것 까지 싸야 한다고.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그 선생님을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그 선생님을 두려워하는지를. 당시 담임 선생님은 전년도 내 동생의 담임이었다. 내 동생은 엄마와 아빠에게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단 한번도 알리지 않았다. 그 해, 내가 반장이 되고 난 깨달았다. 내 동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그 전 날부터 저녁을 먹기 전부터 다음 날 김밥거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양이 딱 두 배가 된 만큼 엄마의 시간도 그만큼 필요했다. 다섯시에 일어났던 엄마의 노력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소풍 전 날 김밥 재료를 양 손에 낑낑대고 한아름 사들고 들어와서 그 전날 손질을 다 해두던 엄마. 듬뿍 바른 참기름마냥 엄마의 정성이 듬뿍 담겼던 그날의 요리.
냉면을 먹고 가족들과 차를 타고 집으로 갈 때도 그랬다. 모든 식구들이 그렇게 말했다. 엄마의 소고기 김밥을 먹고 싶다고. 하지만 엄마는 그랬다.
“사먹는게 훨씬 더 맛있어.”
오랜기간 우리를 위해 김밥을 말고 또 말면서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밥을 썰면서 맛있게 먹을 우리를 상상하며 행복했겠지. 하루하루 가족을 위해 밥 지으며 엄마는 미래에 무엇을 기대했을까.
요즘 나는, 엄마가 해준 그 김밥을 헤아리다 문득,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내가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