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올해로 약 10년간 인연이 닿아있었던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퇴사 이유는 회사에 대한 참기 힘든 분노와 감정 조절 실패 때문이다. 조금 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보자면 이 회사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언제까지나 승진은 안 시켜주고 이제 막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신입 직원과 똑같은 월급으로 나를 부려먹기만 할지 그 암담한 마음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이다. 워라벨은커녕 몸과 영혼이 회사에 매여서 일상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상사한테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가까운 가족과 남자친구에게만 심한 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못난 나를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를 이해할 것이고, 누군가는 나를 비난할 것이다. 요즘처럼 생존이 힘든 시기에 직장에서 잘리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냐고. 모두가 힘든 시기에 이 상황을 버텨내야만 했었다고 말이다. 이 힘든 시기를 버텨내면 더 강해질 거라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꼭 유행처럼 도는 말이 있다. 어떻게든 지금을 버텨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힘든 이 상황을 버텨내지 못한 나는 약한 사람이라는 뜻일까. 언젠가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도 완화될 것이고 어느 정도 다시 살만해지면 암흑의 시기를 참고 견뎌서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축배의 행렬이 이어질 때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다니, 그때 나도 버텼어야 했어”라는 후회가 들기라도 하면 마음 한구석이 얼마나 찝찝할까.
돌아보면 예기치 못한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난 끝까지 버텨보는 것보다, 모두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을 선택했다. 10년간 함께 했던 직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약 6년을 경력단절 상태로 이 직업 저 직업을 배회했다. 경력단절하면 따라오는 키워드가 30대 여성의 출산 아니면 육아이다. 하지만 난 출산과 육아 없이 스물아홉부터 서른네 살까지를 취업 준비를 하다 직장에 들어가고 얼마 일하다가 다시 백수가 되는 상태를 되풀이하며 보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름만 대면 알만한 화려한 외국계 기업에 한 번에 합격했고 4년간 다니던 회사는 서른을 앞둔 여성에게 성장통처럼 찾아오는, “더 늦기 전에 내가 진짜 이루고 싶은 꿈에 도전한다”는 명목하에 그만두었다. 2년간 치열하게 해외취업을 준비하다 실패했고, 그 후 대한민국 직장인으로 돌아가 10개월간 회사 생활을 했으며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다시 비자발적 실업상태가 되었다. 요즘 30대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을 구입한다지만, 그때의 나는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을 빼서 영국으로 늦은 연수를 떠났다. 저 지구 반대편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하기 전에는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응어리가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서른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연수를 갔으면 이왕 간거 학위를 따오거나 남자라도 만나서 결혼이라도 했으면 좋았겠지만, 난 또 7개월의 연수를 마치고 꾸역꾸역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후에는 다시는 직장에 들어갈 용기와 자신감을 상실해서 영어강사로 직업의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2년간 영어강사로 일을 했고, 그 시간들을 통해서 영어강사는 확실히 나랑은 맞지 않는 직업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서른세 살부터 다시 취업 준비를 했다. 나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주고 1년만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해보고 안되면 그쪽으로는 미련을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살기로 다짐을 했다. 주 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자격증을 따고 면접 준비를 하면서 서른넷의 봄을 맞았다. 의지가 충만하고 준비도 잘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랫동안 면접을 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미친 듯이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새로운 공고를 찾다가 중동의 한 회사에서 한국인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앞으로 여기서 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최종 합격 소식을 듣기까지 피 말리는 4개월을 보내고 나서 서른넷의 나는 중동의 한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많게는 열 살 터울이 나는 동생들과 함께였다.
중동에서의 3년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크고 작은 애로사항들이 많이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들은 아련하게 남아있고 전체적으로는 그립기만 하다. 그토록 원했던 외국에서 일하면서 살아보기란 꿈을 이뤘고, 세계 각지에서 온 동료들과 재미있게 일했으며, 사람들도 문화도 전혀 다른 낯선 땅에 용감하게 두 발을 딛고 내 청춘과 열정으로만 오롯이 삶을 살아낸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날들이었다.
떠날 때는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굳은 의지를 다잡고 간 곳이었지만 어디에서나 위기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일하는 게 재미있었고 좋았지만, 조직이란 곳에서는 노력하고 애쓴 만큼 인정과 보상이란 것이 주어져야 계속할 힘을 갖게 된다. 세계 각지에서 꿈과 돈, 성공이라는 욕망을 쫓아 몰려든 사람들 틈에서 진심을 갖고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을 따기만큼 힘든 일이었다. 여러 이유로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갈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을 내렸다. 한국에 도착한 그날부터 구직활동은 시작되었고 운이 좋게도 서른일곱 살의 나는 같은 회사의 서울 사무실에 다시 취직을 하게 되었다. 나를 두 번이나 뽑아준 회사. 누가 이런 회사에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누가 이런 회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고 싶었고, 꼭 인정받아서 오래오래 이 회사와 함께하고 싶었다. 평생직장이 사라졌다는 시대에도 나는 꼭 정년까지 회사 생활을 할 거라는 야무진 포부와 또다시 순수한 열정 하나로 녹록지 않은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해나갔다.
중간에 한번 부서 이동을 하게 될 즘 우연히 한 글쓰기 특강을 알게 되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글을 쓰고 책을 내서 내가 살아온 삶을 가치있게 만들고, 내 이름을 브랜딩 하는 것이 트렌드였던 시기였다. 그 후 약 1년여의 시간을 직장 생활은 그럭저럭이지만 작가로는 성공할 것 같은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회한이 가득한 자기도취에 빠진 글을 쓰며 보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이 많은 경험들을 하고, 수많은 시간들을 방황하며 지내온 것이라고 확신하며 퇴근하면 글을 쓰고 주말에도 집에 틀어박혀 글을 썼더니 어찌어찌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완성된 원고는 출판사 투고 직전까지 갔다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직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글의 소재로 썼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고만 것이었다. 그 후로 약 1년 반 동안 손에서 펜을 놓았다. 직장 생활을 계속 해나가고 싶었기에 준비해오던 모든 것을 다 접고 주말과 공휴일에도 사무실로 출근하며 업무에만 매진하였다. 인정은 못 받았지만 어쨌든 나는 회사를 사랑했고 나의 밥줄이기도 했으니까 열심히 해야만 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할 것이라고 한다. 언택트와 온 택트 시대라며 SNS가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고, 유튜브를 통한 크리에이터들의 활약과 이로 인해 수익을 창출하는 일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세상이 정말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직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나도 어서 유튜브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닌가 조바심도 난다. 그러나 대체 어떤 내용을 가지고 유튜브를 하며 수익을 만든단 말인가. 콘텐츠를 생각해보다가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싶어진다. 특정 콘텐츠 없이 2016년부터 가지고 있던 블로그는 이제 겨우 300명의 이웃을 넘겼고 무언가를 매일 끄적거리기는 하지만 블로그로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수익을 만들려면 지금까지 취업하기 위해 쏟았던 시간과 열정, 돈과 노력. 그 이상의 것들을 쏟아부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일궈놓은 블로그가 나의 생존을 보장해 줄 것 같지도 않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이 불확실의 시대에 가장 확실한 것 하나는 영원히 안정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언제나 내 인생에 위기가 찾아오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버텨낼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나는 과감하게 잡고 있던 것을 놓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이후에 오는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상실감이나, 인정받지 못한 노력에 대한 분노, 공허함도 과거로 흘려보내주는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일도 사랑도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남겨두지 않고 당당하게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인생의 바닥은 눕거나 주저앉는 자리가 아니라 박차고 일어나는 곳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딛고 일어나면 반전의 기회가 되지만 누워버리면 고통뿐이다” -
《하루 사용 설명서》
앞으로도 나는 쓰러질 때마다 훌훌 털고 일어나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띵동’
메일 수신함에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함께 일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직준비를 시작하고 서른세 번째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봤던 곳에서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두근두근.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다시 새로운 파도 위에 유유자적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보겠다. 이번에는 힘 빼고 가볍게, 파란하늘도 보고 주변 경관도 좀 둘러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