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성장 소설, 유니스 다이어리
단톡방에 지정헌혈을 부탁하는 광고글이 올라왔다. 본인의 딸이 일하고 있는 장애인시설 이용자분이 급히 입원하여 긴급수혈이 필요한 상황. 코로나로 인해 헌혈자가 줄어 피가 모자란다고 O형 피를 구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시설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말라리아 위험지역인 파주여서 헌혈이 불가하다고 했다.
20살 때 까진 큰 키에 비해 몹시 마른 체중 미달의 이유로 헌혈 퇴짜를 맞았었다. 20대 후반 맘 잡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거의 체육인 분위기로 몸무게도 늘고 늠름한 몸이 되며 비로소 첫 헌혈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론 다시 저혈압으로 아예 못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기간 동안 늘어난 체중 덕분으로 혈압도 꽤 올라가 정상수치가 되어 안심하고 헌혈에 도전했다.
예배 후 헌혈의 집에 방문했는데 이것저것 금기 사항과 안 되는 조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전날 음주, 전날 4시간 이상 취침, 몇 달간의 여행지역, 먹는 약, 다른 치료 사항 등등.
심지어 하루 전날 왔으면 전날 음주에 취침시간도 2시간에 무조건 헌혈불가였다. 그나마 오늘 걸린 불가 조건은 딱 하나 공복. 헌혈을 위해 두유와 주스 커피도 나름 챙겨마셨는데 밥을 안 먹어서 이것도 공복으로 취급되었다.
편의점 삼각김밥이라도 하나 먹고 오면 되겠냐고 하니 삼각김밥이면 최소 2개는 먹고, 이왕이면 그냥 김밥 1줄 정도 먹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다음으로 미루면 귀찮아하다 그냥 지나갈 것 같아 얼른 점심을 먹고 와서 헌혈 진행을 하기로 했다.
1층에서 제주 은희네해장국 한 그룻을 후다닥 먹었다. 선지도 들어있으니 뭔가 피 생산에 더 도움이 되어 보여 맘에 들었다.
320ml 피를 뽑았다. 헌혈 기념품이 뭔가 다양하고 예전보다 금액대도 높아졌다. 예전엔 영화 할인권을 주던걸 지금은 영화관람권 2장을 받을 수 있고, 비타민이나 휴대용 가습기 같은 것도 줬다. 집옆은 롯데시네마인데 여기 관람권은 메가박스라 그냥 조카들이나 주자 싶어 5천 원짜리 문화상품권 2장을 받았다.
헌혈을 한참 하며 내용을 더 읽어보니 헌혈기부권이라는 생소한 품목이 있었다. 헌혈 기념품을 안 받고 기부하면 형편이 어려운 고1학생에게 3년간 장학금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기부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왕 하는 거 좀 더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어 헌혈기부권으로 교체를 부탁했다.
지정헌혈을 받는 분이 친인척인지를 물었다. 본인일도 아닌 딸이 일하는 곳의 아프신 분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흘러들어와, 난 받으시는 분의 성함도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나와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가 아무런 계산이나 이득 없이 굳이 몸을 움직이며 그들에게 작은 마음이라도 보태고 있다고, 그러니 좀 더 힘을 내어보라는 그런 마음이 그들에게도 닿길 바랐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무시무시한 사건사고도 많다. 이럴수록 우린 선한 마음의 힘을 믿고,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착한 마음들을 일부러라도 더 활성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선한 의도를 악용하는 작자들이 없는지도 똑똑하게 잘 감시하며 우리가 착한 일을 안심하고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몸에서 피를 빼냈으니 예수의 피인 와인이라도 마셔줘야 하려나.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