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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를 참는 중년의 시간

만족지연능

by 피델


아. 힘들다.
더 이상 못하겠다.


어제 저녁, 줌으로 회의까지 끝내고 나니 나도 모르게 단말마가 나온다.
강의 준비하는 건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고 있는 건데, 왜 힘들까.


인생의 중반기, 분기점을 찾다


40세가 넘으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가장 먼저 나에게 온 변화는 "건강"이었다. 덩치는 크고 뚱뚱했지만 운동을 매일 하던 나였고, 아버지가 종합병원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건강 관리에는 신경을 많이 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41세를 앞둔 3개월 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고, 만 41세가 된 그달 크리스마스 이브에 수술을 받았다.


그해부터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암 진단 때문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정확한 계기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사면서 아내가 한 "아는 엄마가 좋다고 했어"라는 말이었다. 투자를 남의 말만 듣고 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덕에, "내가 직접 해보겠어!"라고 선언하며 시작했다. (나중에야 아내의 '아는 엄마'들이 강남 사모님들이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어쨌든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회사에서 잘나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래 준비가 된 것도 아니니까.


5년간의 탐색


그 후로 5년 동안 부동산 공부, 투자 공부를 꽤 했던 것 같다. 주식 투자도 하면서 이런저런 스터디와 모임을 통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방향을 고민하게 됐다.


투자 공부를 한 지 5년, 결국 알게 된 건 이거였다.
부동산은 결국 서울, 그것도 강남이다. (그렇게 환멸하던 강남 사모님들이 진짜 고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주식이 그나마 개미들이 할 만한 건데, 엄청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세력들의 밥이 되기 일쑤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사람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할수록 나에게 힘을 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실 그 깨달음의 계기는 부동산 임장을 하면서부터였다. 같이 가는 동료들은 임장을 재미있어했다. 동네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즐거워 보였다. 나는 "해야 하니까" 할 뿐, 회사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좀 다른 거라곤 회사에서는 일시키는 사람이 있지만 임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래서 회사는 돈을 받고 다니는 거고, 임장은 돈을 쓰며 다닌다는 것 정도였다.


나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하면 할수록 힘을 주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나는 사람이 나로 인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었다.


내가 찾은 두 가지 길


그래서 찾은 것이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비전센터를 통해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을 돕는 것
두 번째, 장애 청소년 IT 교육을 통해 장애인 자립을 돕는 것


요즘 주말은 이 두 가지로 거의 올인되고 있다. (평일에도 잠식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 주 토요일(오늘)은 장애 청소년 Global IT Challenge 결선 진출자 대상 AI, IT 교육이 있고, 내일은 버크만을 통한 "보이지 않는 나 찾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돈 생각하면 하지 못할 일이다. 내 미래를 위한 일이니까 하는 거다.


이걸 찾는 데 결국 6년이 걸렸다.


에너지와 고통 사이에서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건 아니다. 나는 강의를 하면 에너지가 차는 사람이다. 지난주 토요일 "기업이 원하는 강사" 강의를 준비하면서도 그렇게 힘들었지만, 강의를 하고 나서는 힘이 났다. 강의에 오셨던 분들이 "덕분에 해냈다"라는 말이 그렇게 좋았다.


하지만 그건 결과일 뿐.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은 정말 미치도록 괴롭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고통은, 기획과 전략에 은사가 없는 나에게 참 어렵다.


버크만 결과에서 "예술" 수치가 최하인 나는 특히나 더 그렇다. 논리적이지도 않은데, 장표가 예쁘지도 않아.


그럼에도 내가 강의 평가를 좋게 받는 이유는 나의 진심이 들어가 있고, 나의 경험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견뎌야 한다. 견딜 수 있다.


아... 그런데 너무 힘들다. 어제도 온종일 강의안 짜면서 교안 만들다가 진이 다 빠졌다. 저녁에 보조강사분들과 줌 회의까지 하고 나니, "더 이상 못해! 배째!"라고 하고 싶더라.


만족지연 능력이 필요한 때


하지만 안다. 하고 나면 좋을 거라는 것, 하고 나면 내 능력이 더 키워질 거라는 것, 지경이 넓혀질 거라는 것. 그리고 잘하면 이 기회가 많아질 거라는 것. 그러니 해야 한다. 그러니 할 수 있다.


10여 년 전, 회사에서 마케팅 신입 4년 차를 위한 22주짜리 교육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 고문님께서 "만족지연 능력"이라는 걸 강조하셨다. 대표적인 예시가 "마시멜로 실험"이었다. 당장 먹어버리지 말고, 그 '아는 맛'을 보는 행복을 최대한 지연시키면 엄청난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것.


당장 눈앞에 있는 휴식이라는 달콤함으로 채우지 말고, 내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하면 할수록 힘이 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서 오늘 하루를 좀 더 달궈야 한다는 거다. 아니까, 나중되면 힘날 거 아니까.


그리고 지금 이렇게 괴로운 건 내가 못하는 거니까, 나중에 레버리지하면 되지 뭐!


그렇게 오늘 하루, 내일 하루는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안 먹고 버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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