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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의도의 함정

나의 선한 의도를 끝까지 전달하는 법

by 피델

2주마다 하는 인생 독모 시즌4, 4번째 모임이 어제 있었다.

사람이 많아지며 10명에 객원 2명 체제로 운영하다 보니, 한 테이블에서 모두를 아우르지 못하게 됐다. 이제는 2시간은 다른 조로 나누어 진행하고, 나머지 1시간은 공통발제문으로 함께 이야기한다.


나는 이 모임에서 팀장 역할을 맡고 있다. 시즌1부터 함께해 주신 동료분이 부팀장으로서 이런저런 살림을 다 챙겨주고 있다. 사실 나는 우리 멤버들이 말한 '방구석 호랑이' 정도일 것 같다. 부팀장이 모든 것을 챙기고, 다른 멤버분이 장소까지 예약해 주니까. 내가 하는 일이라곤 독서 모임에서 좀 더 많이 말하는 것, 그리고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먼저 이야기하는 정도뿐이다.


어제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것 같다.


7시에 딱 시작해야 하는데 늦는 동료들이 꽤 있었다. 그때문인지 혼자 속으로 '아, 이러면 안 되지. 분위기를 다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그 결과 유난히 꼰대 같은 말들이 많이 나왔다. 하고 나서도 '나 왜 이러나?'라는 후회가 들었다.


7시부터 시작된 조별 토론이 끝나고 9시가 됐다. 이제 공통 토론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OO님, 이제 자리 합쳐요.


화장실을 가면서 나는 부팀장에게 이 말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말로 하지 않고 몸짓으로 했다는 것이다. 어깨를 툭툭 친 다음 두 손을 모으는 행동을 한 뒤, 나는 화장실을 갔다.


화장실에 가서 생각해 보니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아, 그냥 말로 할 걸. 아니면 내가 직접 "같이 자리 옮겨요"라고 했을 걸. 왜 굳이 그랬을까?'


내 의도는 동료들이 아직 이야기 중이니, 조용히 부팀장께 '분위기를 봐서 함께 움직이자'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화장실을 가자마자 책상과 의자를 옮기는 소리가 났다. 결국 나는 그 분에게 '존중 없이' 일을 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마치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 자리 정리해'라는 꼰대 같은 말을 한 것처럼.



선한 의도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


어제 독서 모임의 책은 『혼모노』였다. 내가 제시한 주제는 "선한 의도를 어떻게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였는데, 정작 내 행동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내가 가진 선한 의도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고, 그것을 바로잡을 용기도 내지 못했다.

사실 여러 번 '미안합니다, 저는 이런 의도였어요'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소심해 보일까 봐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금 다시 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으니까.


내가 어떤 의도로 말했든, 그것이 선한지 그렇지 못한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가 전부다.


어제 토론에서 우리는 "선한 의도를 끝까지 전달하는 방법"을 이야기했고, 나는 "선한 의도를 끝까지 받아들이는 방법은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내 대부분의 행동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선한 의도인지는 상대방에 달려 있다. 만약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말(피드백)해 준다면, '사실 저의 의도는' 이라거나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그래야 다음에도 상대방이 용기 내어 피드백을 해 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제 같은 경우는 다르다. 상대방이 피드백을 표현해 주지 않았고, 내적인 자기검열에만 갇혀 괴로워했다.



얕은 역지사지의 함정


집에 오는 길, 나는 계속 생각했다.


역지사지. '내가 상대방 입장이라면'을 고려해 보는 좋은 방법이다. 어제 나는 순간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OO님은 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내 의도를 잘 이해해 주겠지?'라고. 마치 친한 친구 사이에서 그러듯이.


하지만 친한 친구일수록 다툼이 많지 않은가? 처음 보는 사이는 서로 조심하고 존중하는데, 친한 사이에는 '저 친구는 나를 이해해 줄 거야'라고 생각하다가 "야, 그것도 이해 못 해주냐?"고 한다.


이것도 역지사지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너라면 이 정도는 이해해 줄 텐데'라는 매우 얕은 수준의 역지사지일 뿐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나는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것 같은데, 너도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진정한 역지사지는 다르다. 시간을 두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되어야 한다. '내가 너라면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 아니라, '내가 너라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봐야 한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어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말로 직접 이야기했거나, 아니면 한번이라도 웃으면서 그 분께 부탁했을 것이다.




번거로운 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


'아, 뭘 그렇게까지 피곤하게 살아야 하나?'


이건 내가 자주 드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야기를 꺼내다가 '멈칫'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행동에도 소심함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그게 습관이 된다.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진다. 우리가 식사를 하고 나서 계산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버스에서 내릴 때 기사님께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번 더 생각하기'라고 말하면 좀 식상하다. 하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 내 말 들어보기" 정도는 해야 제대로 된 역지사지가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제의 후회가 오늘의 습관이 되고, 오늘의 습관이 내일의 자연스러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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