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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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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Jul 01. 2023

내안의 너 #9

Welcome to the earth, Baby

수술을 결정하고 우리는 곧 만날 콩에게 보내는 영상메세지를 짧게 찍었습니다.

저는 파란 수술모자를 쓰고 돌돌거리는 침대에 눕혀진 채 수술실로 들어갔고, 가능한 최소한의 마취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콩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정신이 없는 채로 있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제왕절개 후기를 보면 하반신 마취를 위한 척추 추사는 매우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의료진의 실수가 하반신 마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어차피 수술을 결정한 이상 어떤 실수든 저와 콩에게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무서워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죠.


담당의는 신뢰감 가득한 목소리로 나 여기 있어요, 무서워할 것 하나도 없어요, 하며 추워하는 저를 안심시켰고 마취 담당 의사는 옆에서 말을 걸며 제 의식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생각보다 참을만 했던 마취주사를 맞고 순식간에 수술이 진행됐고,


'너구나?'


하는 웃음기 어린 담당의의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으아아앙 하는 콩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곧 시간과 무게를 기록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간호사가 아기를 들고 와 보여줬습니다. 건강해요, 여기 보세요!

작고 빨갛고 지저분하고 무언가에 잔뜩 뒤덮인 콩은 서럽게 울고 있었고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의 감정은 언어로 설명하긴 너무 어렵습니다.


굳이 기록하자면 솔직히 감동적이라고 하기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 10개월간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지난한 여정이 끝났다는 것이 벅찬 기분이었습니다. 3년간 둘이서만 꾸려 온 우리 가족이 이제 돌이킬 수 없이 삼인방이 되었다는 것도 실감났고요. 저렇게나 작고 무력한 녀석을 여전히 어린애 같은 우리 부부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과, 우습게도 이 순간을 남편과 따로 볼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원망도 함께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콩이 어쩐지 불쌍했습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에 와서 나 같은 사람을 엄마라고 믿고 따라야 하겠구나.

이제 와서 어쩌겠니. 최선을 다 할 테니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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