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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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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ug 07. 2024

계속 무서운 게 있었으면

너는 지저분해도 귀엽구나

돌을 지나 좀비처럼 온몸을 씰룩거리며 걷던 콩은 어느 순간부터 날렵해졌습니다.


토실토실한 팔다리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소파에 올라가 있었고요, 공원에 나가면 비둘기를 쫓아 힘차게 파닥거리며 뛰어다니곤 했죠. 아직 몸에서 머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그런지 하루종일 넘어졌다 일어섰다를 반복했지만 얼마 전까지 침대도 간신히 기어 나오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쑥쑥 자랐습니다.

공원과 놀이터, 골목골목을 천지분간 못하고 뛰어다니다 보면 아이의 이마는 땀으로 젖고, 그렇잖아도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스프레이라도 뿌린 것처럼 온 머리에 착 달라붙습니다. 아이들 목 짧은 거 아시죠? 모래놀이라도 했다간 접힌 목 사이로 모래가 다 끼어 있고요. 바닥에 떨어진 열매며 나뭇가지 등등을 시도 때도 없이 주워 들다 보면 자그마한 손톱 사이사이에도 때가 탑니다.




마음이 쿵 하는 것은 그렇게 아이가 앞서 가다가 무서운 걸 발견하고(처음 보는 현수막이나,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이 켜켜이 얼룩진 자국, 인형탈을 쓴 행사장 마스코트 등등) 뒤돌아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때입니다.


" 엄마 무뎌워요 무뎌워 "


앞서 뛰다가도 조금만 겁나는 게 있으면 도로 후다닥 돌아오는 잰걸음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녹는 기분입니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아이를 꼭 끌어안으면 따끈따끈 + 흙냄새 + 땀냄새 + 어딘지 모를 빵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섞이며 콩콩대는 심장 박동이 그대로 전해지는데요. 아이는 있는 대로 지저분하건만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무서워하는 지금이 너무나 안전하고 충만해집니다.


엄마 있는데 뭐가 무서워, 괜찮아 콩. 하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이요.

언제까지 아이가 무서워하는 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 있잖아라고 달래줄 수 있는 걸까요.

이 아이가 조금만 자라도 부모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많은 것들에 직면하게 되겠죠. 인형과 어둠 따위가 아니라 사람과 돈, 실패를 무서워해야 하는 나이가 된다면 그때 저는 뭐라고 말해 줘야 할까요.


그땐 그냥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사랑해, 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더 강한 엄마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어쩌면 돈이라도 더 잘 버는 엄마가 되길 바라며

무엇보다 콩 곁에서 오래오래 응원을 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당분간은 좀 더 귀여운 것들을 많이 무서워해 주기를 욕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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