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0월 아기랑 삿포로 # 5
3박 4일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콩만 걸렸던 감기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공유되었는지, 마지막 날 아침엔 셋이 사이좋게 콧물을 흘리며 기침을 해대는 지경이 되었다(마지막 날이라서 다행이다)
입맛은 없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며 호텔 조식당으로 이동.
그리드 프리미엄 호텔 오타루의 조식은 훌륭한 수준이다. 가짓수가 대단히 많다기보다 하나하나의 재료가 신선하고 식당이 잘 관리되어 있으며,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 않을 메뉴들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팥으로 양념한 경단 디저트가 기억에 남는데 콩도 우리도 맛있게 잘 먹었다. 오타루 자체가 2박까지 해가며 볼 것이 없다 보니 연박을 하는 손님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이삼일 내리 먹어도 즐겁게 먹을 것 같은 조식이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이제 귀국길에 오른다. 오타루 역으로 가서 JR로 신치토세 공항까지 가면 되는 심플한 귀갓길!
문제는 삿포로를 떠나 오타루에 오면서부터 콩이 뛰어놀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아이의 짜증이 올라갔다는 것. 오타루 첫날은 비가 오고, 이튿날도 공항에 오느라 짐 싸고 어쩌고 하면서 아이랑 놀아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게다가 리조트에서 놀 수 있었던 동남아와는 달리 일본 호텔은 큰 방이래 봤자 놀 공간은 부족하고 호텔 안에서도 딱히 아이가 놀 곳은 없었다 보니, 콩 입장에서는 삿포로 가챠샵 이후로는 재밌는 게 1도 없었던 여행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자긴 재밌지도 않고, 맛있는 게 많은지도 모르겠고, 비가 와서 나가 놀지도 못하고, 좀 뛸라치면 위험하다고 손 잡고 유모차에 태워 다니니 에너지 쓸 곳이 없었던 게 느껴져서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와 여기 너무 좋다! 여기 진짜 재밌는 곳이다! 하는 콩을 보며 너무나 미안했다 - 너무 어른 위주의 스케줄을 소화하게 만든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다.
공항에서도 계속 뛰어다니고 도망가고 아이는 길에 있는 온갖 안내판이며 마스코트들을 다 건드리고 싶어 하는데 우리는 우리대로 수속도 해야 하고 국제선으로 이동도 해야 하고 직장과 가족들에게 줄 쿠키라도 소소하게 사야 하고...! 달래고 달래서 유모차에 앉히자 자기가 원하는 과자가 없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이에게 결국 화를 내버리고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한다.
하지만 공항을 좋아하는 콩은 다행히 내가 조공으로 사다 바친 유바리 멜론(삿포로 특산품으로 매우 매우 매우 맛있다)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들이고, 곧 게이트 앞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겪으며 홀로 여행자에서 부부 여행자, 진정한 부모 여행자로 레벨업했던 기분도 들고, 앞으로는 가족여행을 떠날 때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시간도 꼭 따로 만들어야겠다는 반성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도 콩도 성장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