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민정의 오늘
영 찌뿌드드한 요즘이었다.
언젠가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가 없었다.
인스타에 릴스를 한참 올리고 예상보다 많은 팔로워들이 생겼던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레었는데, 요새는 그런 마음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인스타 올려야 하는데, 그림 그려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예전에 한창 SNS에 열을 쏟던 시절, 두 명의 친구가 나에게 얘기해 주었던, '쇼윈도 부부 같다'던 -SNS와 실제 나 사이에 괴리가 있다던-말이 맴맴 돌았다.
짝꿍과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짝꿍이 형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줬다. 업무 특성상 일과 생활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형사들은 절대로 한 번에 한 사건만 맡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간 미치고 만다고. 그래서 적게는 2-3건, 많게는 5-6건의 일들을 맡아 한번에 처리한다고. 그래서 한 사건이 막힐 때면 다른 사건을 들여다보다가 의외의 순간 막혔던 구멍을 돌파하게 되기도 한다고.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눈사람을 오래도 그렸다.
2023년 초순부터 지금 2024년 중순까지. 장장 1년 반동안 눈사람 이야기에 매달린 것이다. 물론 오래 들여다보면서 찾게 된 깊이나 늘어난 실력도 분명 있으나, 눈사람 이야기는 작년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올해는 올해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그 마음을 꾹꾹 눌러놓고 못 풀다 보니까 신나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아니라 숙제처럼 작년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
SNS에 올려야 한다는, 눈사람 이야기를 끝내야 한다는, 잘 그려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모두 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그냥 오늘 내 눈앞에 있는 풍경을 손으로 슥슥 옮기는 재미를 만끽하기로 한다. 무겁게만 느껴지던 그림 그리기가 이렇게 재밌어질 수가. 어떻게 그려질지 완성작을 떠올리지 않고 눈길 가는 대로 그려내는 그림이 영- 정겹다.
아무래도,
제철은 음식에만 있는 게 아닌 듯하다.
2024. 6. 19. 수. ㅁㅈㅇ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