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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퍼스씨네이십일 Jun 19. 2017

일상이 여행_서울 시장 여행

  


‘일상을 여행으로’는 유명 여행 미디어인 ‘여행에 미치다’의 슬로건이자 여행 관련 매체에서 자주 보이곤 하는 문구이다. 사실 일상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마주할 조건이 되어주기는 하지만 나 역시 여행이라는 것이 일상과 그렇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이 문구를 참 좋아라 한다. 익숙한 풍경들을 조금만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바라보면 정말 곳곳에서 오만 가지 이야기들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될 것이다. 서울에 살면서 여러 가지 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곳곳에 크고 작은 시장들을 참 많이 볼 수 있었다. 상인이 모이고, 손님이 모이고, 장사 거리가 모이고, 대화가 모이게 되는 시장의 특성상 몇 발짝 안에서도 재밌는 광경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곤 한다. 그래서 모처럼 여행 기분 잔뜩 내며 서울 내 시장들을 둘러보았다. 가벼운 마음가짐과 카메라만으로 일상에서 여행은 언제든 가능했다.     



양재 꽃시장

생화시장은 새벽부터 낮시간이면 끝나서 보지 못했지만 분화온실은 다행히도 오후 늦게까지 열렸다. 아무래도 꽃시장이다 보니 꽃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꽃을 든 아저씨, 꽃 심는 아가씨, 꽃 사신 할머니, 꽃 나르는 청년까지. 정말 꽃이 뭐기에 이렇게 예쁜 분위기를 내는 걸까! 사진 찍는 맛도 나고 새삼 그 존재감에 감탄한다. 주위에 널린 것이 꽃이다 보니 꽃을 배경으로 한 모든 사람들이 화사해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 그래도 꽃시장까지 온 김에 꽃 몇 송이 사야겠다 싶었는데, 딱히 미리 생각해둔 꽃도 없었고 워낙 꽃 종류가 많다보니 괜히 더 고르지 못했다. 돌아 나오면서는 다음번엔 일찍 생화시장에서 튤립 줄기 튼튼한 걸로 몇 송이 사야지 결심했고, 시장을 나온 뒤엔 옆에 있는 양재 시민의 숲도 조금 걸었다.        


   


약령시장/경동시장

제기동역에서부터 엄청난 할머니, 할아버지 무리에 휩쓸렸다. 아무래도 이쪽 시장은 상인들도 그렇고 손님도 그렇고 다른 시장들에 비해 연령대가 높은 것 같다. 어렵사리 나온 길에는 많은 이름의 약재들이 자루나 상자에 담겨 있는데, 건강기능식품 홈쇼핑에서 들어봄직한 약재 이름들이 지나가면서 간혹 보이기도 한다. 하나하나에 직접 손으로 쓴 듯한 이름표가 각각 꽂혀 있던 게 또 은근히 귀엽다. 약령시장에서 경동시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던 한 약방 안에는 아주머니께서 몸은 TV로 향하신 채 한창 단잠에 빠져계신다. 또 조금 더 걸어간 시장 한 켠에서는 상인분들이 점심 드시고 잠시 치워두신 접시더미들도 햇빛을 환히 받고 있었다. 딱 이 시간대 시장 이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을 마주친 기분이다. 호객행위를 하는 건 아니지만 약재상마다 서계시는 아저씨들로부터 매서운 눈빛을 잔뜩 받고, 쌉싸르한 약재 냄새를 은은히 맡으며, 그렇게 시장통을 한참 둘러보았다.     


  

동묘구제시장

정형돈과 지드래곤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한때 무척 핫했던 동묘구제시장. 이곳도 원래는 주연령층이 높은 시장이지만 방송의 탄 뒤로 싼값에 빈티지한 옷을 건지려는 젊은이들이 많이들 찾고 있다. 실제로 가로수길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패션의 패피들이 동묘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꽤 보았다. 동묘는 역시 길바닥에 잔뜩 흩뿌려놓은 옷가지나 물건들을 마구 뒤적이는 맛이다. 오래된 옷에서만 나든 특유의 나프탈렌 향도 때론 반갑고, 어느 노점에서 발견한 먼지 폴폴 쌓인 기타엔 추억의 판박이 스티커도 붙어 있더랬다! 물건마다 누구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지 그 속사정이 궁금해지는 건 분명 나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은 무려 1만원에 상당히 괜찮은 백팩을 건지기도 했다. 깜빡하고 현금을 안 챙겨서 ATM 다녀온 게 좀 수고롭긴 했지만 이 맛 역시 동묘니깐!     


 

광장시장

동묘 말고 광장시장도 구제 코너가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수입구제들이라 그런지 패턴과 디자인이 정말 독특한 것들이 많다. 눈길 가는 게 많았지만 동묘가 광활한 구제월드였다면 여긴 구제밀집지역이라고 할까. 좁은 복도를 걷는 족족 “찾으시는 물건 있으세요?” 쏟아지는 관심을 이겨내지 못해 그리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광장시장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먹거리 코너는 평일 낮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마약김밥부터 족발, 닭발, 국수도 있고 바삭하게 구워지는 빈대떡은 사운드부터가 반칙이다. 아주머니들은 각 노점 한가운데서 열심히 칼질을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밖으로 에워싸고 앉아 각자 주문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지글지글 소리와 요란한 수다가 끊이지 않는 이 분위기는 정신없다면 정신없을 수 있겠지만, 아마 많은 이들로부터 광장시장이 사랑받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글·사진 이채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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