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님이 또 국가에 의해 살해당했네요.
정부는 그 나라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반영한다. 국민보다 수준이 높은 정부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국민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지게 마련이다. 국민보다 수준이 낮은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지듯이 말이다. 한 나라의 품격은 마치 물의 높낮이가 결정되듯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법 체계와 정부 안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고상한 국민은 고상하게 다스려질 것이고, 무지하고 부패한 국민은 무지막지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 새뮤얼 스마일스, 《자조론》, p.29
요즘 이 글이 정말 맞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같이 24년간 경찰공무원만 한 사람도 이 세상의 부패가 한눈에 들어오고 이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이 보이는데 왜 우리는 나라가 발전하고 선진국이 되었으며 민주국가에 산다는 착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요?
비록 1997년 제가 경찰관을 하던 시대에는 온 나라가 부패하기는 했어도 앞으로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24년의 경찰공무원을 하는 동안 저는 우리 정부가 민주적으로 바뀌었다든지 전문화되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소소한 부패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큰 부패로 전이되었을 뿐이고 모든 공무원이 받던 소소한 현금은 점차 사라졌지만 고위공직자들이 향유하는 이권은 점점 커져가기만 했습니다.
검사라는 조직은 오로지 수사만을 하는 조직이라 인간에 대한 존엄과 가치에 대해서는 배울 기회가 없는데도 지금은 온 나라를 삼키고 있습니다. 이게 그저 검찰만의 문제일까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군부독재를 거쳤고 국민의 힘으로 겨우 괜찮은 대통령을 뽑았지만 우리는 그 대통령을 살인했습니다. 그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반민주적이고 독재적이며 탄압적인 정부가 활개를 칩니다.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것만이 폭력이고 탄압일까요? 칼로 찔러 죽이는 것도 살인이며 억압과 속박으로 자살하게 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그러한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합니다.
일제 강점기 지식층이었던 중학생들이 항일운동을 했죠. 전쟁 이후에는 고등학생들이 투쟁을 했죠. 그리고 살만해지기 시작했을 때는 대학생들이 투쟁을 했죠. 거기까지 끝입니다.
직장인이 되는 순간 그저 먹고살아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국민은 더러운 정부를 보기 싫어 그저 뉴스를 보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오로지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극소수의 용감한 지식층뿐이며 이에 대응하는 나머지는 무지한 국민과 정치적인 언론과 자본이 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돈만을 향유하고 돈을 위해 대학을 가고 돈을 위해 정치를 하며 그 돈을 위해 자식을 교육시키는 나라는 미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선균 씨가 또다시 경찰에 의해 살해를 당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물고문과 전기고문만이 고문이라는 착각을 하고 삽니다. 부패의 정의가 확장되었듯 고문의 정의도 확장되는 것입니다. 마약 수사가 대체 뭐라고 사람을 죽이나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나라인가요? 대체 재판도 받지 않은 사람의 혐의를 언론에 퍼뜨리나요?
이러한 현상이 용인되는 것은 그저 우리 모두가 비판적 사고도 없이 그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