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인천의 어느 갯골과 유수지로 철새 사진을 촬영하러 나갔다. 이른 아침의 하천과 공원은 지극히 고요하고 한적해서 새벽에 잠드는 습관을 지닌 올빼미형 인간인 나로서는 별천지의 세상 같았다. 그날따라 하늘과 대기가 뿌옇게 흐려서인지, 카메라 렌즈로 우아하고 유려한 자태로 하천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새들을 가만히 관찰하는데, 괜스레 신비감과 경이감이 들더니 울컥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한 대상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렇게나 가슴이 뭉클해지다니, 내게는 퍽 놀랍고 낯선 경험이어서 중대백로 사진과 함께 그런 단상을 SNS에 올렸다. 새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들인지 몰랐다고, 사람들이 새를 찍으러 다니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잠시 후, SNS 지인이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저는 그냥 가만히 보는 게 좋습니다.]
그 댓글을 보고 잠시 멍했다. 언뜻 보기에 삐딱한 뉘앙스의 댓글 같았기에, 그 사람은 왜 이런 댓글을 달았는지, 내가 쓴 문장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했다. 그러면서 그 댓글은, [시뻘게진 눈]이라는 어구와 함께 오래전에 지인이 들려줬던 새 촬영 에피소드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지인이 들려준 상황은 대략 이러했다. 그는 야생 새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어미새가 새끼들을 돌보는 둥지 나무 근처에다 위장막을 치고 텐트 안에서 며칠을 먹고 자며 지냈는데, 무슨 일이 생겨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더니 그야말로 파국적인 상황이 돼있더라고 했다.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대여섯의 마리 새끼들이 있던 둥지는 텅 비었고 둥지를 가렸던 나뭇가지들이 싹 깎여져 나간 채 둥지만 덜렁 남은 상태였다. 아마도 나뭇가지에 가려지지 않은, 둥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새끼 새 사진을 선명하게 찍으려고 둥지 주변의 나뭇가지를 톱으로 싹 제거했던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그렇게 하고 사진을 찍고 가버린 뒤, 새끼들의 둥지는 바깥으로 훤히 드러나게 되었으므로 상위포식자인 다른 새가 새끼들을 잡아채 갔거나 바닥에 떨어져 죽었을 거라고 했다. 지인이 너무나 기가 막혀서 멍하니 빈 둥지를 올려다보는데, 뒤늦게 어미 새가 날아왔다고 했다.
“어미 새가 빈 둥지를 발견하고는, 한참을 격렬하게 파닥거리며 둥지 주변을 날아다니다 시뻘게진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후루룩 날아가 버렸는데... 그때 가슴이 너무너무 아팠답니다.”
지인의 그말은 내게도 깊은 슬픔을 남겼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뻘게진 새의 눈은 잊히지 않아서 어디선가 예사롭지 않은 배경의 새 사진을 보게 되면 과연 저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까, 설마 새를 괴롭혀서 찍은 게 아닌지 괜한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됐다. 그랬기에 SNS 지인이 무슨 마음으로 내게 그런 댓글을 달았는지 너무나도 이해가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야생의 생명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편에 속했다. 야생동식물은 숲에서, 바다에서 자기 생존법칙에 따라 잘 어울려 지내고 있는데, 사람들이 멋진 사진 하나 건져보려는 욕심에 애꿎은 생명들이 해를 입고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며 분노하며 비판했다. 야생의 생태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기록하거나 작품화하는 이가 아닌 이상, 취미나 재미로 야생동물을 찍으러 다니는 이들을 고운 시선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취미로 한다면, 다른 예술 분야보다도 윤리적 의식과 감각에 더 많이, 더 깊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올초부터 생태사진 전문가 선생님과 인연이 됐고, 새 사진 출사에 참여하여 카메라 렌즈를 통하여 새들을 바라보다 그들에게 매혹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야생 새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어느 정도 마음이 열린 상태가 됐다. 무엇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겠고, 어떻게 하는가는 결국 윤리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므로, 윤리적 실천에는 대상과 상황을 잘 살피고 헤아릴 줄 아는 구체적인 앎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장다리물떼새>, 펜과 수채, 16절, 2022년 6월
<저어새의 먹이활동>, 펜과 수채, 16절, 2022년 6월
아직 두어 번의 새 촬영모임에 나간 정도지만, 아직 흐릿하게나마 새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눈뜨게 되면서 요즘은 인간이 새들과 어떻게 공존하며 잘 지낼 수 있을지,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종종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지난겨울에는 이렇게 추운 날에 아무것도 먹을 게 없을 텐데, 새들은 무얼 먹고 어떻게 지내는지 막연하게 걱정만 했다면, 새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의 존재로 한 발자국 다가가면서 난생처음으로 버드피딩을 공부하게 되었고, 사소한 실천이지만 집 앞에 새들이 먹을 물과 곡식을 담아놓아 두게 됐다. 내가 새 사진을 찍으러 나가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며칠 전에 직박구리 한 마리가 내가 놓아둔 물을 마시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나도 나와 너무나 다른 종의 생명에게 뭔가를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그때의 발견은, 나란 미약하고 허술한 존재가 지구상에 살아갈 쓸모에 관한 어떤 일깨움과 작은 기쁨을 안겨다 줬다.
마지막으로 내가 야생동식물의 생태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면(다른 이들도 함께 했으면!), 어느 인터뷰 기사의 한 대목을 늘 새겨둬야 하지 않을까 해서 여기다 메모해둔다.
“가까이 가려고 하지 말고 쫓아가지 말고 잘 나타나는 곳에서 기다려야만 한다”는 게 김연수의 생태사진 지론이다. 김연수는 “동식물을 찍는 분들이 많이 늘고 있지만 사진에 욕심만 채우다 보면 자연과 환경을 아끼는 생태사진가가 아니라, 자연과 환경을 훼손하는 파괴사진가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며 “생태사진은 결국 자연을 사랑하는 과정이 되어야지,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태사진 입문자들에게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