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함께 본다는 것

걷고 쓰고 그리는, 산책 드로잉 에세이(13)

by 안이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예전 학생 때 MT 온 거 같네요.”


누군가 하늘을 올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잔잔한 행복감이 묻어있었다. 그 말을 듣고는, 내 머릿속의 기억 서랍들이 여기저기서 덜커덕대며 반응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 분위기와 비슷했던 오래전의 그날을 찾느라고. 수십 년 전 언젠가 물가로 MT 가서 밤하늘의 달을 동기들과 함께 올려보던 그밤의 추억을 끄집어 내보려고.


가끔씩 오래 전의 인상적인 날과 비슷한 분위기의 날이 되돌이표 찍듯이 다가와 있곤 한다. 그런 때를 만나면 시공간의 마법로부터 따뜻한 물수건을 건네받는 기분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건,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고 메말라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은데……. 예전의 생기와 온기 넘치던 시절을 환기할 시간이 문득 일상에 끼어들어오면, 뜨뜻한 물에 푹 담갔다 꼭 짜낸 수건으로 메마르게 식어가는 마음이 따뜻하게 잘 닦여지는 기분이다. 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며 아등바등 견뎌온 세월의 더께가 가벼워지며, 한결 말끔해진 나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MT 온 것 같았던 그날, 우리 출사팀은 보름달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이른 저녁부터 의왕의 왕송호수로 모여들었다. 해가 저물고 노을도 끝나가고 하늘이 까맣게 되기 전인 잠깐의 시간, 누군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표현하고, 사진 찍는 이들이 매직아워라고 부르는 그때의 달을 놓치지 않으려고 저녁하늘을 부지런히 올려다봤다.


안타깝게도, 그날 하늘은 꽤 많이 흐렸다. 보름달이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오르긴 했지만, 뿌연 구름에 가려서 달 실루엣은 내내 흐릿하기만 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환하고 커다란 보름달 사진은 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상을 한참을 바라본 경험을 함께 했다. 그 대상이 다른 무엇도 아닌, 신비와 서정이 묻어있는 달이었다.


이번 사진강좌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멤버들은 아직 마음 편히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난 몇 개월 사이, 바깥에서 사진을 찍는 날은 얼마간 되지만,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친교의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서로 알게 된 지는 꽤 되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고 서먹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이런 경향은, 우리 멤버들 뿐만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온 온 지구인들도 마찬가지 겪는 상황일 테다.


그동안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달을 함께 올려봤던 사람들과의 추억은 유난히 오래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달이 가진 어떤 고요와 서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은은한 달빛은, 작열하는 햇볕과 달라서 어둠을 몰아내지 않는다. 어둠과 함께 가만히 있어주는 느낌이다. 함께 있으되 가만가만 곁에 있어주는 기분, 그건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바라는 만남이 아닐까 싶다.


때론 야단스럽고 들썩대는 유쾌함도 필요하지만, 그런 만남에서는 화려한 몸짓과 목소리가 큰 사람에게 집중되기 쉬워서 작고 조용한 존재는 지워지기 십상이다. 가만히 달을 올려봤던 이들과의 시간은 너도 있고 나도 있을 수 있는 만남이었다. 너무 고요해서 밋밋하고 슴슴한 시간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오래 길게 기억되는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MT 가서 함께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봤던 이들의 얼굴은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른다.


아마도 왕송호수에서 흐릿한 달빛을 받으면서 함께 있었던 이들의 모습도 시간이 많이 흘러도 언젠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일까? 출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즈음이 되자, 멤버들이 내게는 한층 더 가까운 사람들이 된 것 같았다. 그동안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마다 느꼈던 내 안의 서걱거림이 한결 옅어진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로서는 진짜 MT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KakaoTalk_20220520_203800382.jpg <보름달을 찍는 우리들> 펜과 수채, 2022.5,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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