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쓰고 그리는, 산책 드로잉 에세이(12)
[○○ 제4구역 이주개시. 2021년 12월 22일 ~ 2022년 4월 30일]
작년 말부턴가 우리집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 혹은 강아지 산책코스로 종종 이용하는 이웃마을 거리 곳곳에 이주공고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내가 다니는 길은 마을을 관통하는 데가 아닌, 주로 바깥 인도였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이웃마을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모르고 있었다. 10여 년 전부터 동네 지인으로부터 거기가 재개발된다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우리동네도 아닌 이웃동네 이야기였으므로 그저 그렇구나 하고 흘려넘겼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하루 이틀 플래카드 아래를 지나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 마음 어딘가가 점점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 그동안 뉴스에서 봤던 재개발과 재건축 이야기는, 가진 없는 이들에게 크나큰 재난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여기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언제 시간을 내서 이웃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한번 눈으로나마 담으며 인사라도 해야겠구나 마음을 먹었지만, 일상에 치여 차일피일 미루다 4월 말에 이르러서야 마을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고 내 눈길을 가장 먼저 끈 것은, 어느 슈퍼 앞길에 놓인 십여 개가 넘는 커다란 비닐자루였다. 그것들은 언뜻 종량제 쓰레기봉투처럼 보였는데, 그 안에는 옷들이 차곡차곳 쌓여있었다. 순간 드는 생각이, 설마 저렇게 많은 옷을 한꺼번에 버리는 건가 싶었다. 괜스레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슈퍼 앞에서 비닐자루를 정리하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이 옷들 버리는 거예요?”
만약 그렇다면 어디 기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때 내 뒤쪽에서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내가 더 다가오지 못하도록 한 손을 흔들어 쫓는 듯한 동작으로 “뭐요? 무슨 일이오?”라고 말했다. 퉁명스럽고 언짢은 기색이었다. 순간, 주눅이 들어서 그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내가 뭔가 질문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맞다, 지금까지 여기 남아있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이사준비를 하는 거겠구나 싶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재개발로 오랜 세월 정든 마을과 집을 떠나야 한다면, 그동안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죄송합니다. 이삿짐 싸시는 거였군요.”
아주머니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다른 비닐자루를 정리하며 대꾸했다.
“이제 이틀 남아서요. 여기 비워줘야 해서요.”
“아, 그러시군요.”
그러고 잠시 침묵하는데, 아주머니 뒤편의 슈퍼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가게 앞의 너른 평상, 옆으로 밀고 당기는 슬라이드 출입문, 철제 앵글의 진열대 등. 내 어린 시절, 동네 골목 어귀마다 하나씩 서 있던 가게, 그러니까 전빵이라고 불리던 곳의 느낌과 흡사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여기 주민들의 부식과 주전부리를 담당하며 사랑방 역할을 해왔을까 궁금했다. 그사이 나를 경계하던 할아버지의 태도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할아버지께 가게 하신지 얼마나 되었는지 여쭈었더니, “17년이요, 여기서만 17년!”이라고 대답하는 할아버지 목소리 어딘가에 자부심이 가득 베여있었다. 그 자부심에 호응하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큰 소리로 “와, 17년이나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이사 잘 하시고 이사하신 데서 잘 사시길 바란다고 인사하고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
거기서부터 골목이 뻗은 대로 걷고 또 걸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너무나도 멀쩡한 빌라 건물들이 수두룩하게 보였고, 싱그러운 봄날에 맞춰 마을의 꽃과 나뭇잎새들이 자기 생명과 활기를 힘껏 피워내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물론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뒤덮어 쓴 낡디 낡은 건물과 마을시설이 간간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둔감해서인가, 여느 다른 마을 보다 특별히 더 낡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어느 골목에서 큰 길로 나오자 길고양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였다. 두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우다다다 뛰어다니다가 트럭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들은 배를 드러내고 누워서 이따금씩 앞발로 서로의 얼굴과 등을 툭툭대며 장난치며 놀았다. 유쾌하고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그들 뒤편의 집들 대문마다 붙은 <경고문 – 본 건축물은 이주 철거로 인해 발생한 공가로 범죄예방을 위한 집중순찰 대상……> 이라는 커다란 빨간 딱지만 없다면, 여느 마을의 오후 풍경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언젠가 신문 기사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정비 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그 지역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던가? 어느덧 여기 마을에서 가장 어려운 마을 사람들이 떠났으므로, 이제 남은 존재들이라곤 꽃과 풀과 나무와 길고양이, 그리고 또 다른 동식물들이겠다. 그들은 가진 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약한 존재들이어서 지금 마을에서 사람들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그 이유조차 모르는 채 지내고 있을 게다. 어느날 망치와 톱을 손에 쥐고 트랙터를 앞장세운 사람들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자기 앞날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사람 없는 텅빈 마을에서 고요하고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