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퇴사가 결정되고, 퇴사 일자까지 나의 소중한 연차를 알차게 사용하고 싶어서, 주변에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있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었다.
우리 가고시마 갈래?
너무 급하지?
그럼 남해 어때, 남해.
한 친구가 그러마 하며 손을 들었다. 당첨이다. 급한 결정이라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남해로 가는 버스 티켓, 숙소, 그리고 일정.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한 것은 렌트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또 뚜벅이 여행을 즐겨보겠는가. 고생은 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저 미소 지으며 떠올릴 수 있는 작은 추억을 만들었으니 그걸로 됐다 싶다. 물론 다음에 남해 갈 때는 무조건 렌트다. ^^
아무튼 이동에 제약이 걸린 우리는 마지막 머물 숙소는 무조건 남해읍 시외버스 터미널과 가까운 곳을 고르기 시작했다. 많은 펜션과 게스트 하우스를 뒤로하고 예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책의 정원'
원래도 책을 좋아하고 독립서점 탐방을 주로 하는 나로서는 글 쓸거리(?)도 생기고 터미널과 가깝기도 하니 숙박도 잘 해결될 수 있으니 1석 2조였다. 급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더블룸이 하나 비어있어서 친구와 나는 잽싸게 예약하였다.
일정을 다 소화하고 걷다 지친 우리들이 책의 정원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 개천을 낀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걷다 보니 길의 끝에 아담한 하얀 건물이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저게 책의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점 이용객이라기보다는 숙박객이었기에 제일 먼저 게스트 하우스로 안내받았다. 2층 게스트 하우스 곳곳에도 배치되어있는 책 선반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분위기도 좋았다.
짐을 풀고 2만보 이상 걸은 그날의 피로를 따뜻한 샤워로 풀고 1층 책의 정원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조용한 시골 아름다운 건물에서 책을 읽다니.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책의 정원은 자유롭게 들어와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여서 그런지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특히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기도 힘든 이런 외진 곳에 이렇게 좋은 공간이 있다니 그저 이 공간을 마련한 사장님이 한없이 고맙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책장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 내게 사장님은 커피 한잔 하시겠냐고 권하시고, 바로 원두를 갈아서 향긋한 커피를 내려주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사장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장님의 책의 대한 애정, 생각 등을 알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 작은 공간의 천장에서 바닥까지, 4면이 책으로 빼곡히 차 있는 곳에 있자니, 원두커피의 향과 종이향이 묘하게 후각을 자극했다. 아, 나 정말 행복한 곳에 있구나. 사방이 다 책이고, 코에는 원두커피 향이 머물다니. 비로소 왜 이 서점의 이름의 '책의 정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아쉽게도 내가 간 이날이 바게트 호텔의 남해 마지막 영업일이라고 했다. 그곳에 각 독립서점들이 모여서 판매전을 가지며 작은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사장님은 구하기 힘든 책들과 평소 가지고 싶었던 책들을 많이 사 오셨다면서 행복하게 웃으며 나에게 그 책을 하나하나 보여주시며 자랑하였다.
나는 문득 이제 이 책들도 책의 정원의 돌로, 나무로, 공기로 존재하게 되는 배치를 갖게 되겠구나. 다음에 남해 온다면 이 책들을 보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였다.
남해엔 바다가 있고, 산과 논이 있고, 그리고 책의 정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