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이 시샘에게
내 남편 이야기 나야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딱히 흥미롭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누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대화의 자리에서 남편과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는 않는 편이야. 남편 이야기 말고도 할 말은 늘 많으니까. 너와 대화할 때도 그런 조심스러움은 늘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또 막상 내가 내 결혼 생활에 대해 너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 있었나 생각해 보니, 얼추 다 한 것 같네. 멋쩍어져서 혼자 좀 웃었어.
그 말인즉슨 너가 나에게 참 꾸준하고 다정하게 물어봐줬다는 뜻인 거 같아. 이번에도 이렇게 물어봐주어 고마워.
어느 덧 예성이와 결혼한 지가 햇수로 8년차더라. 예성이 만 23살, 내가 만 25살 때 결혼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뭣 모르고 한 결혼이 맞아. 그때도 우리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왠지 무슨 일이 다가오든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어. 우린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안정이 보장된 일자리도 없었지만 사랑만은 확실한 젊은이들이었지(꼭 할머니라도 된 듯 회고하고 있네).
콩깍지 씌인 풋내기들의 사랑놀이로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에 결혼한다는 우리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누가 말린다고 안 했을 거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지금 생각해도 모두가(적어도 내게 들려오는 우려와 비난은 없었거든) 우릴 응원해줬던 건 새삼 신기해. 부모님도 그랬고, 너도 그렇고.
생각해보면, 예성이에 관해서는 넌 왠지 관대했달까.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뒤였나. 동아리 엠티에서 불 다 끄고 자는 시간에, 너에게 속닥속닥 예성이의 존재를 알렸었어. 졸업필수 요건이었던 봉사활동 시간 채우느라 방학 때 억지로 간 농촌 봉사활동에서 예성이라는 남자애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나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계속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도 그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조금 신경쓰였다는 식으로 너에게 얘기했지. 모두가 노동에 지쳐있을 때 조용히 물을 떠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사람들이 귀찮아서 미루는 일들을 스스로 먼저 하고 있고, 대화를 나눠보니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그렇게 이런저런 면들이 되게 괜찮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고 말했어. 하지만! 연하는 남자로 보이지 않는 편인데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리고, 아직 군대도 안 다녀왔고, 남자로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는 식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털어 놓았던 거 같아.
그때 너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나? 예성이를 직접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좋다. 진짜 사람 좋다.”를 연발했어. 그때 나도 예성이를 안지 한 달 밖에 안 됐을 때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정확하게 안 올 때였는데, 넌 좋은 사람 같다며 망설이는 날 토닥였지. 네가 사람에 대한 직감이 소름돋도록 정확할 때가 많아서, 나도 네 말을 흘려 들을 수가 없었던 거 같아. 시샘이 좋은 사람인것 같다는 거 보면 좋은 사람인가 보다, 하고 또 귀 얇은 나는 홀랑 넘어갔는지 몰라.
다행히 예성이를 안 지 11년째인 지금도 그가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하더라. 처음에는 그냥 속 좋은 남동생 같았는데, 대화를 나눌 수록 내가 배울 게 많은 건강한 사람이구나 느껴졌어. 예민함과 불안함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에게는 없는 잔잔한 안정감이 그에게 있었지. 그렇게 4년 정도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도, 너는 또 좋다좋다 했어. 사실 너가 그렇게 모든 거에 좋다좋다 하는 편은 아니잖아. 내가 하는 생각과 결정에도 날 아끼는 친구로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주는 편이었으니까. 근데 유독 예성이에게는 어쩜 그리 관대했는지. 어쨌든 너의 지지에 나는 좀 더 안심하며 결혼을 결정했던 거 같아.
25살의 나는 이 사람과 하는 결혼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어. 노부부과 함께 손 잡고 걸어가는 모습, 주름진 얼굴을 사랑스럽게 보듬는 모습, 이런 걸 보면 나도 그와 이토록 사랑스럽게 늙어갈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긴 세월을 뚫고 서로를 영원히 사랑해낼 자신이 넘쳤어. 어떤 시기는 그 자신감을 원동력 삼아 보낸 것 같아.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예성이와 함께 각양각색의 경험을 겪을수록 빵빵하게 차 있던 자신감은 풍선 바람 빠지듯 조금씩 힘이 빠지고 말더라.
아쉽게도,
우리라고 별반 다르진 않았지.
누가 그러더라. 결혼 후 가장 좋을 땐 딱 신혼여행까지라고.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는데 왜 그런 말이 도는지는 알겠어. 결혼 후 참 많은 일이 있었지.
시가가 원하는 며느리의 모습으로 살 수가 없어 메말라가도록 흘렸던 눈물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연고 없는 도시인 충주와 김천에 거처를 옮기며 느꼈던 혼란스러움과 외로움, 임신 후 유독 심했던 입덧과 26시간의 진통을 내 몸으로 겪으며 분명 우리의 아이를 낳는데 철저히 나 혼자 이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억울함, 나는 육아를 하며 하고 싶은 일을 맘처럼 못하고 멈춰 있는데 남편은 삶의 큰 변화 없이 차근차근 성장해나가는 것에 대한 부러움, 육아의 고단함으로 지쳐 서로 날을 세우던 날들의 긴장감, 대화할 시간과 힘도 없어 룸메이트처럼 지내다 간신히 마주 앉았을 때 이전처럼 친밀하게 대화할 수 없던 낯선 어색함, 이제는 우리 사이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느낀 서늘한 슬픔.
듣도 보도 못한 특별한 장애물들이 아니라
여느 결혼한 사람들의 흔한 가십거리에 등장하는 뻔한 이유들로
우리 역시 어김없이 깊게 아프곤 했어.
이유는 식상할지언정 나로서 느끼는 나의 고통은 전부 다 생경했고, 매번 이 고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것 같아. 결혼 전에는 내게 이런 일이 안 생기거나, 생기더라도 거뜬히 넘길 줄 알았으나 전혀 거뜬하지가 않았어. 이 세상에 자주 등장하는 뻔한 서사의 고통이라고 해서 그 고통의 세기가 덜한 것도 아니었고. 우리는 다를 줄 알았는데 말야.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고통들이 내 삶에 명확한 흔적을 남겼어. 결혼은 생각보다 무거운 약속이었지. 하지만 혹시 그 고통을 결혼 전에 미리 알았더라도, 난 이 결혼을 선택했을 같긴 해. 이건 수습하려는 말은 아니고, 진실이야. 이 결혼이 야기한 고통을 이야기할 때도 이 결혼에 대한 소중함은 선명히 존재해. 그러니까 결혼에 대한 소회라는 게 단순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 거 같아.
결혼 생활에 대해 좋다고 말하는 중에도그 좋음에 반하는 괴로움의 시간이 명백히 있고, 괴로웠던 시간을 말하는 중에도 더 없이 귀중한 면이 생각나는, 그런 복합적인 부분이 있지. 누군가 자기는 남편 흉도 하루 종일 볼 수 있고, 남편 칭찬도 하루 종일 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 하지만 사람들이 주로 흉을 궁금해하니 괜히 더 흉을 보는 것 뿐이라고. 나도 왠지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아.
네가 멍석을 깔아주었으니 간만에 결혼의 좋은 점을 읊어볼까 해. 오랜 장거리 연애와 주말부부로 서로의 빈자리가 컸다가 같이 살게되면서 느끼게 된 행복감과 안정감은 8년째 유지되고 있어. 내 평생 꿈이었던 장기 유럽 여행을 남편과 함께 실행에 옮겼을 때는 혼자라면 못했을 버킷 리스트를 남편 덕에 용기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 이제는 우리 둘의 아이가 세상에 존재하고, 그 아이를 통해 얻는 행복은 내가 지금껏 경험했던 그 어떤 행복보다 뚜렷해. 남편은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러니까 아주 부끄러운 바닥까지 보일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주는 안전함은 나를 이전보다 더 건강하게 만들어줬어.
그러니까 나 역시도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남편과 종종 싸우고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어.
물론 이제는 손을 맞잡고 있는 노부부를 보면 이전처럼 자신만만하지는 못해. 우리도 저렇게 늙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과 존경이 자신감이 증발한 자리를 대신 채우지.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더라. 이제는 그냥 저절로 되는 시절은 끝났나봐.
아이를 낳고 남편과 내가 서로를 위한 에너지와 시간을 들일 여유가 없었던 요즘, 우리가 기로 위에 놓여있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어. 남편과 그냥 같이 생활하는 룸메이트로 살아갈 지, 굳이 또 노력을 하며 사랑의 순간들을 만들어야 할지 선택하는 기로. 룸메이트 같은 생활을 지속하면 몸은 편할 거 같긴 했어. 하지만 결국 우린 노력을 하기로 선택했어. 마음은 그쪽이 더 편했거든.
내 결혼 청첩장에 이런 문구를 썼었지.
“더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결혼이 아니라,
더 사랑하기 위해 하는 결혼입니다.”
너랑 구원이가 내 결혼식에서 축가를 해줬을 때 이 부분을 가사로 써서 불러줬었잖아. 뭣도 모를 때 내가 참 말은 번지르하게 잘했지. 이 문구를 쓸 때에는 진심을 담긴 했지만, 이 말의 진짜 무게를 잘 몰랐어. 이제서야 이 말을 내 삶에서 생생히 실현할 때가 온 거 같아. 더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할 때.
일단 매일 밤 함께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정했어. 대화 주제는 “오늘 하루의 감사 세 가지”. 그렇게 감사한 것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 다음에는 각자의 시간을 편안히 보내기로 했고. 목요일 점심은 둘이 점심 데이트 하는 날로 정했어. 남편 회사 점심시간에 맞춘 1시간 짜리 데이트지만, 이렇게라도 아이 없이 둘 만의 시간을 지켜야겠다 싶어서. 주말에는 일상적인 것을 벗어나 추억이 될만한 무언가를 하기로 했어.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권태감이 있었으니까. 1년에 한 번은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둘만의 여행을 1박 2일로라도 갖기로도 했었는데, 그건 과연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야. 단골 갈등 소재가 되는 ‘가사노동’도 우리에게 맞는 역할 분담을 여전히 찾아가고 있어. 아이 분리수면을 시도하다가 결국 남편이 아이와, 내가 안방에서 혼자 자던 상황은 결국 아이 분리수면을 포기하고 모두가 함께 자는 쪽으로 바꾸었고.
이 모든 게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거지 잘하고 있다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갈팡질팡하는 중에도 모든 시도와 실패들이 사랑하려는 노력 안에 있다고 생각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남편이 그걸 같이 하려고 해?"였어. 막상 그런 질문을 들으니 내가 남편을 억지로 끌고 가고 있는 건가 싶어 아차 싶었지. 그래서 예성에게 물었어. 이렇게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하는 노력이 너도 정말 원하는 것이냐고 말야. 그러자 예성이는 이렇게 답했어. 본인이 정말 원한다고. 자신은 관계 중심적인 사람이라, 어떤 관계든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바로잡고 싶은데 그게 아내와의 관계인만큼 더욱 애쓰고 싶다고 이야기했어. 이런 건 잘 맞아 다행이야.
한창 부부로서의 고민이 많을 때, 종종 들춰봤던 그림책이 있어. ≪인생은 지금≫이라는 그림책이야.
여기에 사랑스런 노부부가 나와. 서로 성향이 다른 할아버지와 할머니. 남편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당장이라도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소년같은 사람이야. 반면 아내는 현실적인 성향으로 무언가 하고 싶은 것보다 그걸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더 쉽게 떠오르는 사람이지. 낯설지 않은 모습이야. 우리 집에서는 내가 주로 뭘 하자는 쪽이고, 남편이 그런 날 말리는 편이거든.
책 속의 할아버지가 계속 할머니에게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제안하는데 할머니는 계속 냉소적으로 그 제안을 거절하거나, 다음으로 미뤄. 둘이 참 다르다는게 느껴지지. 그렇게 텍스트에서는 계속 남편과 아내의 투닥거림이 나와. 반면 그림으로는 둘이 알콩달콩한 장면들이 펼쳐져. 아이처럼 의자와 이불로 만든 텐트 안에 같이 들어가 있거나, 서로 꼭 안고 있거나,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며 키득 거리는 장면. 내가 아까 말한 결혼의 복합적인 면이 잘 담긴 것 같아. 골치 아픈 것도, 사랑스러운 것도 잔뜩 섞여있는 결혼 생활.
그러다 그림책 막바지 장면에서 “인생은 지금이라니까!”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가 마음을 서서히 바꿔. 현실적인 성향으로 낭만적인 남편의 제안을 줄곧 거부했던 할머니가 막상 여행을 떠나서는 본인이 오토바이 앞자리를 꿰차고 신나게 여행을 즐기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야. 난 이 장면이 이 참 통쾌하고 기분 좋더라.
이 노부부를 보면서 생각했어. 어떤 상황이나 서로의 차이나 무엇이 이유건 건에 부부사이의 투닥 거림은 자연스러운 거라는 것. 중요한 건 그럼에도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알아가며 함께하려는 노력은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꺼내고 꺼낸 마음을 받아주려는 사랑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나와 예성도 이 그림책 속 노부부처럼 끝까지 사랑해내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기더라.
우리가 서로 더 노력할 힘을 주는 확실한 무기도 하나 있어. 그날을 기억은 제법 선명해. 예성이가 건강검진을 하는 날이었지. 보통 예성이가 건강검진을 하는 날은 일종의 휴가같은 날이야. 오전에 건강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면 오후에는 오랜만에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었지. 설레는 마음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예성이에게 전화가 왔어.
"다정아. 나 머리에 종양이 있데."
그 말을 듣자마자 잠깐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내가 보는 시야가 노랗게 되었지. 하늘이 노래진다는 식상한 표현이 정말 맞는 말이구나, 수많은 사람들의 켜켜이 쌓인 아찔함이 참 적절한 표현을 만들어냈구나 생각했어. 예성이는 자기 머릿 속 종양의 존재를 알리며 헛웃음을 쳤어.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도 이게 정말 실제인가 싶은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어.
"아, 진짜?"
나도 내가 살면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기에, 누가 "나 오늘 아침에 김치볶음밥 먹었어."라고 한 말에 "아, 진짜?"하고 답하듯 답해버렸어. 그리고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기로 하고, 우선 집앞에서 보기로 했지.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던 것 같아.
너도 아는 결론이지만 다시 말하자면, ‘뇌실막밑세포종’이라는 종양이었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꾸준히 검사를 받고 있어. 실비 보험도 없는 예성이의 병원비 폭탄을 각오했다가, 마침 이게 희귀병이라 나라에서 90프로나 지원해줬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랄까.
최악의 상상을 하며 눈물로 지새운 밤들이 있지만, 다행히 종양의 위치나 커지는 속도가 공격적이지 않아서 평생 계속 추적 관찰하며 지켜봐야 하는 것이었어. 위험한 상황이 되면 약물치료나 수술의 방법도 있고.
연애할 때부터 예성이에게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너가 먼저 죽으면 안 돼. 내가 먼저 하늘 나라 갈거야."라는 말을 종종 하고는 했었어. 이젠 내게 너무도 당연한 존재인 예성이가 내 삶에서 사라지는 건 내 삶을 지탱하던 커다란 기둥 하나가 무너지는 것과 다름없게 느껴졌거든. 그래서 나의 죽음보다 예성이의 죽음이 더 두려운 일이었지. 그런데 뇌 속의 종양이라면 '예성이의 죽음'에 대한 상상을 더 구체적으로 하게 만들었어. 그 뒤로는 종종 혼자 잠든 예성이 옆에 있다가 예성이의 죽음이 악몽처럼 떠올라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삼킬 때가 있어. 드라마나 영화에서 과부인 여주인공이 나와도 내 눈물 버튼이 속절없이 눌려.
이제 예성이 머리 속 종양의 존재를 안 지도 3년이 지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전처럼 아찔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뇌종양 덕에 종종 생각해.
우리의 시간에도 끝이 있다는 것.
그건 뇌종양이 있든 없든 반드시 일어날 미래긴 하지.
다만 종양을 떠올리면 우리가 함께하는 지금이 한층 더 소중해져.
그러니 지금의 행복을 유보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기억하게 돼.
내가 이야기한 그림책의 제목처럼 ‘인생은 지금’이지. 그렇게 예성이와 함께보내는 지금에 기끼어 사랑할 노력을 더하며 보내고 싶은 의지가 계속 생기는 거 같아. 이 모든 걸 까먹고 서로를 당연히 여기며 감사하지 못하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힘이 나지.
이러나저러나 지금의 인생을 예성이와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해. 꼴보기 싫게 얄미울 때도 있고, 한없이 무너져 울 일도 만들지만 그럼에도 너무도 소중한 나의 사람이지. 그와의 지금을 사랑하며 보내기 위해, 오늘도 분주한 일상 중에 같이 눈 마주하며 대화할 시간을 내야겠어. ≪인생은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 처럼 조만간 여행도 가야지.
그렇게 사랑하는 노력을 지속해야겠다는 다짐을 너에게 편지를 쓰며 다시 한다.
편지 속,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인생은 지금≫
다비드 칼리(글), 세실리아 페리(그림), 정원정,박서영(옮긴이), 오후의소묘(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