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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 Oct 17. 2023

그럼에도, 꿈꾸는 것은 사랑이야

시샘이 다정에게

예전에《인생은 지금》책으로 그림책테라피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었어. 모든 것을 ‘나중에 하자’는 할머니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인생은 지금’이라며 할머니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말하는 할아버지. 아름다운 그림을 배경으로 서로 나누는 대화가 꽤나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느껴졌어. 그래서 그림책 낭독을 할 때, 내가 느낀 대로 알콩달콩하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읽었지. 그런데 책을 다 읽었을 때 한 분이 그러는 거야. “선생님은 책을 너무 착하게 읽어요. 부부는 그렇게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재미있지? 옆에서 보기엔 낭만적이기만 하던 장면이 현실을 겪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걸 알았어. 

그러고 보니 그림책 속 부부의 모습이 딱 우리 엄마, 아빠를 닮았어. 우리 아빠는 여행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고, 엄마는 그에 반해 현실적이고 새로운 일이나 떠나는 것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거든. 어쩜 저렇게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었을까 싶을 정도야. 예전에 두 분이 여행을 갈 때마다 매번 겪는 갈등이 있었어. 엄마는 굳이 관심 없는 여행 가서 돈도 많이 쓰고 피곤한 게 싫고, 아빠는 가끔 기분 내려는 건데 즐거워하지 않는 엄마한테 서운해서. 그런데 요즘 우리 엄마아빠의 여행의 모양이 좀 변했어. 아빠는 엄마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가깝고 꼭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예쁜 풍경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고, 엄마는 아빠와 떠나서 함께 하는 시간을 그냥 즐기기로 마음을 먹으신 것 같거든. 


네가 말한 대로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에도 노력은 필요한가 봐.
그리고 그 노력은 우리 엄마 아빠처럼 결혼한 지가 30년이 지나도 계속 필요한 것 같아.


그런데 엄마가 얼마 전에 아빠랑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하시는 거야. 요즘 일이 바빠 일만 하고 집에 와서 쉬는 것만 하니, 삶이 반복되기만 하는 것 같다면서. 엄마가 여행 가고 싶다는 소리를 하다니. ‘아빠와 30년을 사니, 엄마도 이런 말이 나오는구나’싶어 신기했어. 이런 걸 보면, 분명 누군가를 위해 내가 편한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지만, 또 반대로는 익숙하기만 한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건 사랑하기에, 그리고 나의 것을 비웠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미혼의 서러움.


네 말대로 분명 힘들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너희 부부를 볼 때면 부러울 때가 있어. 요즘에야 비혼도 많다고 하지만, 난 한 번도 비혼을 원한 적이 없으니까(!) 나는 늘 결혼을 하고 싶었어서 내가 결혼을 일찍 할 줄 알았어. 내 삶에 있어서는 일로 성취를 이루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졌거든. 그런데 참 신기해. 그토록 결혼을 바라던 나는 아직까지 혼자고, 또 막상 커리어와 비전이 중요했던 너는 지금 가정을 이루고 벌써 아이의 엄마까지 되다니 말이야. 인생은 진짜 알 수 없는 것 같아.

삶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때로는 실패처럼 느껴져서, 자책하게 될 때가 있어. 난 연애도 결혼도 하고 싶은데, 왜 잘 안 될까, 내가 매력이 없나? 내가 만남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나? 하면서 말이야. 어쩔 땐 (조금 미신적이지만) 연애가 안 되는 게 좋은 짝을 만날 운을 친구운으로 다 써버려서는 아닐까 싶을 때도 있어. 생각처럼 연애가 되지 않고, 결혼이 늦어져도 조급하지 않고 크게 외롭지 않았던 건 너를 포함해서 좋은 친구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거든. 너네가 나의 모든 일상을 알고, 내 마음도 세심히 알아주고, 언제든 함께 깊은 대화와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꼭 연애를 하지 않아도 삶이 외롭지 않고 꽤나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 흔히 결혼하면 친구 사이가 변한다고 하는데, 네가 꽤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을 하고서도 우리 사이는 견고하게 유지됐잖아. 달라진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게 소홀해지지 않으려 노력을 많이 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내가 괜찮았던 게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내가 어른스러웠던 게 아니라 아직 결혼하지 않은 다른 친구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싶기도 해. 네가 결혼해서 온전히 시간을 못 보내도 다른 친구들이 내 일상 가까이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구원이도 2년 전 결혼을 하고, 작년에 지은이까지 결혼을 하고, 특히나 셋 다 다른 지역과 나라로 멀리 떨어지고 나니 새삼 나도 결혼한 친구들의 빈자리가 느껴졌어.

내 인생 전반에서 우정은 늘 너무나도 중요했는데, 막상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나니 우정은 부부의 사랑에 비해 별 거 아닌 것 같았달까. 내가 너네를 대하는 우선순위에는 변동이 없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우선순위에서 다 한 계단씩 강등이 된 것 같았어. 가정을 이루면 배우자가 인생에 가장 중요해 진다는 게 당연하고 이해가 되면서도(나 역시도 그럴 거니까) 묘한 박탈감은 어쩔 수가 없었어. 너네에게는 매일의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내가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너네들이 필요하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이게 너네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남편의 차이처럼 느껴져서 새삼 결혼을 못한 게 크게 느껴지더라고. 사실 너네는 늘 나를 변함없이 소중하게 여겨줬던 터라 내가 느낀 감정이 자격지심인 걸 알아.

난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너네 셋이 모두 결혼을 하고 떠나니 나도 결국 치사한 밑바닥이 드러나네.


그런데 만나는 사람도 없이, 너네들과는 모두 멀어진 시간 속에서 오롯하게 혼자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각지 않게 배우는 게 있어. 내가 느끼던 불안과 외로움을 스스로 채워가는 법을 말이야.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그간 순간순간 너네가 채워주는 위로와 대화로 무마하며 살아왔던 것들.

예전엔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음이 불안하면 하나하나 너네랑 얘기하면서 해소하려고 했었다면, 요즘엔 감정을 바로 얘기하기보다는 그냥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모든 감정을 말하고, 알아내고, 해결하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거든. 감정과 거리를 두기만 해도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이 있더라고. 요즘 내가 관계에서 외로움에 대해서도 조금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 너네와의 관계의 멀어짐이 서로를 상처 주는 행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변화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보니, 여기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투쟁할 것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이 역시 자연스러운 것 같더라고. 인생의 일부는 언제든 외로울 수 있다는 게 이제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이런 과정을 겪으니, 이제는 불안과 외로움이 예전처럼 무섭거나 두렵지가 않아.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빨리 결혼하고 싶었던 이유도 내 안에 있는 불안과 외로움을 스스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던 것 같아. 그래서 그걸 누구든 내 옆에서 나를 도와주고 해결해 줬으면 좋겠던 거지. 


분명 누군가를 만나서 배우고 채워지는 것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홀로의 시간 속에서

드디어 내 몫의 내 인생의 책임감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을 들어



어긋난 관계들을 통해 배운 것.


당장엔  속상해도 지나고 나면 꼭 필요했던 시간이 있잖아. 너네들이 모두 결혼한 후에야 내 안에 결핍과 외로움을 채우는 법을 배웠던 것처럼. 나한테는 20대 때 중요한 관계들과 멀어졌던 시간이 그랬어.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 나와 닮아 늘 마음이 쓰였던 친구, 대학생 때 만나 내 삶을 바꿔주었던 제일 친한 친구, 그리고 그때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까지. 대학교 졸업 후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관계와 멀어지고 헤어지는 시간을 보냈잖아. 이 때도 분명 많이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니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던 시기였어.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싫어했던 말이 ‘그럴 수도 있지’였다는 걸 알지? 분명 내 생각에는 ‘그럴 수 없는 일’들이 있는데, “그럴 수도 있지”하며 모든 일을 이해하며 넘어가는 사람들이, 자기들만 좋은 사람인 척 중요한 것을 회피하고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거든. 웃긴 건 그런 사람들을 싫어했으면서 내가 만난 사람이나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모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야. 어떤 상황이든, 어떤 성격이든, 어떤 사람이든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은 상대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잘 받아주거든. 나는 늘 그런 사람들 품에서 넉넉하게 이해를 받아왔어. 그러다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제일 친한 친구와 멀어질 때쯤, 두 사람이 꼭 맞춘 것처럼 나에게 “너는 왜 꼭 그렇게 생각해?”라는 말을 했었어.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하니까 오래도록 그 말을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 그러고 보면 나는 늘 삶에 나만의 기준들이 있었던 것 같아. ‘좋아하면 연락은 이 정도는 해야 해. 표현은 이렇게 해야 해. 서로 문제가 있을 때는 이렇게 푸는 게 옳아.’ 이렇게. 아무리 유하게 말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식으로 말했어도 늘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 있었기에 상대방들이 불편할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었어. 

그 시간을 통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를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꼭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 여러 명과 관계가 깨어진 후에야 깨달았으니, 애지간해서는 굽히지 않았을 고집이었을 것 같아. 내가 그걸 모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꽤나 대하기 힘든 연인이자, 아내와 엄마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 와 생각하면 관계가 어긋났던 시기를 통해 내 한계를 발견한 게, 나는 앞으로의 만남과 관계를 통해 내가 꼭 겪었어야 했던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해. 요즘엔 종종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내가 쓰고 있더라고. 꼭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저 사람 나름의 생각이 있었겠지,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게 돼. 내 기준들이 다듬어지고, 말과 행동도 조금 완만해지고, 관계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잘 알게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이렇게 좋은 변화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막상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


관계에 무던해지는 내 모습이
잘 자란 성숙 같다가도
덜 아문 상처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


얼마 전 친구와 가볍게 다툰 일이 있었어. 친구가 사는 나라로 내 친한 지인이 여행을 가는 것 때문에 도움을 구하다가 가볍게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었어. 너도 알다시피 그 친구와는 싸웠던 일이 한 손도 다 접지 못할 만큼, 낯선 일이잖아. 흥분을 가라앉히고 왜 다투게 되었나 생각해 보니까, 꼭 누군가가 틀리거나 나빴다기보다는 각자의 기준과 생각이 달라서 생긴 일이다 싶더라고. 나와 비슷하게 깨달은 친구는 다음 날 나한테 전화를 했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마음이 풀려서 서로가 가졌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잘 마무리지었어. 그런데 이 일을 겪으면서 놀랐던 게, 관계를 푸는 것보다 빨리 단념해 버리는 내 마음을 본 거였어. 그다지 커다란 다툼도 아니었고, 서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작게 일어난 에피소드인 걸 알면서도 작은 갈등에도 내가 쉽게 쪼그라들더라고. 예전의 나였으면 어떻게든 더 열심히 친구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내가 먼저 연락하고 풀려고 애를 썼을 것 같은데, 그런 행동을 하기 전에 ‘그래 이 관계마저도 멀어질 수 있어’하고 단념하는 마음을 느꼈어. 물론 이런 마음이 옳지 않고, 내 진심이 아닌 걸 알기에 빨리 되돌아섰지만.


가까운 관계에 있어서 확 움츠러 드는 모습을 볼 때면 이게 이전에 겪었던 관계의 상처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애써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도리어 내가 애썼던 일이 관계를 더 안 좋게 만들었다는 기억이, 나를 작을 갈등에도 주눅 들게 만들고 관계를 꽉 붙들지 못하게 만드는 거지.

어쩌면 내가 반성한 시간들이 자학적이었던 걸까? 그때 떠난 사람들을 바꿀 순 없으니, 내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했던 것 같아. ‘이런 게 문제였구나,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많이 고민하고 바뀌려고 노력했거든.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반성을 핑계로 너무 많이 스스로를 혼내고 괴롭혔던 것 같아.


그 시간이 힘들었어서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것보다는 상처받지 않는 선택을 습관처럼 해. 

그러니까, 참 상처 없이 성숙해진다는 게 이렇게 힘들어.


그럼에도 꿈꾸는 것은 사랑이야.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책의 주인공 '나다'는 어느 날 갑자기 등에 날개가 생긴 남자야. 사람인데 날개가 돋아나다니 이상하잖아. 그 이후부터 이 남자는 날개가 생긴 이유를 찾기 위해 병원에 가지만 의사 선생님도 그 이유를 몰랐고, 친구와 엄마에게도 묻지만 의미 있는 답을 듣진 못했지. 철물점 아저씨나 사장님은 날개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필요 없다며 잘라내거나 뜯어버리려고 했어. 그런데 길을 지나다 만난 넥타이 파는 아저씨가 처음으로 남자의 날개를 보며 멋있다고 얘기를 해주지. 그 말을 듣고 남자는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날개에 대해서 처음으로 멋지다는 생각을 해.

나는 그 날개가 사람들 저마다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시간의 흔적 같다고 느껴졌어.

누군가가 보기에는 삶에 불필요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상처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 시간은 겪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멋진 훈장 같을 수도 있는 거지.

내가 보낸 시간도 내 삶에 날개를 만들어준 건 같아. 나 중심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내 안의 불안과 외로움을 관계를 통해서만 해결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었어. 아직 좋게만 해석할 수 없는 모습들도 있지만, 그것도 언젠가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림책에서 마지막에 남자는 자기처럼 날개를 가진 여자를 만나게 돼. 그 여자를 보자마자 남자는 한눈에 알아보고 사랑에 빠져. 그리고 책은 ‘그래요. 그런 이유였던 거예요’라는 문장으로 끝나. 상대를 통해서 자신에게 생긴 날개의 이유를 드디어 깨닫게 되는 거지. ‘저 사람을 만나고, 알아보기 위해 내가 이 시간을 보냈구나!’하면서.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을 만나는 게 날개가 생긴 이유일 수 있겠어.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이 이유가 되잖아. 거기엔 논리나 정답 같은 건 필요 없는 거지. 나는 어쩌면 여전히 그런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가진 상처이고 성숙인 내 날개를 단단히 내 등에 지고 내 모양대로 살아가면서, 내 날개를 알아봐 줄 사람을 찾고 있어. 또 나 역시도 누군가의 날개를 발견해주고 싶고.

이 그림책을 보며 깨달았어.
나는 여전히 사랑을 꿈꾸고 있다는 걸.


언젠가 그림책 모임에 온 분이 《백만 번 산 고양이》 책을 가지고 온 적이 있었어.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하시면서 이 책에 대해 소개하길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프러포즈할 때 주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는 거야. 이렇게 그림책을 소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인상 깊었어.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프러포즈할 때 어떤 그림책을 주지?’하고 고민했었거든.  오늘 너에게 편지를 쓰며 생각했어. 나는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책을 선물할 거야. 내 날개를 알아봐 준 그 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과, 사랑하는 말 대신 말이야.




편지 속, 어른을 위한 그림책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다비드 칼리(글), 모니카 바렌고(그림), 유영미(옮긴이), 책빛(출판사)

≪백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글/그림), 김난주(옮긴이), 비룡(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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