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프리랜서의 작가들의 꿈을 위하여
‘유퀴즈 온더 블럭’이라는 티비 프로를 보는데 유재석님이 그러시더라. ‘나이가 좀 더 들면 카페를 차려서 지인들을 모아 수다를 떨고 싶다’고. 세상에, 대단한 유느님도 나랑 같은 생각이라니! 비록 언제 실현될 지는 몰라도, 지인들 불러 모아 수다도 떨고 싶고, 가게 문 닫고 와인 파티도 열고 아는 음악가들 모아서 소규모 살롱 콘서트도 열고 싶다는 게 내 오랜 꿈이었다. 눈치 안 보고 눌러 앉아서 음악도 내 마음대로 조절하며 내가 꾸민 나만의 공간 한 켠에서 돈 안되는 글을 마음껏 써제끼는 상상. 모든 작가들이 갖는 꿈 아닐까. 물론 잘 되던 카페도 문을 닫는 이 코로나 시국에 카페 자영업자분들이 들으면 ‘무슨 그런 낭만적인 소리!’ 하며 펄쩍 뛰시겠지. 꿈 속의 이야기라며 회초리질 하실 지도. 카페 운영이 얼마나 힘든 줄도 모르면서, 그렇게 한가로이 음료 뽑아먹고 글이나 쓰는 사장이 어디 있느냐, 폐업하는 카페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 낭만 속에서 허우적대느냐며 말이다. 허나 정해진 사무실 없이 발 닿는 어디에서건 좌판을 펴고 자기만의 업무를 해내야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두 시간 정도 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눈치도 보이고 커피를 한잔 더 사 먹자니 속은 쓰린데다 커피 아닌 걸 시키려니 무슨 무슨 크림을 얹은 딸기 바닐라 어쩌고의 긴 이름을 가진 프라푸치노 한 잔에 5천원이 넘는 가격이라 이럴거면 저녁에 참치 김밥을 사먹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경험 말이다. 거기에서 한 술 더 뜨게 되면 ‘그럴바에 돈 더 벌어 눈칫밥 먹지 말고 예쁜 몇 평 짜리 내 카페 차리고 싶다’는 달콤한 꿈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 와 동급의 막연한 꿈이었을진데 왜 뜬금 없이 급발진해 카페사장이라는 주제로 글까지 쓰게 된 것이냐 하면, 작년 5월부터 급작스레 찾아온 급성 폐렴과 함께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예기치 않은 고열에 시달리며 병상에 누워있던 동안, 난 삶도 죽음도 한 끗 차이며 성공과 실패의 외줄타기는 내가 중심을 잘 잡는다고 해서 무조건 능사가 아님을 처음으로 처절하게 깨달았다. 창작의 고통과 어렵기만 했던 인간관계로 얽혔던 극도의 스트레스가 결국 만만하고 미천한 내 몸뚱아리에 병으로 나타난 것일 터인데, 이미 그 한참 전부터 수도 없이 방황했을 가장 중요한 내 마음을 단 일분 일초도 들여다 보지 않았다는 죄책감은 나를 점점 더 작게 만들었다. 환자복을 입고 새하얀 병실에 눕고 나서야, 마치 호롱불 하나 없는 아득한 밤길을 눈 가리고 걷는 사람처럼 막막한 미래에 대해 처음으로 깊은 사유를 하게 된 거다. 내 미래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다른이의 작품만을 위해 너무 정신 없이 뛰느라, 가장 생기있고 가능성이 가득했던 30대 초반이 송두리째 빼앗긴건 아닐까 하는, 꽤나 억울하고 서글픈 심정이 내 정신을 지배했다. 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봇물처럼 흘러 넘쳐버린 시간은 주워 담을 수 없었고, ‘좀 더 열심히 해볼걸’ 하는 후회를 하기에 내 나이는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몇 달 뒤면 벌써 서른 다섯. 주변 친구들의 처지와 나를 비교하기에 이르른 나는, 이러다간 나를 지금껏 일으켜 세워줬던 고마운 사람들에게조차 ‘그저 덮어놓고 버티라고 응원만 했던 네 탓’이라며 알 수 없는 죄목을 붙여 끝도 없이 미워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앞이 아찔해졌다. 긴 잠에서 깬 나는 단 1초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메인 작가님께 전화를 걸곤 다짜고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작업실 그만두고 싶어요. 더이상은 못하겠어요...”
그렇게 하루아침에 4년을 꼬박 다녔던 드라마 작업실을 그만 뒀다. 아니, 때려 치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테다.
글을 쓰는 동안 철저히 분리되지 않았던 내 사생활과 일들의 혼재가 너무 버거웠다. 처음엔 그저 홀가분한 마음 뿐이었다. 그냥 한 두달만 쉬다가 바로 다른 드라마 작업실을 들어가거나 바로 메이저 교양 프로그램이나 예능프로에 지원해 정신없이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일단 너무 달려왔으니 몇 개월 정도 요양을 하며 쉬자 싶어 내 습작도 끄적여 보고 알바 삼아 방송이나 책, 공연 원고를 받아 쓰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쉬고 또 쉬고 한량의 생활을 만끽하다 보니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이 놀라울 정도였다. 내 적성은 역시 놀고 먹고 쉬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무렵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당초 쉬기로 했던 한 두달을 훌쩍 넘은 육 개월째였다. 번쩍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드라마 작가가 꿈인 내가 이렇다하게 내놓을 만큼 완성해 놓은 작품도 없이 수입이 0으로 수렴하는 상태로 막연하게 진입하고 있다는 현실 자각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제 다시 어딘가로 취직해야겠다는 극도의 압박감. 한두 군데의 교양프로 제작사와 평소 알고 지내던 모 작가님의 작업실에 이력서를 넣었고 그 중 몇군데에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에 찾은 사막의 오아시스같던 합격 통보였다. ‘나 아직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잠시, 다시 출근을 해서 치열한 방송의 현장에 투입되어 타이트한 납품기일에 맞춘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뛰고 갑갑해져 오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합격 통보를 받은 곳에 연락했다. ‘못 가겠다’는 통보였다. 내 몸과 마음이 아직 덜 쉬었다고, 더 쉬고 싶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알바 자리도 구하기 힘든 이 코로나 시기에 난 집순이가 되어 화분을 키우고 요리를 하며 몇 달을 더 보냈다. 누구보다 행복한 찐 백수의 여정을 향해 나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내달리고 있었다.몸은 편안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이미 처음부터 자각하고 있던 내 진실을 내내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를 진짜 조급하게 만들었던 가장 큰 약점은, 너무 오랜 시간동안 성취의 경험이 없다는 점이었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뒤 가장 가슴 뛰었던 때는 일주일에 한 편, 무조건 세상에 내 이름 석 자 꼬리표를 단 프로그램이 방송으로 송출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설계하고 기획한 한 글자 한 글자가 출연자의 입으로 자막으로 그려지는 시간은 매주 잠을 아껴가며 꼬박 지새운 수많은 밤들을 보상받는 선물같은 순간들이었다. 허나 작가로의 더 큰 꿈을 그리며 드라마 작업실 보조작가로 들어가기로 한 선택은, 작품을 쓰고 편성을 기다리고 편성이 엎어지고 또다른 작품을 새로 창작해야하는 기약없는 기다림으로 나를 이끌었고, 조금만 더 하면 된다는 희망고문은 4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기회와 도전의 경험, 성취의 경험을 묶어두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에만 만족하며 지냈던 시간은 후회됐다. 그렇게 남은 현재의 내 자산은 ‘결혼도 안하고 지난 4년간 도대체 뭘 하고 살았냐’는 질문과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노트북 속에서만 살아 숨쉬는 부끄러운 습작들 뿐이었다. 자책과 반성을 반복하다 보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뭔가 큰 도약을 위한 작은 성취가 필요했다. 처음엔 글만이 이런 나를 구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가진 어떤 에너지를 축적하고 발산을 해야 무기력한 나를 다시 일으켜세울 것인가. 가야할 바를 모르고 지지부진하던 어느날 그닥 잘 써지지 않는 글을 쓴답시고 동네 카페를 전전하며 노트북으로 카톡이나 유머자료 서치로 시간낭비만 하고 있던 사이,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나 나중에 내일배움카드로 뭐 좀 배워보려고.’ 그게 뭐지?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순간 귀가 쫑긋 트였다. 바로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다. ‘내일배움카드...’ 고용노동부에서 국민들의 재취업이나 제2의 직업군 역량 발굴을 위해 교육기관과 연결해주고 교육비를 일부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http://hrd.go.kr). 그 때만 해도 ‘작가인 내가 글이나 써야지 뭘 배우겠어’ 라는 마음이었다. 별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던 그 순간, ‘바리스타 교육’이라는 문구가 내 두 눈을 사로잡았다.
그순간 마치 최면을 건 것처럼 내가 앉아있는 이 공간, 10평도 되지 않은 작은 카페가 매직 아이처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커피 콩을 가는 알바생, 진열대 안의 갓 구워진 빵과 먹음직스러운 디저트, 옆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하는 사람, 행복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까르르 웃음짓는 여학생들.... 나는 홀린듯 마우스를 움직여 내일배움카드 신청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 바리스타 교육기관에 수강신청을 했다. ‘나도 돼 보자, 언제가 될지 몰라도, 작가 겸 카페 사장.’
모든 행동력의 시작은 장비 구입과 관련 지식 습득부터 아닌가.
그렇게 난 근 4년 만에 처음으로 무기력을 벗어나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인생의 막이 다시 열리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