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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국적 소녀 Mar 03. 2023

자기만의 방

모든 독립된 개체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처음 읽었을 때를 기억한다.

무려 100년 전, 작가가 대학에서 강연을 했던 것을 엮은 수필집.

번역이 깔끔하지 않아서 한 장 한 장 읽는게 쉽지는 않았다.


여러 내용들을 차치하고라도 오랜 시간 내 마음에 남았던 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느날 변호사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숙모가 낙마 사고로 사망하여 매년 500파운드의 유산을 받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 후 울프는 생계를 위해 지속하던 신문 기고, 대필, 책읽어주기 등을 중단하고 창작에 집중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나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한 숙모님이 물려준 유산에서 나오는 몇 장의 종잇조각에 대한 대가로 사회는 닭고기와 커피, 침대와 숙소를 제공해 줍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백 년 정도 살고

각자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후략)"






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자신만의 공간에 집착해왔다.

하지만 부모님은 쉽사리 독립을 허락해 주시진 않으셨다.

취직을 하고 내가 내 월급으로 내 생계를 완전히 책임지게 된 후 몇 년이 지나고서야 나는 독립을 감행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몇 번을 다시 본가로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돈' 때문이었다.

월세를 아끼면 더 빨리 목돈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약해졌던 것이다.



미국에 와서 내가 가장 행복한 단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철저히 분리된 '자기만의 방'이 생겼다는 것을 꼽고 싶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분리되는 자기만의 방.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아니면 가끔씩 문득, 나만의 방을 마주할 때마다 행복감이 몰려온다.







그러나 나는 아직 생계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나만의 방을 지탱하고, 나만의 세계, 소우주, 사물을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

회사에서 주5일을 일하고, 부업을 하고, 소일거리를 해주는 등 여러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나를 온전히 ‘작가'라는 타이틀로만 설명할 수 있게될 날을 꿈꾼다.

내가 보는 것을 정확히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고,

나만의 방에서 나아가 주변과 연대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 그날을 생각한다.


현실에 치여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버지니아 울프로 다시 돌아간다.


연 500파운드의 돈과 나만의 방.

지적자유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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