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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국적 소녀 Mar 08. 2023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30년차 프로 도망러의 반성문



부끄럽지만 용기내어 고백하건대 나는 지난 30년간 프로 도망러로 살아왔다.


학원을 보내 놓으면 항상

"엄마, 학원에 누구누구 때문에 가기가 싫어" 라며 돌아왔다고 하며,


시험 성적은 좋았지만 행실이 바르지 않은 탓에, 총점을 깎아먹는 수행평가 제도에 개탄하며

학교라는 제도로부터 도망쳤다.


당연히 도망쳐 간 그곳은 낙원이 아니었기에,

다시 나는 어디론가 또 도망을, 도망을, 그렇게 흐르듯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야했다.



인생에서 무언가 문제나 힘든 일이 닥칠 때면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면 그것이 해결될 것 같았고,

지금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 잘 풀릴 것 같은 환상에 휩싸였다.




주로 나를 괴롭힌 것은 '인간관계'였다.


나에게 언제나 인간관계라는 것은 뜨거운 금덩이와도 같았다.

꽉 움켜 쥐고 싶지만 너무 뜨거워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나의 소중한 어떤 것.

너무 갖고 싶지만 가지려 할 수록 나를 태워 버리는 모순적인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인기가 많은 아이이고 싶었다.

하지만 타고난 수줍음과 숯기 없음으로 아이들의 주목을 얻지 못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관심을 받기 위해 일부러 이상 행동을 한 적도 있었다.


채워지지 않은 욕구는 옳지 못한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

무리에서 낙오되어 배척되는 아이가 있으면 오히려 나도 그 아이처럼 될까봐 두렵고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오히려 그 무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그 이들 속에 어떻게든 소속되었다는 안정감은 마약처럼 중독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얄팍한 수법은 결국 나에게로 다시 돌아 왔고,

나를 배척함으로써 자신들의 소속감을 강화하려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돌려 받으며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나름 상처를 받으면서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하고,

스스로를 많이 정제하여 남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배려하고 양보하고 사회성을 기르려고 노력도 해보고,

속한 집단을 바꿔보고,

다른 곳으로 옮겨보고,



그렇게 어떻게든 나의 불안정한 내면을 붙잡으려 지난 세월을 보냈는데,

최근 다시한번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구나.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웠던 7살의 나와

도망도 가보고, 새로 시작해보고, 필사적으로 심리학도 공부하고, 상담도 받고, 사회성도 길러보려 노력한 30살의 나는

사실상 별로 다를 바 없는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당시엔 내가 나를 몰랐다면,

이제는 내가 나의 부족함과 불완전성을 조금이나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추운날 눈시리게 맑은 하늘을 보며

나는 이 내면의 불안한 마음과 평생 함께 잘 살아가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평생 내 주변을 바꾸고 남을 바꾸고 사람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나의 7살 어린아이를 단단히 붙잡고, 살아간다. 걸어간다.


어느날은 새파랗게 맑은 하늘과 함께,

어느날은 비바람과 눈보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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