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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국적 소녀 Apr 30. 2024

모난 돌을 장려하는 미국 사회

나대지 않으면 잊혀질 뿐이야



어느덧 일을 시작한지 300일이 다 되어 간다. 즉 입사 1주년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혹여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

필자는 한국에서 약 5년 이상 대기업에서 일을 하고 미국에 석사유학을 왔고,

현재는 졸업 후 미국회사에서 일하면서 '한국 회사와 미국 회사는 어떻게 다른가'에 집중해서 중고신입 고군분투기 브런치 매거진을 연재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주제는 미국에서 일하면서 단연컨대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인 "Voice Up" 문화이다.



내가 느끼기에 미국사회에서 자신의 의사 표현은 거의 생존과 같다.


'겸손', '예의범절', '배려'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 익숙한 유학생들이 미국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이것 때문일 거 같기도 하다.



내가 한국에서 대기업 회사생활을 할 당시 '회의'는 대부분 들어가서 노트에 상사 분들이 하는 말을 받아 적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회의에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어도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상무, 팀장, 차장 등 리더급들이었고 사원이나 대리가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 예쁨 받는 '사원'이나 '대리'란 곧 회의실 예약을 잘 하고, 가서 미팅노트 (회의록) 잘 써서 배포하고, 회의에서 상사가 시킨 것들을 잘 정리해서 반영하는 것을 말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그런 것들이 중요하긴 하나,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나대기 (Voice Up)'다.



최근 인사 고과 평가가 있었는데 그때도 나는 분석 능력이 좋고 스마트하고 이해가 빠르고, 등등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개선점으로 이야기 된 것이 바로 'Voice Up'을 더 하라는 말이었다.


우리 부문의 헤드 즉 부문장과 분기마다 1:1로 면담을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꼭 그녀가 말하는 것도 "OO가 저번 회의에서 거침없이 말한 부분이 특히 좋았어", "요즘은 점점 Voice up을 안하는 거 같아, 너의 목소리를 들려줘" 등의 이야기다.



미국 사회에서 그럼 "나대기"란 무엇일까?



1. 나의 시각(View)을 확고하게 전달하기:  "나는 이렇게 생각해"


회사는 문제의 연속이다. 그리고 결정의 연속이다.



미국에서는 특정 문제에 대한 '나의 시각'을 표현하는 것을 정말 정말 중요하게 (Value)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회사의 결정을 돕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틀릴지 언정 '관점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천만배 낫다.

왜냐면 '관점이 없는 사람' = '무가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안은 정말 다양할 수 있다.


내년도 판매량을 예측하는 것부터 (올해와 비슷할까? 오를까? 오른다면 몇 %?)

내가 먹을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 까지 (햄버거? 샐러드?) 나만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회의 시간마다 기를 쓰고 내 생각을 말하려고 애쓴다.


사실 보통은 회의 때 멍 때리느라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많은데,

이런 노력은 그런 free-riding을 방지한다.


내가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말한 것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싶지 않고

맥락에서 동떨어진 말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정말 주의 깊게 듣게 된다.


그러다 보면 active listening이 되고 회의에 더 깊게 관여(engage)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라도 더 내 생각을 말해야

내가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이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타인에게 알릴 수 있다.




2. 이유를 제시하기: "나의 이유가 꼭 너에게 옳을 필요는 없어"


그리고 관점이 있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점심 메뉴에 대한 나의 관점: "나는 햄버거를 먹고싶다."

이유: 

1. 햄버거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골고루 들어있어 영양 밸런스를 잡기 좋다.

2. 햄버거는 한 손에 들고 먹기 편하다.

3. 햄버거는 빠르게 만들 수 있어서 시간절약에 용이하다.


하지만 이걸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물음표가 한가득 떠오를 수 있다.


"뭐??? 햄버거가 영양 밸런스가 좋다고???

햄버거 패티를 굽는데 쓰는 기름은 쉽게 부패해서 유해물질을 만들고

정제 탄수화물을 굽기 때문에 당독소가 많이 나온다고!"


만약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면

괜찮다!

아주 좋다!



그럼 그 생각을 다시금 Voice Up해서 표현하면 된다. 대신 filler words (앞뒤로 완충하는 말)을 좀 끼워서.



"아주 좋은 의견인데? 

근데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을거 같아. 

햄버거가 건강에 좋다는 말은 다시 한번 검증 (verify) 해볼 필요가 있어보여.

왜냐면 -위의 이유- 때문이야.

그렇지만 너의 말은 일리가 있어."



이런 식으로 서로의 이유를 주고 받는 이 과정!

미국인들은 이 과정을 사랑한다.


그 과정 속에서 더 나은 방향이 탄생하며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서로의 '이유'를 그 자체로 존중하고 터치하지 않는 공고한 개인주의 문화가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




3. 공공연하게 공유하기: "동네 사람들 이거 좀 보세요!"


그렇게 나의 시각과 이유가 갖춰졌다면 동네사람들에게 바리바리 '공유'를 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다.


"여~러분~~~ 저희 팀이 이번에 이렇게 성과 냈어요! 축하해주세요!!

Shoutout to Michelle!!!!!!"


실제로 미국 회사에선 팀 전체 메일로 이런 식의 '공공연한 appreciation'을 종종 하며, 굉장히 장려 된다.


"우리 팀에 Paul이 이번에 아빠가 됐어요!!!

너무 감격스럽지 않나요? Paul 정말 축하해!!! "


이런 메시지도 팀 전체 메일로 돌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 있다면 그걸 여러 사람이 있는 메일 loop에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스킬(?)이고,


최소한 사람들이 몇명이 있든, 그곳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든 (CEO가 있다해도! 아니 오히려 있으면 더 좋아!) 나의 생각이 담긴 발언 하나를 하는게 정말 장려되고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


그래서 어떤 강연이나 스피치 이후에 '질문'하는 문화가 아주 크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 질문 또한 그 강연자에 대한 존중이며 나의 생각을 역으로 표현하고 어떤 질문을 함으로써 강연을 정말 잘 들었다는 걸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종종 강연이 끝나고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질문을 하곤 하는데,

미국 회사에서는 그것과 별개로 여러 사람이 다 들리게 '손들고 질문' 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바로 '내가 궁금했으면 남도 궁금했다'는 마인드.

그리고 '그 정보를 최대한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시간대비 효율적이고 더 큰 가치를 창출함. 왜냐고? 나 혼자 알았음 1의 효용인데 100명이 있는 강연장에서라면 100의 효용이기 때문임.'이라고 생각하는 마인드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적절히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고 표현하는 것은

승진과 커리어 사다리 타기에 꽤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확고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걸 'Presence'가 있다고 표현하는데,

위로 올라가는 매니저나 디렉터 직급이 될 수록 Presence를 평가 시 아주 크게 보기 때문이다.


한국도 내가 일하던 대기업을 돌이켜 보면

Presence가 있는 동기가 승진도 빨리했고 인정도 받았던 거 같다.



하지만 '모난 돌이 정맞는다' 또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같은 문화도 동시에 존재해서,

어떻게든 튀지 않고 묻혀 가려는 성향의 사람들이 대다수였던건 사실이다.



나조차도 큰 회의실이나 강연장에 가면 웬만하면 뒤에서부터 앉고,

뭔가 연설이나 세션이 끝나고 질문하는 시간에 남의 눈치를 봐가며 질문을 하고,

내가 하는 말 때문에 나의 보스가 곤란해질까봐 쓸데 없는 소리를 덜하게 되었던 거 같다.


그것도 나름 한국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집단주의에 맞춰 살아가는 나의 생존 스킬이었다면


미국에서는 또 이 개인주의 문화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귀를 바짝 세우고 머리를 팽팽 돌리며 

회의시간에 무슨 말이라도 하나 더 하고 

뭐라도 하나 더 주도하는 식으로 '나댐'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일을 마구 벌여볼 지 고민하고 전전긍긍한다.



스스로 자기검열에 빠질 때마다 되뇌인다.

"정신 바짝 차려, 나대지 않으면 잊혀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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