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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n 23. 2017

인물과 사건의 특별한 시너지 <파리의 밤이 열리면>

토요일 밤의 파리, 좌충우돌 모험조차 낭만으로 만들다

무슨 사건이든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쁜 결말만 예정되어 있을 뿐이다.

프랑스 배우 제라드 드빠르디유가 남긴 이 말대로 '사건'은 영화의 중심이자 본질이다. 모든 영화가 시작에서 끝을 향하고, 각각 문제를 전제한 뒤 이를 해결하며 결말로 치닫는다. 관객은 대개 드라마틱한 반전과 완벽히 정리된 엔딩을 기대하지만, 사실 '완벽한' 결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어떤 영화를 본 뒤 좋았다고 느꼈다면 그건 그 작품의 엔딩이 '깔끔'해서가 아니다. 실은 거기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곳곳의 사건들이 과정으로서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한 덕분이다.


영화 <파리의 밤이 열리면>은 도입부나 결말에 의지하는 대신 과정 속 '사건'을 동력으로 하는 작품이다. 파리의 한 극장을 운영하는 루이지(에두아르 바에르 분)가 새 연극 초연을 하루 앞두고 단원들의 파업에 부딪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당장 단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는 한편 무대에 세울 원숭이를 섭외해야 하는 게 그의 임무다. 하지만 루이지가 하룻밤 새 파리 곳곳을 오가며 맞닥뜨리는 일들은 생각처럼 간단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목표를 향한 고군분투라기보다 좌충우돌에 가까운 그의 모험은 그 끝을 예측할 수가 없고, 그렇게 줄곧 위태롭게 엇나가는 서사는 묘하게 눈길을 잡아 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파리 곳곳을 휘젓고 다니는 루이지의 태도다. 천생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그는 예술의 도시 파리에 누구보다도 걸맞은 인물로 그려진다. 극장 매니저 나웰(오드리 토투 분)의 성화에 못 이겨 인턴 파에자(사브리나 와자니 분)와 극장을 나선 그에게 다가올 내일은 멀고 이제 막 열리는 토요일 밤은 길다. 당장 공연이 엎어질 위기에도 속 편한 소릴 하고, 급히 투자금을 받아내야 할 처지에 한가하게 바에 앉아 술이나 마신다. 15년 동안 함께해 온 스물일곱 명의 단원들이 용케도 이런 그를 떠나지 않은 게 미스터리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다.


덕분에 극 중 루이지가 보여주는 에너지는 정말이지 엄청나다. 그는 쉬지 않고 움직이고 떠들어댄다. 어딜 가나 제 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굴고 처음 만난 누구라도 친구처럼 대한다. 원숭이를 섭외하기 위해 무턱대고 조련사를 찾아가는 걸로 모자라 동물원에까지 잠입하거나, 파업을 선언한 스태프의 집을 방문해 그 가족들과 서슴없이 어울리는 식이다. 뛰어나진 않지만 거칠 것 없는 언변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허풍을 쏟아내는 루이지는 일견 순수하면서도 사고뭉치인 아이 같다. 이런 그의 태도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 동료들이 그를 따르는 이유로 비치는 지점은 의미심장하다. 제멋대로인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피에자가 그에 대한 단원들의 마음을 점차 공감하는 과정은 스크린 밖 관객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루이지의 동선을 따라가며 파리의 밤을 퍽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영화의 만듦새 또한 인상적이다. <파리의 밤이 열리면>이란 제목대로, 영화는 곳곳에서 벌어지는 개별 시퀀스들을 각각 연극의 한 막처럼 밀도 높게 연출한다. 그리고 이를 연결해 퍽 흥미로운 한 편의 로드무비를 완성해 낸다. 여기에 노을 질 녘 높은 공원에서 내려다본 파리 전경, 센 강과 몽마르뜨, 에펠탑의 야경 등 정성 들여 담아낸 로케이션들은 빠른 템포 속에서도 여유와 낭만을 자아낸다.


영화의 높은 완성도는 각본과 연출, 주연까지 1인 3역을 도맡은 에두아르 바에르 감독의 역량이기도 하다. 내내 격양되어 있으면서도 어딘가 고독이 느껴지는 주인공 루이지, 적재적소에 배치돼 작은 비중에도 스스로를 각인시키는 조연 캐릭터들. 그리고 공과 사를 넘나드는 이들 간의 관계는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 그의 리더십 덕분으로 여겨진다. <파리의 밤이 열리면>이 극 중 루이지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현재를 조명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2017년 6월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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