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참 좋은 계절이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에 실린 싱그러움이 상쾌함을 더한다. 한낮에도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제주에서도 경험했지만 바닷가 날씨의 특징은 일교차가 적다는 것이다. 최저와 최고의 차이가 5~6℃에 불과하다. 지난여름의 길고도 지독했던 무더위가 언제 있었냐는 듯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운동하러 나간 새벽 기운이 닿는 드러난 피부의 느낌이 차갑다.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은 벌써 긴소매에 바지 차림이다. 더도 덜도 말고 이러한 날씨가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생각하다가 과연 그럴까? 라는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가을의 고마움이 더한 것은 지난여름 덕분이다. 겨울이 있으므로 해서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환희는 더하다. 365일이 비슷하다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변화가 있을 리 없다.
태풍이 지나가고 날씨가 급변하자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금오도를 찾아가 비렁길도 걷고 싶고 세종시에 계시는 선배님도 찾아가 만나고 싶어진다. 같이 걸을 사람만 있다면 지리산 주변도 찾고 싶다. 그런 마음이 발동했을까. 몇몇 분들에게 모임을 갖자는 제안을 했다.
아시안 게임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이 막을 내린 지 3주가 지났다. 모든 것을 보여준 축구가 재미있었다. 손흥민이 뛰어난 선수라는 걸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상대를 얕보면 한 수 아래의 전력인 말레이시아에도 질 수 있다는 것도, 황현수처럼 운이 따르지 않는 선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불과 두 달 전에 벌어진 월드컵에서는 손흥민과 호흡을 맞추는 선수가 없었는데, 아시안 게임에서 황의조 선수는 손흥민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어떤 이유로 황의조가 월드컵 대표로 선발되지 않았는지 의아심이 들었다. 그런 선수가 발탁되지 않았다는 것은 선수 선발권을 가진 감독이나 한국축구협회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일 거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도 인상적이었다. 일본까지 꺾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자 베트남은 부랴부랴 중계를 준비했다. 베트남은 비싼 중계료 때문에 중계를 포기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일본을 이기자 다시 축구 열풍이 불었고, 이에 호응하느라 갑자기 중계하기로 했다고 전한다. 가난한 나라의 비애다. 개인기에 있어서 한국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그들의 전술과 사기만큼은 뛰어났다.
여자 배구가 준결승에서 태국에 완패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외에 적수가 없는 줄 알았는데, 세계적인 선수 김연경이 있음에도 평균 신장이 작은 태국에 세트 스코어 1:3으로 지는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태국의 수비는 한국보다 훨씬 탄탄했고 악착스러움이 옛날 한국의 여자배구를 보는 듯했다. 마지막 4세트에서는 5점이나 앞서가다가 25:22로 역전당했다.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한 여자농구도 준결승에서 중국을 만나 분패했다. 1 쿼터 시작하고 나서 중국이 다섯 골을 넣을 동안 한국은 한 골도 넣지 못한 것이 결국 패인이 되었다. 3 쿼터에 동점을 이룬 끝에 한 번 역전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평균 신장이 8센티나 큰 중국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도 심판의 편파적 판정도 한몫 거들었다. 남북 단일팀이었기에 더 안타까웠다.
그랬어도 단일팀은 8강전에서 한국에게 패한 우즈베키스탄 축구팀처럼 심판에게 징징거리지 않았다.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경기를 관람하는 처지에서 심판에게 도를 넘게 항의하는 것처럼 꼴불견은 없다. 어제 벌어진 US오픈 테니스 여자 결승에서도 그랬다. 세리나 윌리엄스의 지나친 항의에 눈살이 찌푸려져 채널을 돌렸다.
가장 쪽팔리는 경기는 야구였다. 야구의 출전 목적은 우승이 아니라 우승에 따르는 병역면제였다. 많은 나라가 출전한 축구는 국위선양이라도 있지만, 야구는 오직 일본과 대만뿐이었다. 유치한 수준의 중국과 라오스 같은 나라는 제외하는 게 마땅하다. 대만은 프로팀이 없고, 일본은 프로야구가 레이스 중이라 아마추어가 참가했다. 한국만이 보름 동안 국내 레이스를 중지하고 프로를 출전시켰다.
대학교 팀이 고등학교 팀과 경기를 한 것이다. 그러고도 우승했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철면피가 따로 없다. 돈방석에 앉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아마추어와 겨루어 병역면제까지 받는다면 정말 불공평한 일이다. 아무리 야구를 즐기는 팬이라고 하더라도 이해불가다.
82세에 영면한 사람들
불과 몇 주 사이에 꽤나 알려진 세 사람이 차례로 운명했다. 하숙생의 가수 최희준 씨가 8월 24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그다음 날, 옛 영화배우 버트 레이놀즈가 9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1936년생이라는 것이다. 즉, 82세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여기서 찾아지는 의미는 우리의 수명도 대체적으로 이 부근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분들은 비슷한 연령대로서는 평균 기대수명보다 길게 살았다. 기대수명은 한국 남성이 79세이고, 미국인은 몇 년 차이가 있지만 거기서 거기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도 라이프 플랜을 여기에 맞추면 될 것 같다.
앞으로 20년 남았다. 천재 스티브 잡스는 매일 거울 앞에서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했다고 하는데, 일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하나인 나는 20년 남았다고 생각하고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봐야겠다.
▼ 날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어제 아침 뒷산에 올랐다. 섬들이 점점이 박힌 여수 앞바다.
▼ 오늘 새벽 운동하다 발견한 모습. 누군가 엊저녁 커피를 사다 처마시고(?) 벤치 사이에 두고 갔다.
▼ 오늘 새벽 동녘 하늘에 여명이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