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기억하고픈 여정(시모노세키-모지코 그리고 하카타)
마음을 가다듬고, k군은 길잡이가 되어 앞으로 나아갔다. 도로에 자전거가 지나간다고 경적을 울리거나 하지 않고 모두들 옆으로 지나갔다. 일본인들의 배려에 감동을 할 정도 였다. 가는 길이 잠시 헷갈렸던지 갑자기 길이 없어지고 논두렁으로 빠져 들었다. 당황할 상황이었지만 다시 지도를 보고 잘못 왔음을 깨달았다. 그저 웃음이 나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짜증도 부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즐겁게 하기로 했기에 침착하게 대응을 했다. 다시 길을 잡고 달려가니 마치 돛에 바람불 듯 순탄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휴게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길가에 편의점이 많아 조금의 여유를 갖기도 했다. 60여km를 달렸을 때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내 자전거의 안장도 점점 흔들리고 있었다. k군의 배려로 자전거를 바꿔타고 가고 있었지만 이미 몸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이정표에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보이지만 몸으로는 쉽게 체감이 되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정점이 온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는 욕이 튀어 나오길 시작했다. 분명히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임에도 포기가 이렇게 빨랐던가? 내 자신에 대한 원망이 잠시 들었다. 그래도 같이 있는 동료가 있기에 이런 기분도 쉽게 가시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서로를 위로하며, 그렇게 또 한 바퀴를 내 딛기 시작했다. 오르막 구간은 거의가 끝나보였다. 평지만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해도 지고 있었다. 밝았던 햇살이 줄어들고, 어둠의 그림자가 눈 앞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쉴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저 옆에는 논두렁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우리의 갈 길은 아직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보통은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야 했지만, 우리는 라이트를 준비해 놓지 않아 어둠을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할지에 대해 달리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바다가 보였다. 해안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 인지 배도 고파오기 시작했다. 해안 마을에 저녁은 일찍 문을 닫은 상점가만이 보였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편의점은 도로 반대편에 있어 넘어가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더 가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달려보지만, 식당도 편의점도 먹을 걸 파는 곳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주린 배를 부여 잡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큰 마트의 폐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자전거는 버려두고, 마트에 들어가 떨이하는 빵들을 주워 담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아 이제 좀 살겠다는 한숨과 함께 개걸스럽게 빵을 먹어 치웠다. 운동을 오래해서인지 빵은 소화가 다 되어 버렸다. 더 먹을 것을 살까 고민을 하던 중 숙소까지 가서 밥을 먹는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근처에 숙소가 있는 것 같아 아무말 하지 않고, 조용히 숙소로 향했다. 10여분을 달려 숙소 근처에 도달했을 때, 숙소가 차도 쪽에 있는 줄 알고 두리번 거렸지만, 정문만이 차도에 있었고 입구는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 듬고, 자전거를 어깨에 걸치고 계단을 하나,둘씩 오르기 시작했다. 땀으로 이미 샤워를 한 상태였고, 몸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불쾌했다. 겨우겨우 올라와 입구에 들어서서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 받았다.
이 모든게 끝났구나라는 생각에 이런 고생을 왜 했지 하는 허무감만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나갈려고 했을 때 숙소 주인은 10시 이후에는 출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유스호스텔. 자유라고는 없는 곳이었다. 저녁을 먹지 않아 예민한 상태였는데, 식사 조차도 밖에서 할 수 없다고 하니 짜증이 났다. 이런 내 모습은 K군을 나를 말리기 시작했고, 조용히 컵라면을 사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배에서 나는 소리가 잦아들자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이는 간몬대교가 굉장히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고생한 뒤에 불어오는 이 풍경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사진이라도 한장 찍을까 생각을 하다가 피곤한 마음에 모든 걸 내려 놓은채 이내 잠이 들었다.
아침은 상쾌했다. 전 날의 피로는 잊은 채 4월에 아침 햇살을 맞으며 기상 했다. 어제 보았던 간몬대교는 아침 밝을 때 보니 더 크고 웅장해 보였다. 여기가 다른 건 몰라도 뷰는 정말로 좋은 곳이었구나 하고 이내 감탄을 했다. 세면장에서 가볍게 샤워를 하고, 조용히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오늘은 여기서 비교적 가까운 모지코로 향해 보기로 했다. 선선히 불어오는 아침 바람을 맞으며, 모지코로 가는 길은 어제의 설레임보다는 덜 했지만 그래도 어제의 힘든 마음보다는 비교적 가볍게 느껴졌다.
20여분을 달려, 해저 터널에 도착했다. 야마구치현과 후쿠오카현을 이어주는 해저 터널은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그리고 사람도 지나갈 수 있는 2차선 도로가 있었다. 차는 갈 수 없지만 이륜 이동 수단은 갈 수가 있었다.
다만, 탈 수는 없고 끌고 가야만 했다. 잠시 자전거에 올라타니 방송에서 자전거에서 내리라고, 방송이 나와 부끄러웠다. 천천히 해저 터널을 지나고 있으니 행여 갑자기 무너져 바다에 잠기면 어떻하나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재난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그런 끔직한 상상을 하는 내 자신을 자책했다.
그저 터널만 가로 질럿을 뿐인데, 현 하나를 넘어 모지코로 넘어 왔다. 작은 항구인 모지코에는 일본 근대 문화 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주변 곳곳에 옛날 건물들과 현대의 높은 건물들이 함께 공존을 하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K군과 나는 이별을 해야 했다. 하루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힘든 여행을 같이 한 동료이기에 헤어짐이 아쉬웠다. 가기 전에 모지코의 명물인 '야끼카레'를 먹으며, 힘들었던 점을 서로 이야기하며, 식사를 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한국을 들려 캐나다로, K군은 일본에서 공부를 마쳐야 했다.
마지막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하카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