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한번 가보자~!
2011년 11월 겨울이라 하기에는 애매한 가을날이었다. 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했다. 고객들을 상대하며, 커피를 만드는 생활에 지쳐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스트레스는 극에 달아 있었다. 나에게서 필요했던 건 새로운 곳에 생활과 나의 인생을 바꿔줄 터닝포인트였다. 일을 하는 동안 다른 나라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유학 또는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기에 나는 떠나야 했다. 해외에 나가서 공부든 일이든 해보고 싶어 캐나다 워킹비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준비가 미흡했던지 아쉽게 떨어졌지만 두번째 신청에서는 다행히 접수되어 나는 이제 캐나다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언제 떠날지 고민을 하던 중에 이 곳에서 고민을 하느니 여행을 하면서 더 고민을 해보기로 하고, 친구가 있는 홍콩으로 먼저 여행을 가기로 했다. 비행기 안에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한국에 있다가 가기 보다는 다른 곳을 한번 경유해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정리 되니 가고 싶은 곳을 정리해 보았다. 태국으로 넘어가서 유럽 여행자들처럼 꼬창이나 후아힌 같은 조용한 곳에서 스노클링도 하고, 책을 읽으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해볼까? 아니면 말레이시아에 친구집에서 잠시 신세를 지면서 일을 해볼까, 아니면 가까운 일본에서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을 하다가 '아, 비용이 많이 들겠구나' 잠시 생각을 접는다.
'홍콩부터 즐기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공항에 도착하니 어느 덧 오후가 되었다. 이 곳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이 곳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말동무나 할까하고 시간을 내어 만났다.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해서 적응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이친구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롼타이퐁에서 술을 마시며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인생이 부럽다며 이야기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나의 작은 고민도 이야기해보았다. '이번에 캐나다 가기 전에 다른 곳에 있다가 가볼려고 하는데 어디가 좋겠냐?' 이 녀석 씨익 웃으며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데 있어. 캐나다 갈거면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 공부 하던가...' 자기 일 아니라고 그냥 성의 없이 대답한다. '홍콩은 어때?','물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집세도 비싸고 숨막혀 여기...'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술이 다 비워 갈 때쯤 '영어 공부 싫으면 일본이나 가라. 그래도 홍콩보다는 할 일도 많고, 생활비가 여기보다는 저렴하지 않겠어? 괜찮네. 너 일본 여행 많이 했으니 더 잘 알거 아니야!!' 저 녀석 말이 맞다. 난 일본은 여러번 갔지만 정작 생활을 해본적이 없다. '유레카' 간단한 일을 어렵게 생각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많은 기억들이 머릿 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자전거로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있었던 단편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깊이 없는 대화 속에서 진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생각들을 정리해봐야겠다.
카페에 앉아 어디로 갈 지를 지도와 사진을 보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오사카, 번잡한 도쿄, 이 시기에 가면 정말 추운 삿포로, 내가 가장 많이 갔던 곳 후쿠오카 등 여러 곳을 두고 생각해 보았다. 오래 체류할 생각은 없었다. 3개월 동안만 그 지역인으로 살고 싶었다. 홋카이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한국보다 따뜻했다. 다만, 현지에서 있을 때 비용이 얼마나 차이가 나느냐였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도쿄와 홋카이도쪽이 물가가 비쌌고, 상대적으로 후쿠오카가 물가가 저렴했다. 개인적으로는 오사카쪽에서 생활해보고 싶었으나 너무 관광지 같아 포기하고, 비교적 나에게도 익숙하고 여행하기도 좋은 후쿠오카로 결정했다. 그리고 여기가 좋았던 건 시골이면서도 도시같고, 도시 같으면서도 시골 같은 점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 상대적으로 따뜻했고, 중소도시가 많아 여차하면 언제든 다른 도시도 보기에도 좋았다. 이제 결정도 했고, 떠날 준비만이 남았다.
친구들과 작별의 인사, 환송 이런 건 없었다. 언제 돌아올꺼라는 말도 없이 조용히 짐을 챙겨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보다 따뜻한 날씨와 습한 바람만이 나를 반겼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을 환영한다는 문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위해 들어온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만 있을 뿐이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며,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갔다.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가는 시간 동안 생각들을 가볍게 정리해 보았다. 취업비자도 없고, 딱히 일을 하고 싶어 온 것도 아닌 그저 잠시 스쳐지나가기 위해 들르는 곳이라 생각하며, 여행 계획을 세워보았다. 12월의 후쿠오카는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과 함께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고, 한국에서와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분위기는 마치 일본인의 성향과도 같아 보였다. 후쿠오카의 중심역인 하카타역에서 가까운 호텔에서 짐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 산책을 나섰다. 일본에 도착하여 마치 의식이라도 치르 듯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 보게 된다. 마트보다 오히려 특이한 것도 많았고, 간식이나 식사 대용식이 많았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마음에 늘 이 것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제일 즐거운 일은 시즌마다 나오는 시즌 한정 상품 때문에 더 찾게 된다. 맥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늘 시즌에만 나오는 맥주를 볼 때마다 꼭 마셔보곤 하는데, 겨울에도 어김없이 한정상품이 나를 즐겁게 한다. 돌아가는 길에 마셔봐야겠다 생각하고 한번 더 쳐다보곤 지나간다. 시내라 그런지 편의점과 쇼핑센터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불편한점이 없어보였다. 다만, 주변에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을 찾아볼 수 없는점은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도 소위 놀기 좋은 곳은 많아 심심하거나 외롭지는 않을 듯 하다.
어, 앞에 좋아하는 정식집이 보인다. 배가 고파 들어가 늘 좋아하는 '치킨 가라아게 정식과 달걀말이'를 주문하고, 시원한 맥주도 호기롭게 주문해 본다. 일본 사람들도 저렴하게 이용하고 있는 24시간 정식집에서 이 곳 생활을 적응해보려 노력하며, 한편으로는 잉여롭게 시작을 한다. 이 한잔의 술을 축배 삼아 이 곳에 생활을 자축해 본다. 식사를 마치고,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다.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 어딘지 모르는 차분한 분위기가 걷고 있는 나에게도 차분함을 전달해 주는 것 같다. 쓰레기통이 많지 않음에도 거리는 깨끗했고, 어디를 가든 자판기가 있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잠시의 안식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자판기 옆 쓰레기통이 눈에 보였지만, 이 깨끗한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동네가 너무 깨끗하니 누가 휴지라도 버릴려고 하면 동네 사람들에게 혼날 것만 같았다. 너무 완벽한 동네도 좋지만, 조금은 어질러지고 나사빠진 모습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무거운 동네 산책을 마치고, 잠시 편의점에 들러 오면서 봐두었던 시즌 한정 맥주와 도시락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갔다.
적막함, 쓸쓸함, 외로움 또는 두려움...호텔 안의 공기가 무겁다. 분위기를 반전해보고자 티비를 틀어 예능프로를 보면서 제대로 알아 듣지도 못하는 말을 한참을 보고 있었다. '왜 말도 안 통하는 이 곳에서 난 무엇을 하고 있나?'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술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생각은 많아지고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됐다. 5일이라는 시간, 아니 이제 4일이 남았다. 할 일이 많았다. 거주할 집을 알아봐야 했고, 언어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학원이라도 다녀야 했다. 대화는 어느 정도 자신했는데,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대화의 맥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고, 커뮤니티에도 많은 질문들을 던졌다.
확실히 여행을 할 때와 생활해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고, 자신감도 한편으로는 결여된다. 여행은 한번 길을 잃어버려도 돌아와서는 추억으로 남겼지만, 지금의 내 생활은 한번 잘못 결정하면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다. 이런 면에서 신중했고, 잘 될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보았다.
내가 결정을 한 일이었고, 생활을 하겠다고 온 곳이다. 이제 이런 일쯤은 웃으며, 즐겨야했다. 즐거움이 없으면 여기에 온 의미는 아무 것도 없었다.
혼자라도 느낄 때 사람은 큰 외로움과 좌절을 느낀다. 하지만 즐긴다고 생각한다면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가진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걸 더 의미에 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