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담이 아빠 Dec 26. 2016

일본에서 내가 살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 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10시가 되기 전에 호텔 청소를 시작하기 때문에 바지런히 세수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하고 산책에 나선다. 하카타는 여전히 한국에 가을 날씨 같았다. 대부분 두꺼운 옷을 입고, 몸을 움츠린채 걸어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얇은 저지를 입고 누가봐도 외국인인 것처럼 이곳저곳을 산책하고 있었다. 흡사 내 모습은 면도도 하지 않고, 편한 복장이라 멀리서 보면 노숙인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은 건 내가 이 곳에서 자유롭고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곳은 여전히 낯설고, 매일 보는 풍경인데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스타벅스를 찾아가 마시곤 했는데, 여기에 온 이후부터는 조그만 카페에 찾아가 직접 내린 커피나 로스팅을 하는 샵에 찾아가 마시기 시작했다. 아, 물론 내 일본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찾아간 것도 있었다. 가끔, 언어는 잊혀지곤 했기에 내가 좋아하는 전문분야인 커피에 관해서는 마스터들과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이 곳이 좋은 건 스타벅스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 복잡하고 정신이 없는데, 이 곳은 조용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내 일본어 실력이야 그리 뛰어나지는 않지만,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이 뿌듯해지곤 했다. 그래도 그들은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호응도 해주고 가끔은 박수치며 웃어주기도 하니 나로서는 고맙기도 했다. 

커피에 진한 여운이 몸 속에 감돌기 시작했을 때 방을 구할 수 있는지를 부동산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일본에 부동산은 외국인에게 늘 폐쇄적이었다. 요구하는 것도 많았고, 보증금 명목으로 3개월치의 집세를 요구하기도 했고, 일본인 보증인도 필요했다. 나에게는 아직 그만한 인맥이 없기에 가능 여부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부동산에 들어가 임대 가능여부를 물어보니 역시나 임대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고, 유학생도 취준생도 아니었기에 더욱 더 난색을 표시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사람을 못 믿어서 그런건지 임대는 쉽지 않았고, 한국 사람이 운영한다는 빌라도 찾아가 보았지만, 임대료도 임대료이거니와 2인 1실에 시설들이 노후화 되어 불편해보였다. 그리고 보증금으로 3개월치 월세와 전기 및 가스, 수도 요금은 별도로 내야한다고 했다. 타향살이가 녹록치 않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소득없이 호텔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컴퓨터로 다시 한번 방임대 관련해서 꼼꼼히 알아보고 있는데,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도 하면서, 임대도 가능하다는 글을 보고 재빠르게 담당자에게 메일과 호텔 전화번호를 남겨 놓았다. 될지 안될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기대를 하며, 뜨거운 욕조에 멍하니 앉아 목욕을 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에 울리지 않는 전화벨이었기에 그 전화일 것이라 확신을 하고, 전화를 받으니 메일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했다. 이 사람은 오사카로 취업이 되어서, 이 곳을 떠난다고 했고, 급히 사람이 필요하다며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만나서 하자고 했다. 처음으로 잡은 약속이라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메모를 하고, 만날 장소도 다시 한번 지도로 꼼꼼히 확인을 하였다. 

다음날 오전, 식사를 마치고 약속 장소인 하카타역 로손 편의점 앞으로 향했다. 마침, 집소개를 해주기로 했던 사람은 먼저 나와 있어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이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에게 집을 소개시켜준 P군은 일본 워킹비자로 1년 정도를 있다가 오사카에 있는 호텔에 취업이 되서 떠난다고 하며, 남자 입주자가 왔으면 좋겠다고 하던 중에 연락이 왔다고 했다. 나는 연락을 줘서 고맙다고 말을 하며 내가 이 곳에서 왜 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니 어느새 게스트 하우스가 눈에 들어왔고, 2층을 올라가니 집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일을 보고 있었다. 집주인인 슈지상과 인사를 나누고,

P군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자 슈지상은 놀란 듯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비자는 있는지, 왜 왔는지, 취업을 할려고 왔는지 등등을 일본어와 영어로 섞어쓰며 묻기 시작했고, 나는 영어와 일어 또는 P군의 도움을 받아 대답을 해주었다. 슈지상은 나에 대해 궁금한게 많은 것 같았다. 하긴 , 집주인인데 이미지가 나뻐서 좋을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알아듣는 말은 알아듣고, 모르는 말은 그냥 과감히 포기하고 들었다. 슈지상은 입주를 해도 좋다고 했고, 대신 조건이 있다고 했는데, 1주일에 두번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대신 집세는 많이 저렴하게 해준다고 해서, 흔쾌히 하겠다고 하고, 입주시기를 조율을 했다. P군은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수 있다고 했으나. 아직 호텔에 2일 정도 더 머물러야 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P군은 그 전에 떠날거라고 했다. 그리고 방을 구경시켜주겠다며, 3층으로 올라가니 옥상이 나왔고, 거기에 조그마한 옥탑방이 있었다. 방 안에는 좌식 테이블이 있었고, 그 안에는 전통 난방기구인 코다츠가 있었다. 화장실과 욕실 그리고 주방 시설은 아랫층에서 고객들과 같이 이용을 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했고, 사람이 많을 때는 가까운 대중탕을 이용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일본에 물가 치고 저렴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P군의 배려로 난방기구와 전기장판은 얻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 곳에서의 생활도 주거지가 정해졌으니, 걱정은 한시름 놓게 되었다. 남은 시간 동안 적응하는 일과 어디서 어떻게 여행을 할 지 고민할 일만 남아 있었다. 기분이 좋아 내가 살 집 주변을 어슬렁 거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큐슈에는 왜 가셨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