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퓨 May 23. 2022

조각 해변

우리는, 우리는 파도소리로 대화하며  침묵을 보냈다. 담배가 두어  남을 때까지, 멀리서 사온 커피가 얼음이 달각거릴 때까지.


인적 없는 도로가 숲에 가린 이 해변에는 힘들여 가져온 나무벤치가 자리를 지킨다. 그 자리에 앉아야 비로소 해변이 되는 세상 둘만의 조각 해변.


목적지 없었던 그 여행길 잠시 기지개를 위한 정차에서 나무에 가려진 이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는 대화로 시작해 벤치가 만들어지는 길었던 그 시간 동안 우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작았던 자동차에 조각을 맞추듯 아슬아슬하게 벤치를 채워 놓고는 그간의 기대와 기쁨 함께 우리의 해변에 내려놓았다.


기대만큼 자주 찾지 않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조각 해변 그곳을 그리워하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 앉는다면 별 준비도 필요 없이 지독히 무료한 만족 속에서 하루 종일도 괜찮다는 듯이.


단단하던 벤치가 삐끅 소리 낼 만큼 시간이 흐르니 많은 것들이 조금씩 모두 변한다. 꼭 함께 찾았던 그곳도 언젠가부터 각자 혼자서도 가곤 한다. 지난번 눈이 왔던 날 조금 몰래 찾은 벤치에서 그녀 자리의 흔적을 보고는 너도 그렇구나 알았다.


오늘은 어색한 콧노래를 내곤 멈칫했다. 항상의 파도소리도 달각거리는 얼음도 놀란 듯 조용해졌다.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다음을 준비한다. 다음의 조각 해변을 준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