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나 Feb 26. 2023

임신을 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이제 불안의 서막일 뿐이었구나

몇 해 전 나와 절친한 친구가 임신을 했다. 친구가 다니던 산부인과 병원과 내가 일하던 회사가 가까워서 친구의 진료가 있는 날이면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곤 했다. 어느 날 점심을 먹던 친구가 오늘 진료를 봤는데 검사 결과로 임신을 확인했다고 했다. 친구가 기다리던 소식이었기에 나 역시 기뻤고 진심으로 축하했다. 하지만 친구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축하를 받았다. 이후로도 산부인과 진료를 보고 함께 밥을 먹을 때면 뱃속의 아기가 잘 있는지 물었다. 친구는 ‘그런 것 같아’ 라며 또 덤덤하게 소식을 전했다. 임신을 한 기분을 물어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드라마나 SNS를 보면 임신을 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하다고 소리치는 듯한 사람들과 가족들의 모습들 말이다. 아이를 가지면 저절로 행복 호르몬이라도 나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덤덤하게 10개월을 보낸 친구가 걱정됐다. 마음에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라도 있는 걸까 싶다가도, 무슨 일이든 아직 그 일을 경험하지 못한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조용히 친구의 곁을 지킬 뿐이었다. 친구를 이해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내 친구는 왜 임신을 해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는지, 내가 임신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됐으니 말이다.


임신을 했지만 그것이 곧 행복은 아니었다.


임신은 곧 불안의 시작을 뜻했다. 임신을 준비할 때는 임신 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만 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두 줄을 보고 기쁨을 만끽해 볼까 했더니 자궁에 제대로 착상되지 않은 자궁 외 임신이어도 두 줄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 어디선가 들렸다. 그러니 병원에서 아기집을 확인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고 했다. 아기집을 보고 났더니 이번엔 아기집만 생기고 그 안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게다가 아기집만 있다가 임신이 종료되는 경우가 제법 많으니 다음 진료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2년처럼 느껴지는 2주를 보내고 병원에서 겨우 심장소리를 들었더니 지금 심장소리를 들었어도 갑자기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단다. 임신테스트기 두 줄 만으로 아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 놓고 행복해할 겨를이 없었다.


임신 초기를 지나면서 지금은 아이를 잘 출산해서 키우고 있는 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그때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조심스러워서 쉽게 행복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임신 기간을 보냈다고 했다. 아이가 잘 있다면 다행이지만,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그 순간을 좀 누리면서 행복해 할 걸 싶은 마음도 들긴 하지만, 남들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이게 우리의 모습인걸 어쩌겠냐며 웃었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일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오랜만인가 싶었다. 마음껏 행복해 할 수도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을 얻은 적이 내 인생에 있었던가. (남편도 물론 소중합니다만.. 미안합니다) 지금의 이 불안은 너무 소중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겠거니 하며 아직은 까만 화면 속 하얀 점으로만 보이는 작은 존재를 믿어본다.


불안을 잠재우려 시작한 색칠공부…




매거진의 이전글 임신준비생, 절대 되지 말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