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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Oct 18. 2016

낙서로 혁명을! 뱅크시

런던 여행 5  - 뱅크시, 디스멀랜드, 용마랜드

세상에서 가장 지적인 낙서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있다. 브리스톨을 주 무대로 활동한다는 뱅크시가 가끔은 런던에도 출몰한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고 때마침 런던을 배회하던 나는 그의 그라피티를 찾는다는 명목 하에 이스트 앤드를 향해 가는 중이었다. 독일에서 처음 본 그라피티는 뭐랄까, 해독하기 힘든 알파벳 속을 쨍한 색으로 가득 채운 오징어 순대 같은 인상이었다. 독일 특유의 어두운 불빛에 기차 몸체며 창문이며 건물 벽이며 가릴 것 없이 빈틈없이 채운 형형색색의 글자 풍경들! 어느 정도 외지고 어두운 곳이면 어김없이 그라피티로 도배된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영락한 곳의 표식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나를 질식하게 만든 건 어쩌면 그라피티가 만들어내는 글자가 아닌 공간 가득 들어찬 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복 디자인은 8할이 색 조합의 마술이다. 진주사, 항라, 숙고사, 생고사, 노방 등의 한복지에서 주가 되는 색을 정하면 어떤 색을 안감으로 넣어 어떤 색 조합을 궁극적으로 만들어낼지를 결정한다. 이 색감 작업은 창작의 폭이 넓어서 그런지 디자이너의 역량을 총동원하게 만든다. 어떤 주색과 어떤 보조색을 맞추고 어떤 색을 큰 여백 색으로 정할지며 어떤 색을 고름 같은 곳에 포인트 색으로 넣을지를 결정하는 등 결코 강한 색들이 전체를 매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흔한 그라피티와 대척점에 있는 셈이다.


런던 이스트 앤드 구역은 그라피티를 합법화한 곳이라 야무진 모양새의 그라피티를 길 모퉁이마다 만날 수 있지만, 개발 광풍을 맞은 곳이 런던 시내 중심부만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리버풀 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도처에 부서져 나간 벽들과 텅 빈 거대한 빈 블록의 땅에 가림막으로 죽 두른 황량한 지역이 나타나고 현대적인 빌딩을 뒤로하고 무너져가는 벽돌 건물들이 보인다. 그 사이로 굴삭기가 땅을 파고 있고, 아랍인들이 삼삼오오 조그만 슈퍼에 모여 밖을 쳐다보고 있는 대낮에도 음침한 뒷골목의 인상이 여행객의 낯선 시선을 더 움츠러들게 만드는 그런 곳이 여기 골목 풍경이었다.



이렇게나 동양적인 거리 혁명가라니! 

나는 뱅크시 때문에, 아마 빅뱅의 팬들은 팬심 가득해서 뮤비의 성지인 이 곳을 찾을 것이겠지만 어쨌든 이번 여행의 반나절을 이스트 앤드에서 보내기로 결심하며 이 반나절이 나에게는 미술관만큼이나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 같아 설레었다. 영국이 낳고 발굴한 예술가로는 번쩍이는 다이아 해골로 유명한 '데미안 허스트'도 유명하지만 뱅크시는 거리에서 건진 모퉁이 돌같은 존재였다. 처음에는 게릴라 식 그라피티를 남기고 사라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더니 이제는 노골적으로 혁명과 전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그라피티는 순식간에 그리고 사라지는 뱅크시의 특성상 스탠실 기법으로 그려진 것이 많아 일반 그라피티와는 많이 다르다. 그의 고양이 사진사에게는 마치 민화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처럼 우리의 시선을 끄는 바르트적인 의미에서 '푼크툼 Punktum'이 있다. 많은 여백에 하나의 포인트를 찍는 그라피티! 이건 아주 넓은 의미에서나 그라피티라고 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https://de.wikipedia.org/wiki/Banksy 그리고 우리의 민화


사실 그의 유명한 그라피티가 그냥 남아있을 리 없겠지만 재개발이 한창인 이 이스트 앤드 골목에서 한동안 기웃거렸다. 브리스톨에서 뱅크시 투어를 하는 것보다 아마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민낯의 이스트 앤드가 훨씬 더 날 것 그 자체의 그라피티에 어울릴 것 같았다. 이날 뱅크스의 아류같은 그라피티는 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고 골목은 무서울 정도로 썰렁했고 간간이 거리를 활보하는 아랍인들의 팔문신은 형형색색이어서 더 간담이 서늘했다.



디즈니랜드? oh.. no no 디스멀랜드 Dismaland!

사실 뱅크시를 의식 있는 예술가 반열에 올린 것은 그가 2015년 8월 15일에 가동한 '디스멀랜드 Dismaland'라고 하는 프로젝트 때문일 것이다.


"테마파크들은 더 큰 테마를 가져야 한다" - 뱅크시


지구에서 가장 불행한 디스멀랜드를 표방한 이 테마파크는 디즈니랜드를 패러디한 곳이다. 휴양지인 서머셋 Weston-super-Mare 개장한 디스멀랜드는 컨셉상 절망과 불행이 주제인 데다 전 세계의 디즈니랜드가 세계의 밝은 면을 극단적으로 부각한 것에 반해 의도적으로 그 정반대 상황을 조성해 놓았다고 한다. 디스멀랜드는 가장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최근의 참상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고 하는데 뱅크시와 그와 뜻을 같이하는 예술가들이 핵 문제, 파파라치, 불법 이민자, 동물 학대, 동물 실험, 낙태 등과 같은 굵직한 사회문제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설치 예술품을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튜브를 찾아보니 과연 절망과 불행이 걸음걸음 놓여있다.


https://youtu.be/V2NG-MgHqEk

영국: 디스멀랜드

절망과 불행을 체험 프로그램으로 삼는 것도 기괴하지만 그를 통해 각성의 효과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개념예술의 대중화 전략인 셈이다. 현대 예술과 판타지 소설이 영국에서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다양한 서사가 잘 발달한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도 폐장한 <용마랜드>가 비슷한 분위기를 내지만 여기는 핼러윈이나 귀신 보기 좋은 날 컨셉으로 많이들 사진 찍으러 오는 곳일 뿐 사회적 이슈를 컨셉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의 절망과 불행을 컨셉으로 한 귀곡산장 같은 디스멀랜드를 이곳 용마랜드에 도입해도 괜찮지 않을까! 관건은 이곳에 입히는 서사일 것이고 디스멀랜드에 준하는 서사는 한국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그런 절망과 무지에 대한 분노를 객관화하여 해소시켜 나가야 할 만큼 성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그의 그라피티는 한 점도 못 찾았지만 사폭 바지 여며 입고 굳이 찾아온 보람은 있었다. 누구나가 관심 가지는 테마도 아닐테고 누구나가 아는 예술가도 아니지만 더군다나 11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온 여행객들이 느끼고픈 것이 세계의 절망은 절대 아니겠지만 한 때 태양이 지지 않던 나라에서 이런 의미 있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여정도 괜찮은 여행 같아 보인다.


한국의 용마산 자락에 위치한 폐장된 용마랜드!


이 황량한 디스멀랜드 테마파크는 개장 한 달만에 2.700만 유로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입장료를 챙겼다고 한다. 의식 있는 영국인들? 시리아 난민 수용을 거부하며 유럽연합까지 탈퇴한다고 하는 나라인 것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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